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세다대학교 도바 긴이치로 교수
  • 도쿄 ·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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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겉은 親韓 속은 反韓”

황영조의 마라론 제패는 한국인들에게는 56년 만의 한을 풀어주는 감격을 맞보게 했다. 반면 일본인들로부터는 최초로 일본인 마라토너가 우승하는 감격을 빼앗았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가 역전되는 순간이었다.

 ‘제로섬 사회’란 한쪽이 득을 보면 반드시 다른 쪽이 손해를 보는 사회다. 황영조의 마라톤 우승도 그렇지만 한·일관계는 늘 제로섬 관계로 일관해 왔다.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에서는 근대화의 주역으로 추앙받고, 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한국의 영웅이라는 식이다. 이 제로섬 도식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일본이 북한과 수교 교섭을 추진하면 한국인들에게는 한반도를 분할통치하려는 음모로 비쳐지고, 일본인들은 한반도가 통일되면 반일감정으로 똘똘 뭉친7천만의 가상적국이 출현한다고 야단이다.

 지금 ‘동해’인지 ‘일본해’인지를 놓고 한일 양국에서는 반일·혐한 감정이 교차하고 있다. 지한파 일본인으로 알려진 와세다 대학교 도바 긴이치로 (烏羽銃一郎) 교수(경영사)에게 일본의 혼네(속뜻)를 들어 보았다. 그가 《시사저널》의 인터뷰에 응하며 내건 조건은 자신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해 달라는 것이다. 도바 교수는 77년 고려대학교 교환교수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뒤 새마을운동을 찬양한 《앞으로의 한국》 등 한국 관계 저서 3권을 갖고 있다.

 한국을 언제부터 드나들었나요?

 한 20년 됩니다. 학계를 비롯해 정·재계에도 지기가 많지요. 요전에 한국에 갔을 때는 김종필씨 집에서 보드카를 함께 마셨지요. 한국을 왕래하면서 나름대로 일·한 친선에 기여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분간 한국에는 들르지 않겠습니다.

왜 그렇게 틀어지셨습니까?

 최근 한국의 반일대합창 때문이죠.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언론의 반일보도를 접하게 되면 헤아릴 수 없는 공허감과 함께 일·한관계의 장래가 암담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은 입만 뻥긋하면 반일, 극일을 외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다 친일이지요. 일본 사람들은 안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친한인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다 반한입니다. 불행한 것은 나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일본인이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며칠전 일한친선협회의 다나카 다쓰오(전 통신대신) 회장을 만났더니 “이제 한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난다”고 하더군요. 나같이 20여년이나 일·한 친선에 기여해 온 친한인사가 말입니다. 나 역시 반한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혐한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하루 아침에 친한에서 혐한으로 돌아선 이유는 뭡니까?

 지한파 일본인들을 혐한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모두 한국의 매스컴 탓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한국 언론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한국 언론은 일본이 화제에 오르기만 하면 정부와 일심동체가 되어 반일 대합창을 외치는 게 특성입니다. 평소의 반정부적 태도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말입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침착한 보도자세를 보인 중국과 대만의 언론과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한국 언론에 대단한 불만을 갖고 계시는 것 같은데 선생 자신 <산케이신문>의 <正論>이라는 칼럼을 통해 반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 2월29일자 ‘협한감정의 만연을 우려한다’라는 칼럼은 한국에서도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내가 한국 언론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왜 정신대 즉 종군위안부입니까. 정신대라는 것은 ‘여자 정신근로령’에 따라 동원된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여성들입니다. 당시 그들이 동원된 곳은 공장이지 군 위안소는 아니었습니다. 일본에는 전전 공창제도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즉 매춘행위가 공인되고 있었지요. '女郎屋'이라는 곳입니다. 이 사람들이 군 전속으로 동원되어 중군위안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매스컴은 물론 정부까지 이것을 혼동하여 정신대원은 곧 종군위안부라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미야자와 방일 직전 문제가 된 소학생 정신대도 그렇지요. 소학생 6명이 동원된 곳은 도야마현의 군수공장이었지 군 위안소가 아닙니다. 이른바 ‘근로정신대’입니다. 그런데 한국 언론들은 “열두살 소학생까지 강제로 끌어가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고 보도하지 않았습니까. 일본 하면 감정이 앞서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 언론의 병폐 중의 병폐이지요.

