빈약한 논리로 또 다른 양극화 만들 셈인가
  •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
  • 승인 2006.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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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의 ‘한·미 FTA’ 후속 비판

 
“장기에는 우리 모두 죽는다... 만약 경제학자들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계절 한가운데서 폭풍우가 그치면 대양은 다시 잠잠해질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면 그들은 너무나 쉽고, 또 아무 쓸모도 없는 임무를 스스로 떠맡고 있는 셈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 <화폐개혁론>)

2006년 4월17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융단 폭격’이 일어났다. 경제보좌관(정문수, 이하 존칭 생략), 한미 FTA 수석대표(김종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출신 대학교수(정인교 인하대교수)에 이르기까지, 어느 언론이 묘사한 것처럼 화력을 총동원한 듯 했다.  

나는 이들의 주장에 십분 동의한다. “이제 협상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보다는 어떻게 협상을 할 것이냐에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김종훈)”이며 “각계의 이해 관계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면서도 우리 협상단에 힘을 실어주는 일치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정인교)”. 또한 “한미 FTA협상을 반미주의적 시각에서 무조건 반대하기 보다는 객관적 사실에 의한 대안 제시로 국익 극대화에 기여해야(정인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정부와 FTA 지지자들이 과연 ‘객관적 사실’에 의해 논거를 제시하고 있는지 짚어보아야 한다. 수많은 뛰어난 인력과 자료를 동원할 수 있는 정부에 입증책임을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은 불편부당함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검토할 대상은 ‘4월 17일의 융단폭격’, 그리고 홍보를 강화하라는 대통령 지시를 충실히 따른 ‘국정브리핑’ 등이다. 

 
단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준비운동 삼아 논리나 사실과는 무관할 수 밖에 없는 비유에 관해 간략히 언급하자. 이른바 ‘구한말 시리즈’이다. 상당수는 신중론자라고 해야 마땅할 반대론자들이 한미 FTA를 을사늑약으로 비유하자 청와대는 “50년동안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의 구호를 연상시키는 대목(정문수)”이라는 비상식적 발언을 내뱉는가 하면, 갑자기 20년전의 종속이론(이백만 홍보수석· 정인교)을 들먹이다가 급기야 신미양요 때 미국과 잘 협상했더라면 우리는 이미 선진국이 되었을 것(국정브리핑)이라는 극단적인 역사적 상상력까지 발휘한다.

아무리 상상력이 빈곤하다 해도, 아무리 비유라 해도 좀 그럴듯해야 하지 않을까. 먼저 대통령이나 FTA 추진세력을 이완용이나 박제순에 비유하는 건 아무리 봐도 지나치다.  특히 대통령의 지칠줄 모르는 개혁의지를 생각하면 그는 김옥균과 더 어울린다. 대통령은 외세에서 개혁의 추동력을 찾은 김옥균처럼 ‘외부쇼크에 의한 개혁’을 꿈꾸고 있다.

경제학자들 “FTA는 강대국에게 더 이익”

그리고 문화연대 등 반대론자들은 동학혁명군에 가깝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꼭 역사를 ‘가정’해야 한다면, 김옥균과 동학혁명군이 결합하는 멋진 그림을 꿈꿔 볼 수는 있겠지만 신미양요 쪽으로 튀는 것은 엉뚱하기 짝이 없다.

요즘 언어로 얘기하자면 ‘사회적 대타협’이 정부가 주장하는 ‘개방과 개혁’의 핵심이며 전제이다.  처음 이 둘을 묶어 참여정부의 차별성을 강조한 이정우교수(전 청와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의 뜻도 ‘사회적 대타협’에 기초한 개방이었으며 실제로도 개방의 거친 파고 속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는 나라들은 스웨덴, 네델란드와 같은 사회적 타협의 지혜를 발휘하여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갖춘 나라들이다.    

