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죽음 “이 섬이 싫다”
  • 남해·박준웅 편집위원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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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한맺힌 통곡…불공평한 보상금에도 불만



 창선대교 붕괴로 어이없게 목숨을 잃은 ■■■씨(47·남해군 창선면 당저1리 111)의 유족 4남매는 어머니의 원한어린 영혼이 맴돌고 있을 고향 땅이 싫어 곧 이곳을 떠날 계획이다.

 “물에서 건져냈을 때만 해도 숨이 붙어 있었다고 해요. 해양경찰들이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았고, 또 택시운전사들이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았고, 또 택시운전사들이 문을 닫아건 채 태워주지를 않아 곧장 병원에 갈 수 없었던 거지요.”

 장남 朴■■씨(25·외항선 기관사)와 차남 相■씨(23·원양어선 기관사)는 다리를 그렇게 만든 ‘국가에서 인정한 기술자’들이나 죽어가는 목숨을 바라보고만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다 원망스럽기만 하다.

 10년 전 남편을 여읜 서씨는 그물 고치는 일 등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아 3남1녀를 키웠다.

 사고가 났던 7월30일 오후 5시20분경 서씨는 막내딸 相淑양(18·창선종고 2년)의 옷이 작아 남해읍에 가서 바꿔가지고 돌아오다 변을 당했다. 다리가 무너져내리면서 서씨가 물에 빠지자 소식을 듣고 10분쯤 후 해양경찰이 도착했으나 그들은 서씨를 찾지 못한 채 돌아갔다. 그러자 이곳 물사정에 밝은 한 유람선의 선장이 사고지점으로부터 한참 흘러간 곳에서 서씨를 찾아냈다. 그때까지도 서씨는 살아 있었다는 얘기다. 해양경찰이나 택시기사들이 바라만 보고 있는 사이 시간은 흘렀고 한참 뒤 서씨 고향의 봉고트럭 운전사가 남해읍의 병원에 옮겼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고생도 끝나고 이제 살 만하게 됐는데….” 두 형제는 밖에 나가 있느라 임종을 못해 더욱 안타깝고 원통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들은 또 서씨가 일정한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부산지방국토관리청측에서 보상금을 5천5백만원밖에 주지 않는 데 대해서도 불만을 나타냈다.

 또 한사람의 희생자인 ■成■씨(80·남해군 창선면 지족리 139)는 다리 건너 삼동면 지족리의 양로당에 놀러갔다가 친구와 맥주 1병을 마시고 돌아오던 중 화를 입었다. 사고 당시 ■씨의 며느리 朴明淑씨(36)는 다리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다리가 내려앉았고, 그때 충격으로 박씨는 약을 사다 먹고서야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물론 시아버지가 사고를 당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밤이 지나도록 시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아 걱정을 하면서도 사고로 모든 전화가 불통되어 확인해볼 수도 없어 다만 남해읍에 사는 딸네집에 갔겠거니 짐작했을 뿐이었다. 다음날 시아버지 친구들을 만나 수소문해보니 아무래도 심상찮았다.

 8월1일과 2일 이틀동안 10척씩 배를 세내고 잠수부 6명을 동원해 부근을 샅샅이 뒤진 끝에 형해를 알아보기 힘들게 된 시신을 찾아냈다.

 박씨는 시아버지가 1백20그루의 유자밭을 혼자서 돌볼 정도로 정정했다며 엉터리 공사에 분을 참지 못했다. 박씨는 또 남편이 공직자인 데다 시아버지의 목숨을 돈과 바꾸는 것 같아 합의는 해주었지만 보상금 2천5백만원은 공평하지 못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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