<산케이신문>의 칼럼에서 선생이 지적한 혐한감정이라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그것은 한국이 반복해서 과거사 문제를 끄집어내니까 이제는 제발 그만하라는 얘깁니다. 도대체 한국인은 몇번 사죄를 받고 몇번 보상을 받아야 성이 찹니까. 지난 81년 전두환 정권은 한국이 일본의 반공방파제라는 명분을 내걸고 60억달러의 경협을 요청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40억달러로 결착이 났지만 당시 전정권은 “두번 다시 과거사 문제를 거론치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84년 전대통령 방일 때 히로히토 천황이 “금세기의 한시기에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가 존재했던 것은 참으로 유감이며 두번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사죄했습니다. 그런데 90년 노대통령이 방일하여 또 사죄를 요구했습니다. 이번에는 아키히토 천황이 “귀국이 경험한 고통을 생각하면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고 사죄했습니다. 도대체 정권이 교체되어 대통령이 방문할 때마다 천황의 사죄를 요구하고, 일본 수상이 방문할 때마다 사과를 요구하는 나라가 한국 이외에 어떤 나라가 있습니까. 종군위안부 문제도 그렇습니다. 65년에 체결된 일한기본조약으로 양국의 청구권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상쇄되었습니다. 한국이 종군위안부에 대한 개별보상을 요구하는 식으로 일본인이 식민지 시대에 갖고 있던 재산을 반환하라면 한국이 응하겠습니까. 또 당시는 개별보상보다는 국가보상에 초점이 모아졌습니다. 일본도 한국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일본이 제공한 유무상 5억달러, 민간차관 3억달러로 한국이 오늘의 경제적 기틀을 마련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 아닙니까. 즉 포항제철 소양강댐 경부고속도로 등이 이 자금을 이용하여 건설되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일본 정부가 아니라 한국 정부에 보상을 청구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한국 정부는 그 자금을 활용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만큼 한국정부 스스로 그때 못한 보상을 실시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인도적 차원에서 보면 일본 정부도 어떤 성의는 보여야겠지요. 그러나 국가 간에 한번 해결된 문제를 30여년이 지난 뒤 다시 정부가 이를 거론한다는 것은 외교적 넌센스입니다.

문제는 일본의 사죄가 형식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진심으로 사죄했다면 그런 마찰은 되풀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일한 양국의 문화적 차이 때문입니다. 즉 한국의 '恨의 문화'와 일본의 '미소기 문화'의 마찰입니다. 일본에는 이전부터 몸이 더러울 때 냇물에 몸을 깨끗이 씻고 마음을 바로잡는다는 미소기 의식이라는 행사가 있습니다. 또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사죄하면 용서받는 것이 바로 미소기 의식입니다. 따라서 일본인은 천황의 사죄로 과거사 문제는 결착이 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 속담에도 "잘못을 물에 흘려보낸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한국인은 '恨5백년'이라는 말처럼 좀처림 과거의 한을 잊을 줄 모릅니다. 전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 · 한 관계가 언제까지나 가해자-피해자 구도로 계속되어야 하겠습니까. 세계도 변하고 있지만 일본도 한국도 변하고 있습니다.

