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만 잡으면 물가 잡히나
  • 전기호 (경희대교수 · 경제학) ()
  • 승인 1992.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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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임금교섭을 앞두고 정부는 올해 임금상승률 가이드라인을 고임금 기업과 서비스업의 경우 총액기준으로 5%를 제시하고 있으며, 중소업체에 대해서는 노사가 생산성 범위내에서 자율 협상하도록 유도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정부방침에 맞추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의 과도한 임금인상으로 약해진 국제경쟁력을 되찾고 임금인상과 물가상승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해 임금인상률 가이드라인을 총액기준으로 대기업 4.7%, 중소기업 6.7%로 확정 발표했다.

 반면 한국노총은 금년도 임금인상 요구액을 정액 7만4천1백80원(통상임금 기준 15%)으로 확정 발표하면서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하여 당초에는 20%선을 요구하려 했으나, 우리나라 경제여건이 악화돼 노동계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지난해보다 낮췄다고 밝혔다.

 또한 전노협은 기본급 기준으로 작년보다 9만2천3백35원이 오른 25.4%의 인상률을 제시하면서 전국 산하노조에 금년도 임금협상시 이 인상률을 제시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노협은 이와 함께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의 최저생계비를 지난해의 90만9천2백38원(4인가구 기준)보다 27.9% 늘어난 월 1백16만2천6백20원으로 산정했다.

 우선 정부 · 경총 대 노동계의 임금인상률에 대한 시각차가 너무 커서 그동안 비교적 안정돼가던 노사관계에 새로운 분쟁의 불씨가 크게 일어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임금인상률 5%는 경제난 책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것
 이와 같이 시각차가 큰 이유는 정부와 경총쪽에서는 임금결정 기준으로 주로 물가안정과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을 우선시하고, 노동계쪽에서는 노동자들의 생계비를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생각한 데 있는 것 같다.

 임금결정의 기준으로 이 양자가 항상 대립적인 위치에 놓이는 것은 어느 선진국의 예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설사 현재 노동자의 생활수준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향상되었고 또 한국경제가 물가와 국제경쟁력 면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부의 임금정책이 전혀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정부는 왜 과도한 임금인상이 인플레이션과 국제경쟁력 약화의 주범인지를 노동자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임금인상이 물가와 국제경쟁력을 악화시키는 것은 실질임금 상승률이 물적 노동생산성(투입한 노동량과 그 결과 얻어진 생산량의 비율) 상승률을 앞질렀을 때이다. 이것은 경제학의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통계는 1989년을 제외하고는 실질임금 상승률이 물적 노동생산성 상승률을 밑돌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 지난해 12월19일자 한국은행 〈조사통계월보〉에 실린 금융경제연구소 김치호 전문연구역의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모형〉이란 논문에 의하면 60년대 이후 30년 동안 우리나라의 실질임금 상승률이 노동생산성 향상 수준을 크게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논문은 임금이 큰 폭으로 뛰었던 80년대 중반 이후에도 실질임금 인상폭이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앞지른 경우는 89년 한 해뿐인 것으로 밝히고 있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10%에 가까웠는데 올해는 선거와 재정팽창 등으로 작년보다 물가가 더 오를 소지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또 올 연초에 이미 공산품이나 생필품 가격이 마구 뛰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가 물가상승률을 5% 이내로 안정시킬 수 있는 어떤 방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인상률을 5% 이내로 억제한다는 것은 노동자에게 경제난의 모든 책임을 홀로 짊어지라고 요구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론적 근거 없는 임금규제 정책, 노사분쟁 불씨만 제공
 노동생산성 상승률을 밑도는 임금인상의 이론상으로 국제경쟁력 약화의 주범이 될 수 없다. 실제로 지난해에도 수출은 상당한 정도로 증가했는데 국제수지가 대폭 적자를 시현했다는 것은, 고소득층과 불로소득층의 과소비로 인해 수입이 증가한 데 기인한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강력한 임금규제 정책은 이론적 근거를 전혀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노사간 임금교섭의 자율성을 해치고, 오히려 노사분쟁의 새로운 불씨만 제공할 뿐이다. 그 결과 수당 신설이나 후생복지금 지급 등의 방법으로 임금을 올려주는 편법사용을 부추겨왔다.

 뒤늦게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총액임금제를 도입하면서 임금 체계를 합리화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부 의도와는 달리 도리어 임금체계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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