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죽만 울린 반공교과서 틀깨기
  • 박봉순 (작가ㆍ객원편집위원) ()
  • 승인 199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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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마유미〉등‘이데올로기’영화, 영상언어는 세련

시대불명ㆍ국적불명의 예술이 무엇이냐하면 그 대표적인 것으로‘국산영화??를 꼽았었다. 여기에 울리기ㆍ웃기기ㆍ벗기기까지 가미시키면 그건 여축없이??고무신 영화??의 구비요건을 갖추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무언가가 달라져 있다. 오랜만에 우리 영화를 본 느낌은 우선??그림??이 깨끗해졌다는 점이다. 영상미학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하게 꽉 찬 화면구성을 대하게 된다. 단순히 촬영기재가 좋아졌대서가 아니라, 카메라 만년필, 즉 그 영상언어가 보다 세련되어졌음을 볼 수 있다.

 〈남부군〉이라는 영화는 지리산 빨치산 체험을 지닌 이 태의 수기를 토대로 한 것이며, 〈마유미〉는 KAL기 폭파의 김현희의 실화를 영화화한 것인데, 초입부터 두 영화는 거짓말 보태지 않은 사실에 의거한 것임을 자막으로 내보내고 있는바, 이 또한 한국영화의 과거 관례와는 다르니 관심을 끈다. 국적불명ㆍ시대불명이 아니라 국적분명에다가, 시대ㆍ사건ㆍ주인공 모두 분명임을 애시당초 강조하고 있는바 과연 영화가 달라진 것인가 관객이 변해버린 것인가. 나아가서 울리기ㆍ웃기기ㆍ벗기기 따위와는 전혀 다른 엄숙주의를 그 주체로 하고 있음을 처음부터 분명히 하고 있는데,‘비극의 분단사 실상??이라든가,??이데올로기 갈등이 빚어낸 테러리즘??이 영화산업의 소재이자 대상이랄 수 있다니, 이는 한국영화 고객의 입맛이 소프트웨어에서 하드웨어도 달라져가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일까, 아니면 난해하기로 소문난 영화검열이 딱딱함으로부터 부드러움으로 약간 풀어진 소이연일까. 아무러하든 우리 영화가 현실을 되찾아내고 있을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민족문제까지 검증해보겠다고 덤벼드는 일은 참으로 기특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전국민의 80%는 6ㆍ25를 역사교과서에서만 만난다고 할 만치 변해버린 이 시대에〈남부군〉은 오늘의 청춘들에게 너무 아부하고 있다. 진실만을 밝히겠다면서 지리산 빨치산 생활의 영상이 자못 화려하되 엉성하기 그지없고, 무엇보다‘민족문제??의 아픔과 고뇌에 화학조미료라 할까, 케첩이라 할까를 들척지근하게 발랐다. 일컫자면 분단의 구조적 모순을 밝히는 것은 아직 어렵고 그래서 휴머니즘적 접근, 곧 이데올로기의 반공 교과서적 눈초리를 벗겨내어 민족공동체의 인간가족이 갖는 살아 있는 표정을 발견했다는 것이 되겠는데 그것이 50년대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90년대의 얼굴모습이니, 관객의 역할은 적당히 어리석게 속아넘어가는 수순일밖에 없겠다. 다만 지리산의 풍경만은 펄펄 살아서 용솟음치는 영상으로 파도를 치고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의??다큐멘터리??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겠다.‘수고했소’소리를 받을 만하겠다.

 수고를 하기는 했겠지만 딱한 쪽은 영화 속의‘마유미??이다. 도무지 식물인간이며, 휴먼드라마가 아닌??국제 테러리즘 응징??의 이데올로기에 꼼짝 못하고 붙들려만 있어서 그 화려한 국제도시 행각이 도저히 첩보영화 따위에 미치지 못한 뿐더러, 스토리 자체의 도식성ㆍ상투성으로부터 벗어나보겠다는 연출자의 의도 그 자체를 몽땅 탄로시키게 할 따름이다.

 한국영화가 한국인들의 현재 수준의 꽁무니에 뒤쳐져 질질 매달려오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할 쪽은 누구일까. 관객은 아닐게고 당국자와 당사자들일 게다. 사회의 민주화 대열에 영화가 끼어들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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