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潤 부총리] “지금은 기업의욕 북돋울때”
  • 박정철 편집위원 ()
  • 승인 1990.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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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받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특히 누구하면 알 수 있는 사람이 오해를 받는다면 그 괴로움은 더욱 클지도 모른다. 그러나 公人이 되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정한 이치이다.

 李承潤부총리. 3·17 개각으로 경제팀의 리더로 등장한 李부총리는 이 사회에서 상당히 알려진 사람이다. 그의 이력과 상향에 대해 평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고, 때로는 그의 사람됨과 생각에 대한 평가에 본인이 서운하게 느끼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인터뷰 도중에 李부총리는 “정경유착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상한다”면서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 자리에 있으면 어느 특정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부총리의 下馬評에 오를 때부터 좋게는 ‘현실론자’, 나쁘게는 ‘재벌의 대변자’라고 규정되었다.

 경제가 어려운 시절에 그는 경제를 맡게 됐다. 정치와 정책의 무게가 묵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의 생각은 우리 경제의 오늘과 내일에 무겁게 실릴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이 강조하듯 과연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인가?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우리 경제를 보는 시각이 밖에 계실때와 행정부에 들어가신 다음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제 경력이 대학교수에서 시작해 국회에도 있었고, 그다음 행정부로 들어오고 그뒤 업계에서도 일하고, 또다시 국회의원도 하고 해서 여러 군데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를 보니까 편파적일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당에 있었을 때나 지금 행정부로 와서나 한국 경제에 대한 시각이나 처방은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각이나 처방은 무엇입니까?

 한국 경제를 볼 때에는 당면문제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측면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장의 원동력이 전환되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환시기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죠. 50년대와 60년대 초기 발전시대는 흩어진 생산요소를 결합해서 팔면 되는 단순한 시대였고, 그때는 유휴자본과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해 외국에서 단순한 기술을 가져와 결합만 하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73년 朴正凞대통령이 중화학공업 육성책을 선언한 다음, 약간 높은 기술수준으로 올라간 뒤 그 기술 가지고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산업구조 가지고는 가격 · 기술경쟁력 등 국제경쟁력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여기서 과감하게 전환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저기술’ ‘중간기술’에서 성장의 새 원동력인 ‘고기술’로 전환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고급기술을 외국에서 가져오려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하는 형편이고, 그들이 주지도 않습니다. 둘째로 수출의 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성장단계로 보아서도 저성장시대로 들어갔습니다. 항상 소년으로 남아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절대빈곤시기에는 저축하고 투자해 생산을 중시하는 사회였지만 이제는 소비중시 사회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방의 완결단계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후진국시절에는 보호무역의 특혜를 누려왔지만, 이미 농산품을 제외하고는 시장 개방률이 98%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일동안 개방되었으면 흡수 능력이 있었을 테지만 빠른 경제성장을 한 만큼 단시일에 산업의 조정이나 농민의 조정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개방되었습니다. 그밖에도 외환시장 등 자본시장 개방도 완결단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노동시장마저 열어야 할 판입니다. 이렇게 급진적인 변화가 구조적 변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큰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단기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성장률이 12%에서 6.7%로 떨어졌지만 그 성장마저도 제조업 투자가 아닌 소비에 의해 촉발된다는 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구조적 전환
시기에 처한 국면에서 대외적인 문제, 그 위에 형평을 추구하기 위해 토지공개념, 금융실명제, 기업에 대한 여신규제 등 극단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이 나와 노임인상 등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의 의욕이 더 떨어지는 그러한 모든 문제들이 한꺼번에 닥치고 있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4·4 경제활성화 종합조치는 단기적 측면이 강조되었다고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기조적 변화의 측면이 크다고 보아야 할까요?