이제 정부가 그토록 원하는 대로 사실과 논리의 세계로 가자(한낱 경제학도가 다루기 버거워서 21세기의 삶에서 더욱 중요해질 환경과 문화의 문제는 제외한다).
먼저 반성하는 의미에서 나로부터 촉발된 ‘졸속성’ 논쟁부터 정리하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마디로 ‘공개’가 모든 의혹을 깨끗이 해결해 준다.  예컨대 내 지적에 대해 정부와 청와대는 2003년 8월의 로드맵, ‘선진형 통상국가론(제4차 대외경제위원위, 2005년 4월)’을 들어 “정부의 일관된 노력을 ‘한건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김종훈)”거나 “한미 FTA 추진의 타당성에 대해 이미 ‘FTA 추진 로드맵’ 수립 단계부터 검토했고, 정부뿐 아니라 산업계. 국책연구기관 등에서도 경제적 타당성에 대해 다양하고 면밀한 연구를 거쳤다(국정브리핑 특별기획 ‘출발점에 선 한미 FTA' 1)”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2004년 12월 제3차 대경위(2004. 12)에서도 당시의 정부 목표는 2006년말 경 거대 경제권과의 FTA가 아니라 그 추진을 위한 교두보를 구축하는 정도였다. 내가 재직했던 5월에 열린 제4차 대경위에서도 선진형 통상국가론의 개념 정립이 주된 내용이었다. 한미 FTA에 관한 언급은 한일 FTA 등 다른 FTA 추진 현황과 함께 부록처럼 처리되었다.

또한 정부는 우리의 주도성을 강조하면서 스크린쿼터 축소, 의약가 재조정 문제 등 네가지 현안의 해결이 미국의 선제조건이 아니었음을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 9월 제5차 대경위에서, 2005년 6월에 열린 양국 통상장관 회담 때 로버트 포트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통상 현안을 사전에 해결하기 위한 우리측의 노력을 강조했다”는 점이 전해졌다. 즉 4대 현안 해결이 한미 FTA의 선결 요건임이 보고되었고 이에 따라 지난해 7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으로 급히 떠난 것이다.

정부의 제안대로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려면, 제1차 대경위부터, 대통령이 한미 FTA의 공식 추진을 추인한 제6차 대경위 자료와 토론 내용을 공개하면 된다. 적어도 1차에서 4차까지 내가 본 자료에는 별로 비밀이랄 것도 없지만 꼭 비밀을 지켜야 한다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비밀로 보내서 사실 확인만 하면 된다. 이리 간단한 방법을 두고 그 바쁜 청와대가 매일 폭탄 투하하듯 홈페이지에 글을 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내친 김에 하나 더. 이번 결정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과의 협의 등 외교안보적인 고려가 미흡했다는 내 지적에 대해 김종훈 대표는 모든 사안을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대답했다. 그 문서들을 공개하면 이 문제도 간단히 해결된다. 물론 그 중에는 당시 언론에 ‘FTA를 전제로 하지 않은 사전협의’로 보도됐다가 이제는 FTA 실무 준비로 탈바꿈한 2005년 1월에서 6월까지 한미 접촉에 관한 보고서도 포함되어야 한다.

‘통계조작’에 관한 왈가왈부도 끝내자.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게 들릴 CGE 모형은 한미 FTA와 같은 외부쇼크가 일어날 경우 나라경제 전체에 어떤 변화가 초래될 것인가를 들여다 보는 데 유용한 도구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재경부나 외교부, 그리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결과 표에는 무역수지가 빠져 있다. 자유무역협정의 효과를 추정했다면서 무역수지가 없는 것은 필시 곡절이 있다는 게 내 문제 제기였다. 

월간 <말>과 권영길 의원실의 추적으로 숨겨져 있던 표 하나(2006.2)가 발견됐다. 그 표에는 무역수지가 73억 달러 악화하는 것이 KIEP 3월 발표 자료에는 47억 달러로 둔갑했다. 무역수지는 바뀌었는데 실질 국내총생산(GDP) 등 다른 지표가 그대로라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연립방정식 체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이경태 KIEP 원장은 73억달러가 47억 달러로 바뀐 것이 쌀을 협상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며 GDP 등 다른 지표도 바뀌었지만 그 변화가 적어서 옛 데이터를 그대로 썼다는 것이다.

