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긴급 상황 대비해야”
  • 송일 교수(한국외국어대.무역학) ()
  • 승인 1994.09.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 일 교수의 해외석학 취재기 / “북한 체제 붕괴는 예정된 시계 바늘”

 거지와 마약 중독자와 실업자. 이것은 통일전에는 볼 수 없었던 통일시대 독일의 새로운 풍경이다.

 “통일이 되어서 기쁩니까?”
 “물론이지요.”
 “통일 비용 때문에 세금을 더 내야 할 텐데 부담이 되지 않습니까?”
 “어쨌든 국민의 의무니까 내야지요.”

 이것은 서독 지역에 거주하는 독일 국민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우리 취재반을 실은 차가 동독 지역의 도시를 통과하여 체코로 향하고 있을 때이다. 차가 라이프치히 시내에 진입하면서 전쟁의 포성이 마치 엊그제 멈춘 것과 같은 잿빛 시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파괴된 건물은 방치되어 있었고, 서독은 자금과 건설 장비가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도시 전역이 거대한 건설 현장으로 변해 있었다. 통일이 되면 우리는 무슨 돈으로 북한을 저렇게 개발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라이프치히 한복판에서 우리를 태우고 가던 독일인 운전사는 이렇게 말했다. “통일 이후 독일 국민은 신혼 때 침실을 따로 쓰는 부부와 같지요. 서독인의 80%는 이혼은 상상도 하지 못하면서 결혼을 후회하는 남편과 같습니다. 우리 세금을 20~30%씩 잘라내 지원해도 동독인은 생활이 어렵고 차별당한다고 투덜댑니다. 40년 동안 정부가 시키는 일 외엔 스스로 결정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 도전과 경쟁의식은 전혀 없고….”

 “인터뷰 때 통일을 후회한다고 말한 사람은 하나도 없던데요.”
 “물론이지요. 솔직한 생각을 마이크에 담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나는 뒷자석의 사진기자에게 촬영 준비를 부탁하고, 달리는 차 안에서 독일인 운전사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독일인의 절반은 통일을 후회하고…” 하더니 그는 NG를 내며 “죄송합니다. 텔레비전 방송에 70~80%라고 솔직히 말하기는 어렵군요.” 우리는 ‘불만 세력’을 50%선으로 하기로 합의를 보고 무난히 인터뷰를 끝냈다.

 라이프치히 시장은 반대 시각에서 동독인의 심리적 갈등을 표현했다. “통일 이후 해마다 1천6백억달러를 동독 지역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영화 과정에서 서독인이 기업을 떠맡고 지방 정부도 서독인이 기업을 떠맡고 지방 정부도 서독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동독인의 소외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동서독의 소득 격차도 발표된 통계 이상으로 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므로 미래는 밝습니다.”

 통일을 기념하여 개최된 지 네 번째를 맞는 베를린 테크닉 뮤직 페스티벌에서 열광하던 군중들이 뇌리에 되살아났다. 젊은이 만여 명이 거대한 분수를 가득 메운 채 사이키델릭 음악에 맞춰 광란에 가깝게 소리치고 춤추며 꼬박 하루 밤과 낮을 이어지던 축제. 그들은 억압으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노래한다. 그러나 통일 이후의 말못할 울분과 허탈한 메아리가 베를린을 메우는 것만 같았다.

“통일 한국 경제는 독일보다 2배 힘들 것”
 통일의 충격과 후유증은 역시 경제 문제에 그 원인과 해결의 열쇠가 있다. 슈미트 전 독일 총리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6천2백만 서독인이 1천6백만 동독인과 4 대 1의 비율로 통일했습니다. 4명이 1명을 먹여 살리는데도 이렇게 후유증이 크니 남북 간의 인구 비율이 2 대 1인 한국의 경우는 우리보다 적어도 두배는 힘들리라 봅니다.”

 함부르크경제연구소 칸첸바하 소장은 오늘날 동독 기업의 경쟁력 상실, 파산, 대량실업 등을 지적하면서 그 원인이 주로 동독 주민이 서독으로 대거 이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북 통일 때 될 수 있으면 국경을 막고 남북한의 노동 시장과 자본 시장을 분리하는 방안을 피력했다.

 그러나 독일의 4대 국책경제연구소 소장들(호프만 베를린경제연구소 소장, 지버트 킬연구소 소장, 폴 할레연구소 소장, 칸첸바하 함부르크경제연구소 소장)과 인터뷰하면서 필자는 독일보다 유리한 한국의 경제적 이점을 말했다. 즉 서독과 동독의 산업은 효율과 기술에 격차가 있었을 뿐 같은 기계화학산업이었으나, 우리는 남쪽의 기술ㆍ자본과 북쪽의 노동력, 남쪽의 중화학공업과 북쪽의 경공업이 보완적으로 결합될 수 있어 통일 경제의 시너지 효과는 독일보다 클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그들도 이 점을 대단히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지난 6월 워싱턴에 있을 때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돌아 슈퍼마켓에 라면과 쌀이 동이 났다는 것이다. 우리도 라면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며 ‘거기 높은 사람 만나서 무슨 소리 못들었느냐’고 물었다.

