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투자 선점하라
  • 임익준(북한 경제 전문가) ()
  • 승인 1994.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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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들 ‘경제 요충’ 인식, 적극 진출 움직임… 한국, 기회 놓치면 ‘부담 두배’

미국과 북한 간의 최대 현안이던 북한 핵투명성 보장 및 핵확산방지조약(NPT) 완전 복귀가 단계적으로나마 해결될 조짐을 보임에 따라 미 · 북한 양국의 진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미국이 경제적 실리주의를 앞세우는 조짐은 특히 동북아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과거의 군사봉쇄 조처와는 달리 미 행정부는 상호 이익이 연관되는 경우 심각한 대결국면은 되도록 피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해당국 정권이 갑작스레 무너지기보다는 점진적 변화와 민주적 개혁을 자체적으로 진행해야 미국의 장기적 이익에 훨씬 부합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투자 타당성 조사 마친 미국 기업들
브라운 상무장관은 지난 10월 첫째주 의회 증언에서 중국(홍콩 포함) · 한국 · 인도에시아 · 인도 등 열 나라를 전략적 시장으로 선정하고, 이 나라들은 앞으로 20년 안에 세계 전체 수입량의 40%를 차지할 미래의 격전장이라고 명시했다. 미국의 이러한 통상정책의 연장선에서 북한이 가진 지리적 위치, 겨???제적 잠재력이 마국 경제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21세기 미국의 동북아 전략은 더 이상 공산주의를 봉쇄하는 데 있지 않다. 미국은 이 지역 패권 세력으로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본 · 중국 ·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동북아시아에서 이상적인 균형자 노릇을 하고 자국의 정치 · 경제 · 전략적 이익을 확보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한반도의 위치가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거대한 소비 시장으로 떠오르는 중국, 외화 최대 보유국인 대만, 자원이 가장 많은 러시아, 기술 및 자본이 최대 부국 일본 등 경제 강국들이 인접해 있어, 미국으로서는 한반도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교역 및 투자 대상 지역이다.

북한의 대미 접근도 흥미롭다. 과거처럼 명분이나 체제 홍보적 외교에 집착하기보다는 정치 · 경제적 실리 추구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적 어려움이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미국에 접근함으로써 확보할 수 있는 실리는 의외로 많다.

정치적으로는 김정일 후계 체제가 국제 사회로부터 승인을 얻어 국내 위상을 굳건히 하고, 국제 사회에 자연스럽게 편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적으로는, 초기 단계에서는 서방 기업이 북한에 직접 투자하는 형태보다는 핵개발 중단, 제3국에 대한 무기 수출 중단 등 서방에 대한 우호 정책의 대가로 주어지는 경제원조, 해외 친북한 교포들로부터 각종 경제 지원 등이 예상된다. 또한 북한이 가장 우려했던 가상 적인 미국과 관계 를 개선하는 데 따른 군비 축소를 통해, 그동안 군사 분야에 충당해 오던 비용을 경제 건설에 전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미국의 국제적인 지원 아래 국제 금융기관(아시아개발은행 · 세계은행)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되어 금융 지원 혜택이 예상된다. 중동 지역 무기 공급 중단에 따른 대가로 약 10억달러의 경제 원조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 40억~백억달러까지로 예상되는 일본의 전후 배상금, 재일 조총련 공유 자산 합법적 이용, 재일 · 재미 친북한 교포들의 송금 확대 등이 있을 것이다.