주루룩 한꺼번에 나온 지표를 그저 요약하면 되는데 힘들게도 굳이 두 데이터를 분리해 발표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 GDP 0.7%포인트(무려 5조원이 넘는 돈에 해당)를 별 것 아니라 무시했다는 것도 도통 이해가 안된다. 더구나 그 지표를 한덕수 경제 부총리가 강연마다 사용했다면 결과적으로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 모형에 사용된 방정식들, 각종 탄력성 지표들, 입력시킨 데이터 등 모든 것을 공개하면 간단하게 수습된다. 다른 사람이 똑같은 방법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논문에 사용된 자료를 공개한다는 학문세계의 기본 규칙만 지키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공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다. ‘결과의 현실성’ 대목이다. 평소에 하던대로 그냥 한미 FTA에 따른 외부 변화에 대응하여 자본과 노동이 이동해서 완전고용에 이르는 경우의 수치(이를 KIEP는 자본축적모형이라고 부른다)가 1.99%이다.
현재의 실질 GDP 성장률 3~4%에 증가분 1.99%를 더하면 5~6%가 된다.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한 성과이며 또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치이다. 반면 7.75%는 현실에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실질 GDP가 10%를 넘는다는 얘기다. 한국 정도 규모의 성숙된 경제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이며, 그것도 한미 FTA라는 외부충격이 그런 효과를 낳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결국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현실적인 수치 1.99%를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비현실적인 수치 7.75%로 둔갑시켰다. 학자라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당연히 외압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 이 의혹은 불행히도 공개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미국과 FTA를 맺는 일이 역시 부담스러운지 비슷한 의혹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제기됐다. 거기서는 한 공무원의 용기있는 양심선언으로 문제가 풀렸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이런 모든 문제점을 알고도 그러는 건지, 아니면 몰라서 그러는지 ‘국정브리핑5’는 KIEP의 통계를 인용하여(여기에도 무역수지 항목은 빠져 있다) '소득.수출.일자리... 얻은 것이 훨씬 많다고 주장한다. 이 글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로 시작하지만 이 정도로 근거없이 추진된다면 그 구더기가 무서울 수 밖에 없다. 

FTA의 기대효과를 추정하는 방법이 CGE 모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력모형(2004년 결과는 130억 달러 흑자가 난다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결과가 나왔으므로 다시 돌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산업 내 무역분석, 탄력성 분석. 생산·고용 효과 분석 등 다른 추정 방법도 있다. 각 분석의 장단점이 있으므로 결과를 모두 구한 뒤 종합해서 본다면 현실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소모적인 논쟁은 빨리 종식시키고 정부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정부가 주장한 충분한 준비란 무엇인가?  이것도 공개해야 한다. “정부 발주 연구용역을 포함해 10여 차례에 걸쳐 전문가 연구와 세미나, 공청회를 진행했다(국정 브리핑)”. 실제로 정부는 공식적으로 세건의 용역이 완성됐다고 했다. 정인교 교수 역시 “정부에서는 한미 FTA에 대한 다수의 연구 과제를 발주했다”라고 주장했는데 그 다수가 몇 건인지 어떤 내용인지 공개하는 건 아주 쉬운 일에 속할 것이다.

 
참고로 한일 FTA의 경우에는 정부 발주만 공식적으로 26건이다. 세미나와 공청회까지 친다면 5년에 걸쳐 민간연구, 산관학 연구를 모두 거쳤으니 100건이 훨씬 넘는다. 민간연구까지 합쳐서 공개 출간된 것만 해도 100건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사회이사회에서 발주하는 공동연구라는 것이 있다.  여러 관련 기관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보통 3년 정도의 시간과 공을 들여 중요한 국정 과제를 연구하는 것이다. 한미 FTA의 경우 2005년에 시작했다. 각 연구기관이 적어도 2004년말까지는 한미 FTA가 이렇게 느닷없이 닥칠지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도 정부는 해명해야 한다.

‘위대한 국민’과 ‘성공한 교포’가 근거라니…

그러나 연구는 ‘준비’의 1단계에 불과하다. 외부쇼크가 닥쳤을 때 국민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숙지할 만큼 되어야 충분한 준비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떠한 제도변화가 일어날 건지 그럴 경우 어떠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지 도상연습이 필요하고 시나리오 별로 국민이 맞닥뜨릴 문제가 뭔지도 알려야 한다(2단계 준비).

뿐만 아니다. 그 제도 변화가 기존의 제도와 어떠한 마찰을 일으킬 것인지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제도적 불일치는 심각한 사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또 미리 미리 제도를 바꿀 수 있다면 점진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국민을 믿는다”며 97년 경제위기 때와 같은 고통을 그대로 국민에게 떠안기는 것은 정녕 정부의 진지한 태도가 아니다.  