혐한, 혐한 하시는데 혐한이라는 말을 뒤집어 보면 '일본식 중화사상'이 아니겠습니까. 본래 혐한이라는 말은 嫌美에서 나온 말인데, 일왕의 방중을 앞두고는 '혐중',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 방문을 중지하자 '혐러'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즉 혐한 현상이란 한국에 대한 우월의식, 대국의식에서 나온 '한국 괴롭히기'가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시각이 일본의 혐한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캄보디아에 자위대를 파견하려고 할 때 한국 언론들은 오늘 당장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할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캄보디아 파병은 일본 단독행동이 아니고 유엔의 깃발 아래 자위대가 나가는 겁니다. 만약 자위대의 캄보디아 파병을 군국주의 부활로 해석한다면 한국군의 캄보디아 파병은 뭐라고 해석해야 합니까. 한국군은 평화의 사자이고 자위대는 죽음의 사자라는 겁니까. 이것이야말로 '일본 괴롭히기'가 아니고 뭡니까. 또 한국에는 '한국식 중화사상'이 없습니까. 한국인이 좋아하는 화투놀이를 예로 들어봅시다. 지금 한국인 중에 화투놀이가 일본의 에도시대에 생겨난 유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화투를 유심히 보면 '사쿠라'는 있어도 '무궁화'는 없습니다. 또 일본이 금방 군사대국화할 것처럼 떠드는데 현재 일본의 방위비는 70%가 인건비입니다. 방위비의 절대액 비교만으로 군사대국, 군사대국 해도 일본인들은 납득이 안갑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젊은이들은 절반 이상이 전쟁이 나면 도망가겠다고 대답합니다. 깊은 산속으로 말이죠. 원자폭탄이 터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으면 그때는 별 수 없다는 겁니다.

한국 언론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일본이 잠재적 군사대국이라는 것이지 당장 군국화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우파 지식인물이 한반도가 통일되면 일본에 위협이 되니까 통일을 제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무엇입니까. 한국이 통일되자마자 금방 일본을 침략한다는 얘깁니까?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교토대학교 명예교수 아이다 유지, 평론가 다케무라 겐이치씨 등이란 말이죠. 그 사람들은 한반도 전문가도 아니고 한국에 대해서는 문외한들입니다. 그들의 말에 크게 신경쓸 것 없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일반 대중을 오도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의 논리대로라면 한국에서 거론되고 있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논의도 문제삼지 말아야 합니다. 한· 일 간에 마찰이 심화되는 원인을 살펴퍼보면 일본의 도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듭니다. 예를 들면 '일본해'라는 명칭을 ‘평화바다'라고 한다거나 또는 두 나라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명칭으로 바꿔보자는 제안이 일본에서는 왜 제기되지 않습니까?

 일본해를 동해나 한국해로 바꾸자고 한국측이 주장하고 있는데 동해로 바꾼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일본인들의 방향감각은 어떻게 됩니까. 서쪽바다를 동쪽바다로 불러야 되니 말입니다. 또 중국이 동지나해를 동해로 부르고 있으니 이 명칭은 부적당합니다. 한국해로 하면 북한은 그러면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한국인도 도량이 부족하다는 얘깁니까?

 미야자와 수상이 방한했을 때 머리띠를 두른 아낙네들이 파고다공원에서 ‘돼지(일본인)는 죽어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미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지 아십니까. 흑인들이 한국계 주민들에게 ‘동양의 수전노’ ‘말을 듣지 않으면 가게를 태우겠다’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한국인의 인종차별도 일본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부족한 게 뭐 있습니까. 예를 들면 한국 기업의 맹렬한 경영방식은 중국·동남아시아에서 여러 마찰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또 현지의 술집 등에서 한국인들의 방약무인한 태도는 이전 똑같은 추태를 부렸던 일본인의 눈에도 너무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재일한국인 차별에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이르기 까지 늘 일본의 도덕성을 비판해 왔습니다. 그러나 재일한국인들이 일본에서 차별받는 것은 물론 한국에서도 차별받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또 하루 아침에 대만을 차버리고 중국과 수교한 한국의 즉석외교는 문제가 안됩니까.

한·일 간의 거리가 더욱 밀어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최악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출구는 없습니까?

 한국이 언제까지나 과거 문제에 집착하는 한 당분간 출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세월이 약이라면 약이겠죠. 일본도 과거의 일본이 아닙니다. 일본이 변하면 한국도 그에 상응한 변화가 있어야 대화가 가능합니다. 다시 말하면 일·한관계란 더이상 '특수한 관계'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수많은 외국 중의 한 나라가 일본이고 한국이라는 인식이 지금 필요합니다. 한국인은 일본인과는 다르다는 인식이 결여돼 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 자기 본위의 과도한 기대를 거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 본위의 기대가 허물어지면 이에 대한 반동이 엄청나고, 결국 악의에 찬 편견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일본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새로운 대일관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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