 통일되기 전에는 앞으로도 ‘라면 파동’ 같은 소동이 수없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2의 6ㆍ25가 발발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김일성이 신뢰했던 외국 인사 다섯 명 가운데 한 사람인 윌리엄 테일러(국제전략연구소 부소장)의 말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경제 파탄 직전의 상황이며, 전쟁 도발 같은 자살 행위는 안할 것이라고 속단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북한은 이성적ㆍ논리적으로 추리하기가 힘든 집단이며, 김정일은 김일성보다 강경하고 보수성이 강한 인물입니다.”

 키신저는 전쟁을 억제하는 확실한 수단으로 한국이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이건의 대소 군사력 우위 전략이 소련의 팽창을 억제하고 결국 경쟁에서 패퇴시킴으로써 동서 냉전을 종식시켰다는 점은 한국에도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 여론이 기대하는 남북의 평화공존과 그에 따른 점진적 통일 가능성은 어떠한가. 핵 프로그램은 북한으로서는 심각한 정치적ㆍ경제적 사활이 걸린 그들의 마지막 승부수이다. 브레진스키는 북한의 핵계획에 관해 비교적 명쾌하게 요점을 정리했다. “최근 심각한 경제난과 함께 북한의 핵개발은 체제 유지와 위기 탈출의 유일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첫째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과 서방의 경제 지원을 얻고자 하는 협상 도구로 쓰는 것이며, 둘째는 진퇴양난의 현 국면에서 시간을 끌어 핵폭탄 양산 체제를 구축하면서 제3세계를 고객으로 하는 핵쇼핑센터를 평양에 만들자는 것인데, 아마도 이 두 가지 콤비네이션을 함께 쓰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북한과의 협상에는 당근뿐 아니라 채찍도 필요할 경우가 있다고 봅니다.”

 키신저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하면서 카터의 방북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40년 철권 독재자 김일성이 10년을 몰두해 개발한 핵계획을 카터 대통령과 대동강에서 뱃놀이 한번 했다고 해서 생각을 바꾸겠어요. 남북 정상회담도 연료봉 처리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고 봅니다.”

 윌리엄 테일러는 최근 김일성이 자기를 만날 때마다 식량과 에너지 수입에 필요한 외화 빈곤을 노골적으로 걱정했다고 전한다.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가로 외화를 보상받거니 핵폭탄이나 플루토늄을 수출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외화는 일본 조총련이 송금하는 연 1억달러 미만에 불과하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본주의 전염병’
 소련이 무너지기 직전 ‘공산주의 필연적으로 붕괴한다’고 주장한〈역사의 종언과 마지막 인간〉의 저자 프란시스 후쿠야마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북한이 중국식 모델을 따르는 것이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북한이 개방하면 북한 체제와 주민은 한국의 자유와 풍요에 흡인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브레진스키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이 40년 권력을 지탱한 기반은 절대 폐쇄체제입니다. 문호가 개방되어 주민들이 한국과 외국의 생활 수준을 알게 되면 북한 체제는 존재하기 힘들지요.” 테일러의 의견은 좀더 구체적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입버릇처럼 개방으로 인해 북한 주민이 ‘자본주의 전염병’에 물드는 것을 두려워했지요. 북한은 만일 개방하더라도 두만강ㆍ청진ㆍ나진ㆍ금강산 등 동북부 해변가를 특별 지역으로 제한하고 주민의 접근을 봉쇄할 것입니다.”

 개방을 거부할 경우 북한에게는 그들의 밀폐된 공간 속에 갇힌 2천4백만 주민의 집단 질식사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러시아의 세라주디노비치 박사는 다음과 같이 북한의 미래를 예측한다. “세계의 모든 공산 국가가 체험한 최후의 종착지를 북한만 예외적으로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그들의 개방은 불가피하고, 아무리 조금만 개방한다 하더라도 자유의 거센 폭풍이 체제를 무너뜨릴 것입니다. 이것은 소련과 동유럽의 모든 국가가 경험한 시계바늘처럼 분명한 역사의 예정된 발길입니다. 북한이 무너지면 상상하기 어려운 혼돈이 초래되겠지요. 천만명 이상이 휴전선을 부수고 남쪽으로 밀려 내려올 것이고, 수백만이 중국으로 몰려갈지 모릅니다. 내가 아는 한국의 학자나 관료들은 5년 또는 10년간 북한과 협상해 평화 통일을 이룬다고 하지만….” 그리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은 빨리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나는 갑자기 긴박감을 느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지뢰를 밟게 될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통일을 위한 최소ㆍ최저 조건을 확보하는 일이 긴급한 상황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