이제 사실과 논리를 따져 보자. 뒤늦게 FTA 논란이 일자 정부는 적극적인 홍보(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그 글과 말이 쌓이는 만큼이나 정부의 준비 부족도 드러나고 있다. 첫째, 한미 FTA만 되면 “기술도입선 다변화를 통한 만성적 대일의존구조를 해소할 수 있다(정문수 등 다수)”는 주장에 대하여.

지난 6년간 쌓인 대일 무역적자 약 1천40억 달러 중 76.4%가 기계. 부품 부문에서 발생했다. 정부의 주장은 한미 FTA로 관세가 낮아지면 일제 기계나 부품이 미제로 바뀔 것이며 심지어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의 적자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거의 50년에 이르는 기술교류로 한국의 기계 시스템은 일본형에 맞춰져 있다. 이것을 통째 미제로 바꾸는 전환비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예컨대 한국과 일본은 미터법을 쓰는 데 미국은 인치법을 쓴다. 10cm, 20cm로 설계된 각 부품만 쏙 빼어내서 5인치, 8인치 짜리 미제로 바꿔 끼울 수는 없다는 얘기다. 수송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어서 반도체 원료 일부 등만 미제로 바꿀 수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지적이다.

둘째. 국정브리핑에서 눈길을 확 끄는 제목이 있었다. “미국이라고 약점 없나? 우리도 빅카드 있다(브리핑 6)”는 것. 그리하여 우리도 “이제는 수세적인 입장에서 탈피해서 공세적 입장을 취해볼 필요(이홍식 KIEP 팀장)”가 있으며 구체적으로 “선박, 섬유 등은 미국에게는 우리의 쌀과 같은 민감 품목” (정인교)이다. “설탕과 땅콩, 낙농제품 등의 분야가 그들의 아킬레스건이다(국정브리핑 6).”, “여기에 미국의 해운 서비스업의 개방문제와 미국의 고관세로 개방의 폭을 제한하고 있는 섬유 및 의류산업에서의 관세인하 문제 등도 우리가 미국을 압박할 수 있는 좋은 카드(국정브리핑 6)”라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우선 불행하게도 미국의 아킬레스건을 쏠 화살이 우리에겐 없다. 설탕과 땅콩, 낙농제품은 멕시코같은 나라한테나 아킬레스건이지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둘째로 섬유, 의류(가죽) 등은 일단 얀포워드(원사의 원산지로 어느나라 산인지를 정하는 미국의 독특한 방식) 규정이 걸려 있는 데다 설령 이 문제를 해결하고 또 미국의 특별 봉쇄를 뚫어 관세를 10%정도 인하한다 하더라도 중저가 시장에서 우리 동대문산의 가격경쟁력은 도저히 중국산과 따라갈 수 없다. 그리고 고급의류시장은 이미 명품이 장악하고 있으며 실제로 섬유·의류 산업은 유럽은 유럽대로, 아시아는 아시아대로 지역별로 특화하고 있어서(신체의 특성이나 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에) 쉽게 공략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미국이 높은 관세로 보호하고 있는 일부 픽업 트럭과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의 관세가 철폐되면 수출 증대 효과가 더 커질 것(국정 브리핑, 이슈 Q&A '한-미 FTA', 2.10,)”이라고 주장한다. 픽업 트럭 얘기는 정인교 교수의 보고서를 인용하여 통상교섭본부의 4월 자료에도 되풀이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픽업 트럭을 생산하지 않는다. SUV도 생산할 능력이 없다. 유가가 오른 것이 전화위복이 돼서 투산과 같은 CUV의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 현대 쏘나타의 경우 2.5%의 관세가 붙어 있는데 이를 5년에 걸쳐 인하한다면 1년에 평균 10만원 정도 싸질 뿐이다. 외교부 자료처럼 일시에 관세를 철폐해서 5백72 달러가 싸진다는 주장은 현실적인 가정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정부는 자동차를 전기·전자, 섬유·의류와 더불어 3대 수혜 품목으로 꼽고 있지만 현대 등 자동차 업계는 한미 FTA는 ‘중립적’, 즉 수출이 크게 늘어나지도, 수입이 크게 늘어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전기·전자부문도 가장 비중이 큰 반도체의 경우 이미 관세가 0이고 현지생산이 많아서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섬유든 자동차든 관련 업계에 제대로 물어만 봤어도 청와대에서 이런 주장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정부가 툭하면 주장하는 세계 최대 시장의 선점 효과도, 또 시장 점유율 1%가 증가하면 수출이 5.9% 증가하고 GDP가 1.4% 증가한다는 환상적 시나리오(통상교섭본부)도 실제로는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다.  현재 2.7%에서 1% 늘리는 것이, 어디 관세 2.5%, 그것도 몇 년에 걸친 인하로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오히려 미국의 문제점은 비관세 장벽에 있다. 특히 통상마찰, 다시 말해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의 강도를 과연 줄일 수 있느냐가 우리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의 하나가 될 것이다.

