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상륙’ 첫번째 기업은?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4.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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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우 한발짝 앞선 가운데 ‘과당 경쟁’… ‘북한식 비즈니스’ 함정에 빠질 수도



新悳샘물이란 상표는 싱가포르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북한산 생수는 칼륨 · 나트륨 · 마그네슘을 다량 함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북한의 조선샘물주색회사가 남포시에서 생산하는 이 생수는 현재 동남아와 중국, 일본에까지 수출되고 있다. 이처럼 유망한 북한 상품을 국내 기업들이 가만둘 리 없다. 국내 생수시작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으며, 외국산 생수 수입 허가도 곧 나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덕샘물을 반입하려고 북한측과 접촉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각종 단체를 합쳐 28개에 이른다. 이들은 저마다 이 생수를 국내에 독점 공급하기로 돼 있다고 공언한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그토록 많은 업체와 접촉해 독점 판매권을 남발했을까. 조선샘물주식회사측과 세번째로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는 한 재미교포 업자는 그것이 바로 북한의 비즈니스라고 설명했다. 이 사업에 관심을 가진 모든 업체에게 사업 참여 기회를 줘 가능한 좋은 조건을 얻어내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북한측은 국내 기업들의 북한 투자 생리를 잘 읽고 있다. 생수를 가공하고 포장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수백만달러를 선뜻 내놓을 기업은 거의 없다. 큰 위험이 따르는 북한 투자에서 국내 기업들의 첫번째 계명은 ‘계약은 남보다 빨리 하되 실질적인 투자는 가능한 늦추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의 교역이나 합작 사업에 관심을 가진 국내 기업은 많은 반면 북한측 창구는 하나라는 구조를 잘 활용하는 것이 북한측으로서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북한 핵 문제 타결로 남북 경제협력 분위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과당 경쟁 풍토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 유관 부처가 대책을 서둘러 마련하고 있고, 업계에서도 자성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제기획원이 구상중인 해법은 단계적 접근법이다. 기업들이 지나치게 서둘러 북한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10월20일 경제기획원은 종합상사 북한팀 실무자들을 불러 이같은 정부 방침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경제기획원 관계자는 대북 경협과 관련된 정부 방침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며, 기업들이 너무 앞서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상공자원부는 사업 우선 순위를 마련하는 방향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대북 경협 사업 가운데 시범적으로 2~3개를 우선 추진하게 하고, 참여 업체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대기업 · 중견기업 · 중소기업으로 고루 나눌 예정이다. 다만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잡음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상공자원부 관계자는 “정부는 기본 틀만 정해 주고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조정하되, 남북교류 추진위원회 같은 기구를 보강해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또 남북 교류협력에관한법률과 남북협력기금법을 중심으로 한 남북교류협력 관련 법규의 일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률에 따르면, 남북교류협력사업은 통일원의 승인만 받게 돼 있어 상공자원부가 사실상 배제됨으로써 사안에 대한 경제적 판단이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통일그룹, 김일성 조문 등 적극적
정부의 방침에 발맞춰 업계의 분위기도 변하고 있다. 10월10일 金宇中 대우그룹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북한 진출에 주도권을 잡으려는 대기업간 과도한 경쟁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자리에서 더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문제 제기 자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참석자가 공감했다.

더울 괄목할 변화는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들 간에는 북한이 초청장 발부나 갱신을 빌미로 커미션을 요구할 때 불응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동안 북한측이 각종 명목으로 우리 기업에 돈을 요구해 왔고, 일부 기업이 북한측의 신임을 얻을 목적으로 이 요구에 응해 왔다는 것은 기업 북한팀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북한측은 국내 기업들의 심리를 잘 읽고 경쟁을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주어 왔다.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업으로 꼽히는 금강산 개발 사업이 좋은 예다. 89년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 사업의 주도권은 현대그룹이 선점한 것으로 비쳤다. 정명예회장이 정치 참여에 실패한 뒤 금강산 개발 사업에 가장 큰 괌심을 기울여온 업체는 통일그룹이다. 통일그룹은 현재 금강산 지역에 고급 호텔을 건설하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지난 7월 김일성 사망 당시 물의를 일으키면서까지 朴晋熙 <세계일보> 사장이 조문을 감행했으리만큼 이 사업에 애착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미원그룹이 가세했다. 이 그룹은 지난해 10월 금강산국제그룹(총사장 朴敬允)측과 금강산 동북부 온정리 지역 개발에 관해 가계약을 맺었다. 양국 정부의 승인을 얻는 즉시 효력을 발휘한다는 전제를 단 이 가계약으로 금강산 개발 사업의 향방은 다시 불투명해졌다.

더욱이 박경윤 총사장은 최근 도쿄에서 가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강산 개발 사업이 마치 통일교 관련 기업의 전유물인 것처럼 잘못 알려져 있다면서, 어떤 기업이든 참여할 수 있다고 경쟁을 유도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과거 금강산 개발 사업을 추진한 현대그룹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이 이 사업에 다시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다. 또 10월 초 북한은 중국 북경에서 금강산 개발 사업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과 연쇄 접촉을 벌였다. 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회장 崔正根)측은 대우 · 삼성 · 선경 · 진로 그룹 실무자들과 개별적으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 협회는 금강산 개발 사업을 비롯한 여러 대북 관련 사업의 접촉선을 자기네로 일원화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남포에 (주)대우 입주할 공장 3개 완성
금강산 개발 사업 외의 주요 대북 경협 사업에서도 기업들의 이해는 난마처럼 얽혀 있다. 북한의 나진 · 선봉 지대 개발 사업은 한국 정부가 시범 사업으로 정해 추진할 가능성이 높은데, 여기서도 대부분의 대기업과 중견 건설업체들이 경합하고 있다. 남포경공업단지 개발사업의 경우만이 북한측이 (주)대우가 입주할 셔츠 · 블라우스 · 재킷 · 가방 등 공장 3개 건설을 끝냄에 따라 대우그룹측의 우선 참여가 자연스럽게 공식화해 있는 상태다.

