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이미지의 합창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0.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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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종교 화폭에 담는 허 진

화가 허 진(28)은 우선 남다른 배경과 이력으로 세인의 관심을 근다. 4대에 걸쳐 다섯명의 화가(許 0,許 0,許 0,許 林,許 文)를 배출한 小0 00가문의 5대손이자. 4세 때 앓은 열병으로 보청기에 의지하는 아픔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가 작업실에서 펴보이는 〈현대 십장생도〉는 “현실에 있는 자들이 갈구하는 것들을 그린“상상 속의 십장생도이다. 임산부로 시작해서 축복을 내리듯 손을 치켜든 사제,기타를 둘러멘 젊은이, 학사모를 쓴 졸업생, 영화〈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포스터에 그려진 여자, 그리고 장의사등이 10폭 병풍에 담긴  십장생도를 구성하고 있다.

  그는 대학졸업 후 ‘그림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2년간 방황하기도 했다. ??결국 나 자신의 존재를 뿌리에서부터 거슬러오르며 확인하는 작업으로 귀결되더군요. 역사와 정신적인 원류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라고나 할가요“ 그래서 그는 ??즉흥적’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소재로 사용한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소재들은 전통적인 동양회화의 바탕을 이루는 문양.기호.문자.초상과 섞이면서 새로운 형상으로 떠오르게 된다. 더러는 화선지를 구겨 그림을 그린 후 펼치는 독특한 방법도 이용한다. 이렇게 하면 마치 칼로 형상을 해체한 것같아 현대인의 소외.비인간화.부조리 등을 담아내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의 특징은 큰 그림 한 장을 장방형.정방형.마름모형.화살표 등으로 조각조각 나누어 제작한 뒤 다시 모자이크하듯이 배열하는 것이다. 서울대 李00교수가 “그의 그림은 단일 이미지 속에서 이미지의 합창을 구현해내고 있다“고 평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이미지들의 합창‘은 그의 개성이자 뚫고 나가야 할 벽이기도 하다. 이교수가 ??미완성의 대가”라고 한 것이나, 이화여대 000교수가 ??발묵의 효과적인 처리로 추상성과 구상성이 잘 어우러졌다“고 하면서도 ??모티브를 너무 강조해서 주제가 약화된 점이 흠”이라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6월20일부터 7월19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젊은 모색‘90-한국화의 새로운 방향’에 출품할 작품의 마무리에 한창이다. ??부적‘을 소재로  한 작품을 제작하는 이유는 ??끈적거리는 민족의 혼을 잡아내어 민중들의 삶에 스며 있는 기충종교를 그려내고 싶기 때문“이란다. 이는 전통적인 기법을 현대적으로 수용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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