현재 한국은 빈번한 반덤핑 제소뿐 아니라 수퍼 301조 조사 대상에 10개 항목이 올라 있다. USTR은 이미 반덤핑 제소 및 상계관세에 관한 미국 법이나 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의회에 보고한 바 있다.  우선 기존 FTA 체결 국가에서 이러한 공격적 일방주의가 무뎌졌는지 확인하고 그러한 사실이 있다면 그 나라가 어떠한 전략을 썼는지 연구할 일이다.  

경제논리도 뒤죽박죽이다. 첫째, 대외의존도가 높아서 한미 FTA를 해야 한다? 우리가 한미FTA를 해야 하는 이유로 툭하면 들먹이는 지표가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이다. 즉 “수출길 막히면 대책없는 나라. 국내 시장이 협소한 나라이기 때문에 한미 FTA를 해야 한다(정문수)”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그 높은 대외 의존도를 80%에 이른다고 과장하면서까지 개방을 역설하고 있다(다음날 동아일보 칼럼이 이 수치를 인용한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보수 언론과의 공조가 드디어 이뤄진 셈이다).

대외의존도는 지난해 수출 호황과 극심한 내수 부진으로 사상 최고치인 70.4%를 기록했다. 올해는 내수가 안정되면서 이 수치가 조금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선진국, 미국(19.5%), 일본(21.8%)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높은 수치이다. 거대경제권 중 오직 중국만이 우리와 비슷한 70%대 대외의존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불균형 성장전략을 극단으로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대외의존도란 그만큼 외부의 충격이 아무런 완충장치 없이 그대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거시경제정책의 3대 목표 중 하나인 경제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경제정책당국이라면 당연히 대외의존도를 줄이는 것, 즉 내수를 키워서 균형을 맞추는 쪽을 택해야 한다. 국내시장이 협소하다고 지레 단정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 등 일반 국민의 가처분 소득을 높여서 내수가 확대되는 정책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거꾸로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한미 FTA를 맺어서 더욱 더 대외의존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예측대로 수출과 수입이 모두 대폭 증가한다면 대외의존도는 훨씬 빨리 증가할 것이다. 

 높은 대외의존도가 미국에 집중된다는 것은 더더구나 위험하다. 미국은 천문학적인 쌍둥이(무역수지+재정수지) 적자로 대단히 위험한 경제이다.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경제위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나가고 있을 뿐이다. 멕시코의 가장 큰 걱정도 미국 경기의 부침에 너무 휘둘린다는 것이다. ‘악마와 키스를 했다(We kissed the devil)’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미국이 야심차게 추진하던 FTA A(NAFTA를 중남미 전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협정)가 2004년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 5개국의 반대로 무산된 가장 큰 이유도 이 때문이다.

