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섬’ 창선도는 분노에 젖어
  • 남해·박준웅 편집위원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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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붕괴후 차량 도선에 3시간…생필품값 폭등 겹쳐 주민 생활 큰 불편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리 창선대교가 시작되는 난간에는 이 다리의 내역과 함께 이 공사에 관여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시공청 부산지방국토관리청, 감독관 유왕열, 준공검사관 박춘식, 시공자 경인종합건설주식회사, 설계사 유왕열. 이 판을 만들면서 시공청이나 시공회사, 그리고 관계자들은 이 다리가 바다 위에 버티고 서 있는 한 그들의 이름이 두고두고 기억되고 불리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다리는 준공된 지 12년 남짓만에 그들의 명예나 양심, 직업의식·책임감 모두를 박살내며 무너져내렸다. 이들은 1만명에 가까운 주민들의 발을 묶는 이 비극의 자리에 2명의 애꿎은 목숨까지 불러갔다.

 사고가 나자 남해군은 4.7t짜리 유람선을 배치, 하루 30회씩 왕복 운행하며 주민들을 실어나르도록 했다. 그러나 이 배도 아침 6시30분부터 저녁 7시까지만 운항하므로 밤이되면 창선도는 고립무원의 섬이 되고 만다.

 지난 8월14일부터는 육군 수송사령부 항만단 소속의 도선이 차량들을 실어나르기 시작했다. 54t급으로 탱크를 이동시키는 데 쓰이는 이 배를 선착장에 제대로 대고, 차량들을 안전하게 실을 수 있도록 3일동안 철제 구조물을 제작해야 했다.

 단열재를 배달해주기 위해 도선이 닿기를 기다리고 있던 남해읍 대동목재의 ■光靑씨(26)는 “종전에는 하루 10여 차례씩 왕복을 했는데 이제는 하루 한차례도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바로 눈앞에 창선면을 두고도 사천을 거쳐 삼천포에서 도선을 하게 되면 2~3시간은 걸리며 3천5백원씩의 도선료만 해도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이윽고 도선이 닿자 소 3마리를 실은 덤프트럭이 배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경사를 오르느라 차가 요동을 치자 소들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둥대며 놀라서 오줌을 질질 갈기기도 했다. 주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주민들이 “젠장, 소 다 죽이겠다” “운전면허 시험 보는 것 같구나”하면서 걸찍하게 욕설을 퍼부었다.

 2천9백71 가구에 인구 9천9백70여명인 창선도 주민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루 1천8백여대의 차량과 2백20여대의 2륜차는 물론 1천8백여 보행자들이 30분 만에 한차례씩 오가는 유람선과 도선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당장 휘발유와 등유·경유 등 유류와 가정용 가스, LPG, 어선용 면세유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삼천포에서 도선을 이용해 공급할 수밖에 없는데 업자들은 도선 운임을 소비자들에게 부담시키려 하고 있다. 시간이 걸리는 것은 그만 두고라도 값이 비싸질 수밖에 없고 그나마 충분한 양을 확보할 수 없는 실정이다. 도선운반에 따른 사고의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다.

 생선이나 채소·육류 등 생필품의 공급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이다. 매일 열리는 새벽시장에도 물건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장이 서는둥 마는둥 한다고 한 주민은 털어놓았다. 한 포기에 2백~3백원 하던 배추가 2천원까지 오르는가 하면 평소 5백원 하던 물건을 2천원은 줘야 한다는 거이다. 또 대부분의 대리점이 남해읍에 있는데 전화로 주문을 해도 배달을 꺼린다. 농협연쇄점의 경우 농약이나 비료, 농업기자재의 수급이 잘 이뤄지지 않아 민원의 소지가 되고 있다.

 건축자재 등 무게와 부피가 많이 나가는 물품들은 도선이용이 곤란해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레미콘 같은 경우 적재하중을 줄여 싣는 방법을 협의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대책은 어려울 전망이다. 주민들은 한밤중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를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무겁다. 현재 창선면에는 보건지소와 2명의 개업의, 5개 보건진료소 등 8개소의 의료기관이 있지만 이는 모두 1차 진료기관에 불과하다. 중환자는 삼천포나 남해읍을 통해 후송을 해야 한다. 군 당국의 어업지도선과 구급차를 24시간 비상대기시켜 놓고 있기는 하나 주민들은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94년까지 새 다리 건설 계획

 공공기관의 업무도 원활하지 못하다. 수시로 상부기관이 있는 남해읍까지 출장을 가야하는데도 급한 일이 아니면 뒤로 미루거나 되도록 횟수를 줄이고 있다. 昌善농협의 朴成哲 총무담당은 다리를 건널 수 없어 승용차가 있어도 무용지물이라며 군 농협과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정보면에서 며칠씩 뒤지게 된다고 했다. 그는 또 이곳 특산물인 유자와 감자, 어패류 등도 수송의 불편 때문에 제값을 받지 못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 남해군수는 조사결과가 나오는대로 창선대교의 복구를 서둘러 보행만이라도 가능하도록 대책을 세우겠으며 이와는 별도로 새 다리를 93년에 착공, 94년까지 완공하도록 하는 정부차원의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2억5천만원을 들여 승용차 8대, 버스 2대를 실을 수 있는 40t 규모의 도선을 건조중에 있어 2개월 뒤부터는 소통이 한결 원활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주민들은 새 다리가 놓여진다니 기대해봐야겠지만, 그 다리도 안전하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며,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의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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