최근에는 북한측에 일본 · 미국 · 유럽계 다국적기업들과 접촉을 강화해 국내 기업들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주한 유럽공동체(EU) 상공회의소를 매개로 주하나 외국 기업들의 북한 진출을 유도하고 있는가 하면, 다국적 기업들과도 개별로 접촉하고 있다. 럭키금성경제연구소 金道卿 실장은 “북한이 선전효과를 노려 외국 기업들과 협의한 내용을 부풀려 발표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기업 북한팀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90년대 초반부터 가열되기 시작한 재계의 북한 진출 경쟁의 출발점은 북한 정부에 대한 선심공세였음이 드러난다. 당시 사정에 밝은 한 기업 인사는 “북한은 주요 국경일을 전후해 한국 기업들에게 무상으로 선물을 보내달라는 주문을 많이 해왔다. 언젠가 북한측이 삼성그룹에 북한 건국일(9 · 9절)에 주민에게 나눠줄 자전거 10만달라어치를 공짜로 보내달라는 요구를 한 적이 있다. 삼성은 고심 끝에 선물 형식은 곤란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반면 대우그룹은 북한의 이런 제의를 즉각 받아들였다”라고 주장한다.

삼성 · 대우 · 럭키금성의 ‘북한 전략’
북한 진출을 놓고 가장 앞서 나가던 대우그룹과 삼성그룹은 92년 5월 북한산 아연괴 및 시멘트 국내 반입을 둘러싸고 공개적으로 마찰을 빚었다. 삼성물산(주)이 그 해 5월 각 언론기관에 ‘종합상사 대북교역 실무자 회의 결과’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다. 이 자료에서 삼성그룹은 ‘대우가 상도의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으며, 북한 물자 반입과 관련해 창구를 일원화하고자 했다’고 공격했다. 북한산 시멘트와 아연괴를 반입하려다 북한측이 선적을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된 삼성물산은, 이 사건의 배후에 (주)대우가 있다고 판단하고 선제 공격한 것이다.

대우는 ‘북한산 아연괴 및 시멘트 독점 보도에 대한 대우의 입장’이라는 신문 광고를 통해 공개적으로 맞받아치려 했다. 삼성물산이 반입할 물건의 최종 목적지를 홍콩 · 일본 · 싱가프로 등 제3국으로 하고 중개상과 계약을 체결했으나, 선적 대 최종 목적지가 한국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북한측이 계약 조건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선적을 거부했다는 요지였다. 이 사건은 삼성그룹측이 사과함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두 그룹은 이후에도 북한 진출 주도권을 둘러싸고 여러 차례 신경전을 벌였다. 여기에는 북한진출에 대한 두 회사 경영진의 철학이 다르고, 접근법이 크게 다르다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삼성그룹은 북한과의 사업에서도 비교적 사업성을 엄격하게 따진다. 그러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권 국가 진출에 대한 노하우가 가장 많다고 자부하는 대우 쪽은 사업성보다는 장기적인 관계를 염두에 둔다.” 대우 그룹 한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로 대우그룹의 북한측에 대한 배려는 파격적이라고 할 정도로 후하다. 예를 들어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하기 전 남포경공업단지 조성 문제를 놓고 북측과 협의할 때 대우그룹측은 북한 근로자의 봉급을 월 백달러 정도로 책정했다. 당시 정부와 업계의 판단은 70달러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북한 진출을 노리는 기업들의 신경전에 언론이 동원되는 경우도 있다. 경쟁 기업이 접촉하는 북한측 파트너에 대한 좋지 않은 정보를 흘려 기사화함으로써, 일을 추진하는 데 차질을 빚게 하는 수법이었다. 중견 그룹에서 대북 업무를 담당하는 한 간부는 “30대 그룹치고 북한 쪽 끈을 한두 개 가지지 않은 데가 없다. 자존심을 건 기업들의 경쟁에서는 그 끈이 얼마나 권력 핵심과 가까운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말한다.

럭키금성그룹은 두 그룹에 견주어 훨씬 점진적인 접근법을 ??????다. 교역량을 점차 늘리다가 임가공 사업이나 합작투자 사업을오 점차 협력단계를 높여간다는 구상이다. 최근에는 중국 기업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공장 진출 요청을 받고, 북한 진출 경쟁의 강력한 다크호스로 등장했다.

삼성그룹도 전자 부품과 플라스틱 제품 등 노동집약형 산업 시설을 북한에 이전한다는 구상에 따라 각 계열사 사장으로 구성된 조사단을 북한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조사단은 정부의 기업인 방북 허용 조처가 나오는대로 출발할 예정이다.

남북 경협의 물꼬가 트이면 누가 첫 승자가 될까. 이는 과당 경쟁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구상이 어떤 방식이 되느냐 하는 것과, 업계가 이 원칙을 제대로 따라줄 것이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업계에서는 (주)대우가 주도하는 남포경공업단지 사업과 나진 · 선봉 지대 개발 사업들이 제일 먼저 실현될 것으로 점친다. 여기에 생필품 관련 합작 투자 사업이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 金芳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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