둘째, 이러한 뒤집힌 논리는 이제 FTA 공포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역시 FTA를 더 이상 늦추다가는 세계 교역질서 흐름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게 되었다(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정부 관계자가 유행어처럼 들먹이고 있는 ‘한미 FTA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1백93개의 FTA가 존재하고 있고 FTA에 의한 무역이 50%에 이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FTA는 각양각색이다.  개중에는 권능조항(Enabling Clause)에 따른 개도국간 FTA도 상당수여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배하는 것도 많다. 
이 수많은 FTA가 어떠한 성격을 가졌는지 범주를 나눠 분석해 봐야 할 것이고 실제의 경제적 효과도 따져 볼 일이다.  현재까지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는 FTA의 효과를 일의적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의 단순 논리대로 FTA를 맺으면 맺을수록 유리하다면 왜 그 선두주자였던 멕시코가 2003년 말, 11개의 FTA를 끝으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을까? NAFTA 10년의 효과에 대한 평가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멕시코 내부에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 협정은 멕시코가 제1세계로 들어가는 티켓이다”라고 호기롭게 살리나스 당시 대통령(1994)이 선언했음에도 말이다. 현재처럼 FTA를 추진한다면 10년 뒤 노무현 대통령도 살리나스와 거의 똑같은 선언을 한 탓에 조롱을 당할 지 모른다. 
셋째, 앞에서 FTA의 효과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했지만 강한 나라가 유리하다는 것은 틀림없다. 경제학자 그로스만과 헬프만은 상대적으로 큰 경제규모를 지닌 국가의 수출업자들이 더 큰 이익을 얻는다는 것을 수치로 입증했다. 또한 앤 크루거는 큰 국가의 생산업자들이 FTA를 강력히 지지할만한 경제적 이익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수퍼301조와 FTA 같은 미국의 지대추구형 통상정책의 이론적 기초이다.

특히 화학, 의약 쪽 미국 대기업들이 한국과의 FTA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제조업은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아무런 언급도 하고 있지 않지만 실제 통계상으로도 화학쪽에 민감품목이 몰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일 FTA 협상 때 취약 분야인 기계 부품 산업의 지원대책을 만든 것처럼 미국에 대해서는 화학, 의약 분야에 대한 특별 대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준비가 돼 있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넷째, 이처럼 사실과 논리가 영 어긋나고 있는데도 정부는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강하게 한미 FTA의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런가? 정부는 ‘개방과 경쟁’에 의해 경쟁력이 제고될 것이라는 논리에 매달려 있다. 경쟁의 정의 자체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현재의 생산성이 미국의 1/2 내지 1/3에 불과한 서비스 분야의 경쟁력 제고가 특히 강조된다(만일 당신이 비교우위론의 강력한 신봉자라면 한국은 제조업에 특화해야 한다).

놀랍게도 그 근거는 “우리 국민을 믿는다”(대통령) “우리 교민을 보라. 바로 서비스분야에서 세계의 1등으로 활약하고 있지 않은가(정문수)”라는 것이다. 또 “여태까지 개방해서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박병원)”는 것도 덧붙는다. 이런 것도 경제논리인가?

정부는 어떠한 근거도 없이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증가할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청와대 문서건, 외교부 문서건 이 경우에는 어떠한 분석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외국의 사례를 들고 있다. 예컨대 국정브리핑과 외교부 모두 멕시코의 사례를 들고 있다.

저 유명한 마킬라도라 얘기이다. 1994년 NAFTA 체결 이후 미국의 제조업이 대거 멕시코로 몰려가서 처음에는 국경 부근에, 그 이후에는 내륙까지 마킬라도라가 생겨났다. 외국인 직접투자의 증가 -> 생산의 증가 -> 수출의 증가라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그러나 두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 현재 마킬라도라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패퇴해서 스러지고 있으며(폭스 현 대통령은 마킬라도라를 실패한 정책이라고 단언한다), 더구나 한국에 이렇게 제조업이 유입될 이유는 거의 없다. 혹시 우리가 중국과 FTA를 맺었다면 한국이 대중국 수출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지만(EU에 대해서 아일랜드가 차지했던 위치이다), 미국에 수출하기 위해 다른 나라가 중국을 제쳐 두고 2.5%의 관세 때문에 한국으로 제조업을 이전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미국계 기업의 서비스업 진출은 활발할 것이다. 이 경우는 중국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그릴 수 있는 청사진은 이렇다. 일단 미국기업이 합병·매수(M&A)의 방식으로 한국시장을 장악하거나 적어도 지분참여 형태로 대거 진출할 것이다. 중국의 서비스 시장이 개방되면서 한국의 서비스업은 더욱 팽창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기업에서 경영 노우하우를 배운 인력이 빠져 나와(spin off) 독자 기업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개방된지 10년이 지난 금융시장의 경우 이러한 시나리오는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론스타와 같은 무자격 투기자본에게 경영권을 넘겨 준다면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듯이 단물만 빼먹고 사라지는 사태도 왕왕 발생할 것이다.  이것이 특별한 경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실제로 미국의 BIT 2004는 론스타와 같은 투자에도 내국인대우를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으며 이를 규제한다면 론스타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간의 양대 목표가 한미 FTA 체결과 양극화 해소라고 선언했다.  가장 추상적으로 얘기해서 양극화는 내·외부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의 격차에서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한미 FTA는 상상하기 어려우리만큼 커다란 외부 쇼크이다.  당연히 양극화의 심각한 원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정부도 잘 알고 있다. “한미 FTA 추진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명하는 이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도 양극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국정브리핑 3)”이라거나 반미로 몰지 않아 일단 다행이지만 “양극화 심화 주장은 ‘기우’(국정브리핑 3)‘라고 단정하는 데 이르러서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근거는 참으로 요령부득이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이다. 우리나라가 비교우위를 갖고 있거나 전·후방 파급효과가 큰 서비스 부문의 발전을 촉진시켜... 소득불평등도를 개선시킬 수 있다(브리핑 3)”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의 ‘위대한 국민’과 ‘성공한 교포’가 등장한다.