이번에 타결된 미 · 북한 간의 합의문에 명시한 바와 같이 무역 및 투자 제한 조처가 일부 해제될 경우 우선적으로 의회의 승인 없이도 미 행정부의 자체적인 법 개정에 의해 민감한 전략 품목을 제외한 일반 상품 · 서비스 · 기술 교역이 자유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북 투자도 선별적으로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재미교포 계열인 통일교 계열 기업, 금강산 국제그룹, 최근 홍콩에서 북한산 신덕샘물을 판매했던 케니플라스틱사의 북한 합작회사인 ‘조선샘물회사’ 등이 북한과 경제협력 활동을 하고 있다. 순수 미국계 기업으로는 미국내 장거리 및 국내 전화를 전문으로 하는 AT&T, 국제화물 특송업체인 페더럴 익스프레스, 유나이티드 파셀 서비스, 코카콜라, 펩시콜라 등이 홍콩이나 중국의 현지법인을 통해 북한 진출 조사를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 · 북 경협 시발점은 나진 · 선봉 지대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92년 이전부터 두만강개발계획에 관심을 가지고 유엔개발기구(UNDP)를 통해 고문 역할이나 법률 자문을 해 왔다는 사실이다. 미국 기업은 이미 두만강 지역을 방문한 바 있고, 개발에 참여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93년 9월 일본 경단련 주최 두만강 개발 관련 세미나에서 유엔개발계획 실무자가 밝혔다고 한다. 또한 5월26일자 <일본 경제 신문>이 3단계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이 나진 · 선봉 지대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따라서 미국의 북한 진출은 통신 · 복합운송 · 청량음료 분야에서 우선 진출하되, 그 지대가 평양보다는 나진 · 선봉 지대가 더 유력하다. 교역에서는 미국 곡물 업체가 90년 이후 실제로 약 12억달러에 상당하는 곡물을 수출하도록 승인을 받은 상태이고, 99~92년 미국 기업이 광산용 기계 및 부품 48만2천달러어치를 북한에 수출했다. 미국 기업이 북한으로부터 수입하기 원하는 품목은 주로 광산물 · 비철금속과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만든 경공업 제품(신발 · 의류 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89년 41만달러 상당의 석탄을ㅇ 북한으로부터 수입했고, 철강 5만달러어치와 신발류 8천달러어치를 수입한 적이 있다.

중국에서 영업을 하는 상당수 미국 기업은 원자재와 반제품을 북한에서 구입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다. 따라서 미국은 앞으로 단기적으로 곡물 · 생필품 · 정유제품 등을 북한에 수출하고 광산물 · 비철금속 · 임가공 품목을 북한으로부터 수입할 가능성이 있다. 교역 방식은 북한의 외환 부족을 고려하여 초기에는 구상무역 등 다양한 방식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과 교역이 이루어져도 초기 단계에서는 특정 국가가 독식하는 일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북한이 수용하지도 않을 뿐더러 서방 진출 국도 투자 위험을 분산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동서독의 사례에서도, 서독 기업들이 동독 진출을 먼저 시도하나 뒤에 서방 기업들이 뒤이어 진출했다. 중국이 심천 · 주해 등에 경제특구를 설치한 초기에도, 일본 기업은 화교 기업이 먼저 진출해 일정한 이익을 남긴 뒤 본격 진출했다.

북한 산업 구조, 일본 의존형 될 수도
따라서 현재 미국 · 독일 등 일부 서방 국가들이 보이는 북한 방문 움직임은 초기의 투자 타당성 조사 차원에 불과하며, 투자를 본격화하는 단계에서는 한국 기업과 동반 진출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단지 금광 · 철광 등 자원개발 분야, 도로 · 철도 · 항만 · 통신 등 독점개발 이용권 · 사용권 획득을 통한 선점 이익이 많은 분야에서는 상호 경쟁적 진출이 예상된다.

교역과 투자 면에서 이미 어느 정도 진출해 본 경험이 있는 일본은, 전후 배상금을 투자 형태로 전환해 북한 진출을 본격화할 것 같다. 이는 일본이 동남아를 국내 사양 산업의 생산 및 공급기지로 삼은 것과 마찬가지로, 대외원조 자금을 미끼로 북한을 부품 조립 · 생산 기지, 가공산업 기지화해서 현재 한국처럼 일본에 기계 및 기술을 의존하는 산업 구조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서방 기업을 유인하기 위해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형식적으로만 추진하고 실질적으로는 외국 기업과의 협력 관계만을 희망할 경우, 외국 자본 · 기술에 대한 대외 의존도가 심해져 우리 기업에게 이중의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신뢰 회복을 위한 진정한 시도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명분에 집착하기보다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분야에서 상호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간접자본건설 등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거나 투자 이익이 단기간에 회수되지 않아 외국 기업이 진출하기를 꺼리는 분야라 할지라도 우리 기업이 먼저 진출하여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등 자신감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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