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속 빈곤으로 방황”
  • 코펜하겐ㆍ김진웅 통신원 ()
  • 승인 1994.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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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1세대’ 이유순씨 “정신 황폐ㆍ사회 부적응 많아”

어릴 적에 화상으로 손가락 6개를 잃고 부모와도 헤어져 고아원에서 생활하다 75년 홀트아동복지회 주선으로 덴마크 가정에 입양된 이유순씨(43). 그는 모진 고생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코펜하겐 시 사회복지국에 근무한다. 입양에 관한 논문으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덴마크의 한국 입양아와 입양 부모들의 문제를 상담해 주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코펜하겐에 사는 그를 찾아 덴마크에 입양된 한국 입양아들의 실태와 문제점에 대해 들어보았다.〈편집자〉

한국에서 덴마크에 입양을 시작한 시기와 입양 대상 그리고 지금까지 입양시킨 어린이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6ㆍ25 전쟁이 끝나고 대략 5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60년대에는 전쟁 고아와 혼혈아가 많이 입양되었고, 70년대부터는 주로 미혼모가 낳은 사생아와 가난으로 말미암은 고아들이 많이 왔다. 덴마크가 언청이 수술을 잘한다는 소문이 퍼져 70년대에는 언청이들이 많이 입양되기도 했다. 이렇게 입양된 한국 어린이들의 숫자는 대략 6천~7천명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어린이를 덴마크ㆍ스웨덴 등 유럽 국가에 보냈고, 지금도 계속 보내고 있다.

해외 입양아 중에서 한국 입양아가 제일 많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덴마크 사회의 일반적인 여론은 어떤가?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곳 사람들은 한국 하며 우선 입양아를 떠올린다. 전쟁 후 60,70년대의 어려웠던 시절을 지나 그동안 경제가 성장했는데도 여전히 입양아를 많이 보내는 것을 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60,70년대에 입양된 어린이는 지금 20,30대 성년이 되었을 텐데 이곳 사회에서 이들은 대체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
유감스럽지만 잘 적응하면서 사는 것을 별로 보고 듣지 못했다. 입양아들이 한국에서보다는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성장하면서 정신적인 방황을 많이 한다. 사회에서 소외되어 희망 없는 삶을 살아가는 입양아도 많다. 한 예로, 한국 고아원에서 함께 지냈던 ㅎ씨는 이곳 교사 가정에 입양되어 국제경제학을 전공하고 대학까지 졸업했으나 항상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적 방황을 했다.

그러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문제가 있는 양부모를 만나 고생하거나 이용당하는 것을 종종 보고 듣고 분노를 느끼게 되는 때가 있다. 내가 잘 아는 피아(가명)라는 여자 아이는 이미여섯이나 친자식을 둔 집에 입양되었다. 양부모는 그에게 아침부터 밤까지 일만 시켰다. 그는 입양된 집의 식모에 불과했다. 물론 입양아 자신으로부터 비롯한 문제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이들의 고통은 개개인이 감당하기 힘들다.

자식을 갖지 못하는 가정이 입양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이미 친자식을 여럿 둔 부모가 아이를 입양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여기서는 사회복지 제도가 잘 발달되어 자식을 키우는 데 개인이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교육ㆍ의료 등 사회 시설을 이용하는 것은 무료이다. 오히려 부모는 자녀양육비 등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는다. 따라서 양부모 쪽에서는 입양해서 손해를 보는 것이 별로 없다.
 
그동안 많은 입양아ㆍ입양 부모를 대하면서 느낀 점, 그리고 이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입양 부모가 아이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장래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비책 없이 받아들였다. 따라서 입양된 아이들이 성장해 스스로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양부모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특히 언어ㆍ문화ㆍ역사 등 한국에 관해 알고 싶어할 때 부모들은 한계를 느끼게 되고, 이에 대한 조언을 구해오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입양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한국을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활성화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한국의 협조가 없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한국의 입양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우선 입양 대상이 되는 어린이, 특히 미혼모가 낳은 사생아들에 대한 바른 성교육을 통해 이들에 의해 버려지는 아이를 줄여야 한다. 또 부모를 잃고 버려진 불행한 아이들을 위한 사회 복지 및 교육 시설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입양아 개인의 불행을 막는 것은 물론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도 해외 입양을 재고해야 한다.
코펜하겐ㆍ金鎭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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