중국과 미국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 보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구조적인 요인 중의 하나로 ‘중국요인’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다르다.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양극화를 개선시킬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는 것”(브리핑 3)이란다.

미국바이어가 설문 조사에서 수입을 확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그야말로 희박하기 그지 없는 근거를 빼고는 그저 “FTA는 금융·의료·교육·법률·회계 등 고부가가치형 서비스산업 발전의 촉매제가 돼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 확충에 기여할 것이다(한덕수, 브리핑  3)”라는 주장만 되풀이되고 있다.  

현재의 양극화란 1990년대 이후 세계화와 금융화 등 외적인 흐름을 1997년 위기를 계기로 아무런 준비없이 급속하게 받아들인 데 주로 기인하고, 일부는 정책의 미비나 오류로 인해 나타난 총체적 결과이다. 여기에서 중국쇼크는 하나의 부차적 계기에 불과하다. 오히려 미국과의 FTA는 우리의 내부 제도를 훨씬 더 적극적으로 미국화한다는 것(예컨대 노동시장 유연화의 진전), 즉 주요 계기를 전면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 FTA는 부총리의 주장대로 “시장경제의 대표주자인 미국경제와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겠다는 것”인데 미국은 선진국 중에 가장 불평등도가 심한 나라이며 그것이 제도로 굳어져 있는 나라이다.  나프타의 결과로 수출입 증가와 성장률 증가를 얘기하지만 세나라 모두 양극화가 더욱 심화됐다.

정부 주장대로 중국 쇼크로 생산성이 낮은 제조업이 타격을 입었다면 이제 미국 쇼크로 농업과 서비스업이 타격을 입을 차례인 것이다. 부총리가 강조하는 사업서비스업도 대부분 합병·매수에 의해 미국기업이 장악할 것이므로 적어도 단기에는 대규모 해고사태가 일어나고 고급 시장과 저급 시장으로의 양극화가 그대로 굳어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현재는 미국의 의료기업이나 교육영리법인이 즉각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BIT2004 수준의 투자와 서비스업 개방이 이뤄진다면 장차 이들이 진출할 경우 공공성이 강한 분야마저 양극화할 공산이 대단히 크다. 

재경부 등 경제부처가 나서서 서비스업 개방을 유도하는 경우가 오히려 문제이다. 예컨대 재경부는 싱가포르의 예를 들면서 “어떤 형태로든 외국 우수학교 유치가 시급하다”라며, 경제자유구역에 미국 하바드 대학과 같은 명문 대학의 아시아 분교 유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병원도 마찬가지이다.

이럴 경우 병원의 강제지정제가 무너지거나 대학의 영리법인화를 허용하는 경우 그나마 남아 있는 한국경제의 공공성은 완전히 붕괴될 것이다. 물론 대통령도, 또한 통상당국도 이 부분에 관해서는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한국사람으로서 초조한 마음으로 그 약속이 지켜지기를 바랄 뿐이다. 

스티글리츠는 그의 명저 “시장으로 가는 길”에서 체제 전환국들에게 미국경제를 본받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최근 그는 한국에 대해서도 스웨덴에서 모범을 찾는 것이 훨씬 발전적이라고 충고했다.