 기조적 의미가 큽니다. 기본적으로 사회평형 · 공평 · 정의추구는 6공화국의 목표이자 과제인데 여기에 단기적 문제가 합쳐져 기업들이 의욕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기업하려는 마음이 없을 때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기업의 환경을 조성해주는  데 초점을 둔 것인데 오해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회는 기업들을 죄인시 해왔습니다. 한동안 중소기업들이 3~5년 뒤에 문을 닫으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서히 그만두겠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랬겠습니까? 기업이 문을 닫으면 우리 4천2백만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리겠습니까? 그래서 기업의 의욕을 북돋워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이야기되는 ‘정경유착’이란 말은 너무나 단순한 논리입니다. 한 나라의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이 어느 한 계층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선적으로 자본주의체제 아래에서는 기업가가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생산요소를 결합해 소득을 창출하고 근로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은 근로자 · 소비자 · 정부와 함께 맞물려 순환하는 것이지 기업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단순한 논리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곤란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경제를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큰 문제입니다.

 

 최근 물가가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고 이번 경제종합대책 발표 이후 물가상승에 대한 걱정과 우려의 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데요.

 분명히 말하고 싶은데, 개각발표가 3월17일에 있었고, 저는 3월 19일에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제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통화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총통화증가율이 올 들어 세달 동안 23.4%나 됐습니다. 이미 불안 요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동안 여소야대 4당구조 아래에서 인기영합적 정책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두 번의 선거를 통해 공약이 남발되고, 어디를 개발하겠다, 농촌부채 탕감해준다 해서 자가상승을 유발하고 수매가를 매년 계속해서 올렸습니다. 그동안 농어촌 부채탕감을 위해 몇 천억씩 해주느라고,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추가경정 예산으로 지출이 되고, 실명제 한다고 하니까 돈은 다 빠져나가서 증시부양한다고 몇조원씩 풀어놓고, 추곡수매가 인상되고 확대 수매되는 상황 아래에서 통화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년 들어 일부 공공요금이 인상되고, 수업료와 학원비, 외식비 등 서비스료, 그 다음에는 농민보호를 위해 쌀값 · 농축산물값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전 · 월세가 올랐습니다. 쌀 · 돼지고기 · 쇠고기 등은 정부가 비축하고 있는 것을 방출해버리면 되지만, 그럴 경우 농촌소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가는 걷잡을 수 있지만 농촌소득을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겠죠.

 