경제체제 차원의 선택은 비가역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일단 체제로 굳어져서 경로의존성이 생기면 다음에 되돌이키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울 수 있다.  그러므로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 몇십년, 어쩌면 백년 이상 지속될 선택을 1년 이내에, 그것도 세계 최강국 미국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정부 말대로 “적극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브리핑3)”하지만 개방에 그러할 것이 아니라 나름의 대안적 경제체제를 찾는 데 그래야 한다.

모든 정부 문서에 개방의 성공사례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유통에서의 이마트 사례이다.  까르푸나 월마트 등 세계적인 유통기업이 들어왔지만 결국 이마트가 승리했다는 것이다.  기특한 사례임에 틀림없지만 이마트의 승리는 한국의 토종이 이겼다는 ‘민족적 감성’을 뺀다면 양극화의 심화라는 면에서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오히려 최근 탄생한 햇빛촌이다. 

햇빛촌의 사례는 양극화를 완화하는 중요한 방법을 보여준다. 그것은 밀착된 거리, 또는 공동체적 합의에 의해 정보의 비대칭성이나 도덕적 해이 등을 극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경우는 정부의 정책 없이 자생적으로 극복한 것이지만 마이크로 크레딧이나 클러스터에 의한 빈곤퇴치 정책을 의식적으로 사용할 경우 일반 서민이 참여하여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새로운 모델을 끊임없이 찾아낼 수 있다( ‘동반성장의 길’이라는 보고서가 그러한 정책을 집대성한 것이며 곧 책으로 발간하여 일반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정부도 FTA에 의한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예상되는 피해에 대한 정밀한 영향분석을 거쳐 범정부차원에서 지원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며 4월 19일 국정브리핑은 무역조정지원제도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EU의 조정제도가 미국식 FTA의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내부의 재정에 의해 피해 산업 및 노동자의 보상과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있지만 EU의 기금은 FTA를 맺은 모든 나라가 공동으로 출연하고 있다.

즉 한국과 미국이 각각 자기 나라의 기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컨대 GDP에 비례하여 기금을 출연해서 역내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를 의식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다. ‘유럽구조기금(European Structural Funds)’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진정으로 미국과 한국이 진심으로 ‘윈윈 게임’을 할 요량이라면 EU형의 구조조정기금에 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국민의견 충분히 듣겠다(국정브리핑 4).” “한미 FTA 협상과 관련해 지금까지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데 인색했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국정브리핑 4).” 판도라의 상자에 아직 남아 있는 희망이 바로 이것이다.

“반드시 타결해야 한다는 실적주의에 매몰되면 국익을 손상할 수 있다. 안되면 접는다”는 대통령의 말을 각 부처와 국책 연구원들은 가슴에 깊이 품어야 한다.  
우리가 이런 초보적인 논의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미국은 공청회에서 자료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부는 법률적으로 하자가 있는 2월2일의 공청회 무산을 의식한 듯 “5월 중에는 협상전략과 관련한 전반적인 내용을 가지고 공청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 중(국정 브리핑 4)” 이라고 한다.

또 하나 진정으로 국민의 뜻을 묻겠다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통상절차법’이나 기타 법이 조속히 통과되도록 여당에 요구할 일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곳이 국회이니 말이다.  이 참에 국회도 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나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우리 국민을 믿는다.  그러나 케인즈의 말대로 장기에는 우리 모두 죽는다. CGE 모형이 그리는 장기균형은 오지 않는다.  적극적인 정책이 없을 때 일부 특권층을 제외한 우리 국민 모두 뿐 아니라 우리 자식들까지도 끝없는 고통 속에서 죽어 갈지도 모른다.

최대한 천천히, 모든 가능성을 다 점검하면서 FTA를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한미 FTA를 맺음으로써 국제신인도가 올라가고 우리는 한걸음 더 성큼 선진국에 도달할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똑같은 이유로 문민정부 시대에 서둘러 경제협력기구(OECD)에 가입한 결과, 경제위기를 맞고 국제신인도가 폭락해서 아직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시장이 모든 것을 결국 이루고 말 것이라고, 스스로 폭풍우를 몰아 오면서 아무런 구체적인 정책 없이 우리 국민이 ‘개방과 경쟁’속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만  되풀이하는 것은 대양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는 무능한 경제학자들과 같다.
사회는 바야흐로 한미 FTA를 앞두고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데 대통령 참모들의 사고는 단극화로 치닫고 있다. 그들은 ‘너무나 쉽고 쓸데없는 임무만’ 되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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