 물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노사분규 측면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번 대책에 물가문제가 소홀하게 다루어졌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대책에 물가문제가 소홀히 되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말입니다. 이번 조치는 1차 조치에 불과합니다. 2차에 부동산, 3차에 물가, 그 다음에 주택안정을 위한 대책이 계속 마련될 것입니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하겠습니까? 그리고 이곳 공무원들은 제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다른 방향을 추구해오던 사람들이어서 제가 왔다고 갑자기 바뀔 수는 없습니다. 물가는 너무 소홀히 하고 성장 위주로만 간다고 비판하는데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나를 성장론자라고 몰아가고 있지만 안정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통화량이 늘어서 물가가 오른다고들 생각하는데 경제는 순환하는 것입니다. 이번 조치에 2조원의 설비투자금이 책정되었지만 그것도 사업계획서를 검토하고, 진척상황을 보아가며 지원할 계획입니다. 그러면 그 돈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결국 돌아서 제1 · 제2 금융권으로 옵니다. 그 다음 정부가 그 돈을 흡수하겠다는 것입니다. 자금의 파이프라인을 어디에다 대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번에는 증권시장에 바로 갖다대어 산업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채 통화량 증발만을 가져왔습니다. 이제는 그 파이프라인을 산업에 대어서 고용증가 · 소득증가를 꾀할 것입니다. 그런데 “통화를 막 풀 것이다”, “정경유착이다”라고 말들을 하는 것은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가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예민한 반응에는 심리적인 요인도 많이 작용하고, 특히 부동산가격의 상승은 이러한 불안을 더욱 크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부동산투기의 근절 등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나라는 땅이 좁은 나라입니다. 우리 인구는 캐나다의 2배인데, 땅덩어리는 그 1백분의1밖에는 안되죠. 따라서 땅값은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경제는 발전하고 사람은 늘어나고 땅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땅값이 오르는 것은 어쩌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오르는 데 있습니다. 투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죠. 소득은 올라가고, 실명제 한다고 하니까 자금이 부동산쪽으로 움직이고, 투자이익이 제일 높아보니까 너도나도 투기합니다. 수요공급이 맞지 않아 오른 것도 있지만 제도 자체의 문제점으로 인해서 촉발된 것도 많습니다. 임대차보호법으로 전세기간을 2년으로 늘림에 따라 전 · 월세가 올라버렸습니다. 경제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고민은 무엇을 강력하게 하려 하면 민법상의 자유계약 침해니, 기본권 침해라는 비난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는 살려야하기 때문에 관계부처와 법조계와 긴밀한 협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의지가 약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지는 강합니다. 부동산 투기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금융실명제 연기에 대한 반론이 많습니다. 부총리께서도 금융실명제를 원칙적으로는 찬성하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원칙적으로는 찬성하지만 그 시기가 아닙니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할 여건이 아직 성숙되지 않습니다. 첫째 토직공개념이 정착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토지공개념이 완전히 정착되어 토지값에 대해 통제가 가능할 때 실명제를 해야 합니다. 4월1일 시행하기로 된  토지공개념 역시 허점이 많습니다. 토지공개념 실시하고 8개월 뒤에 금융실명제를 실시한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금융실명제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다면 부작용만 나타나고 성과는 없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긴축재정을 강력하게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부 공약사업의 우선 순위를 재검토해야 합니다. 재정측면에서도 분명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민생치안 · 환경문제 · 첨단 산업 육성 · 교통난 해소를 위한 지출은 불가피합니다. 국방비 · 교육비 · 의료보험 · 산업하부구조 확충 등을 위해 지출을 줄이기가 실제로는 매우 힘든 형편입니다. 그러나 재정긴축이 매우 어렵긴 하지만 해야 합니다. 국회에 나가서 싸워야 할 부분들이죠. 물가 문제도 그렇습니다. 공공요금 동결, 비축농산물 방출 등을 통해 하려고만 하면 당상에라도 할 수 있지만, 자원분배의 왜곡현상을 가져올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바깥에서 보면 쉬운데 실제 하려고 하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인플레를 극복하려면 1~2년은 고통을 참아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정부의 개혁의지가 필요한 것 아닌지요.

 저의 스승인 프리드먼 교수가 한 말이 있습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 무엇을 하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죠. 국민들이 좀 더 편하게 살려면 사실 세금을 더 내는 길밖에 없겠지요.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낮은 형편입니다. 사실 금융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과세를 하려다보니까 현실적으로 부작용이 많아서 유보한다는 것이지 원리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대만의 경우를 보십시오.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로 증권 값이 폭락해 결국 실시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는 언젠가는 해야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닙니다.

 

 부총리 재임기간에 이것만은 꼭 해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각 경제단위의 의욕을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일입니다. 기업가는 기업을 할 재미가 있고 근로자들은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어 근로의욕이 회복되고, 공무원들은 이른바 심리적 소득을 올리는 일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업가들은 근로자들이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합니다. 실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제3자나 이상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배제된 순수한 노사분쟁은 좋습니다. 그런 것을 통해서 산업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재벌이 생긴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재벌의 이익도 20~30년 지나면 사회로 다 환원되게 되어 있습니다. 기업가들도 자기 욕심만 챙기지 말고, 근로자를 위해 집을 지어준다든지 하는 공생공영의 틀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지금 근로자들이 얼마나 도와주고 있습니까.

 스스로 어떠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십니까?

 저는 빈촌에서 태어나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외로움도 많이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크게 실패한 것 없이 살아왔고 사회가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항상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에 다시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시골에서 국민학교 나와, 국회의원 · 장관 · 부총리 자리에까지 앉게 되었으니 힘 닫는 데까지 사회에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경유착이라는 말을 들을때마다 기분이 상합니다. 이 자리에 있다보면, 어느 특정계측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저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풍요로운 나라를 만든다는 것이 꿈이지, 다른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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