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베트남 관계 개선 실종된 미군이 '교두보'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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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확인 본국송환 위해 베트남에 상주대표부 설치키로

75년 미국의 패배로 끝난 베트남전 이후 단절돼온 미  베트남 관계가 최근 실종미군(MIA) 문제에 대한 양국협상을 계기로 정상화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의 구엔 코 타크 외무장관은 최근 워싱턴에서 실종미군협상 미국측 수석대표인 존베시 장군과 회담을 갖고 약 1천7백명으로 추산되는 실종미군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베트남에 미국 상주대표부를 설치하자는 제안을 '즉각적'으로 수용했다고 밝혔다. 미  베트남의 관계가 개선되고 있음을 알려준 것이다.

 

경제봉쇄 등 강경노선에 변화

현재 미국이나 베트남 양측 모두 '관계 정상화'라는 말은 피하고 있으나 관측통들은 캄보디아 사태의 해결을 위해 베트남과 대화를 하겠다는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의 지난 7월초 선언을 계기로 관계정상화의 발걸음이 이미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9월29일 뉴욕서 열린 양국 외무장관회담은 비록 45분간의 짧은 만남이었으나 지난 75년이후 양국간의 최고위급 접촉이었다. 이 회담에서 베이커 장관과 타크 장관은 회담의 주제였던 캄보디아문제뿐만 아니라 양국의 관계정상화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이 회담이 양국간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그런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베트남측의 언론담당관은 "캄보디아 문제에 대한 정치적 해결방안이 진전을 보임과 함께 미  베트남 관계의 정상화를 촉진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들을 취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모두 양국관계의 진전을 알리는 소리이다.

미국은 지난 75년 베트남전 패배 이후 공산베트남을 국제적으로 고립시켜왔다. 자국인의 여행금지는 물론 자국 기업의 교역을 중단시키고 서방국의 대 베트남 경제봉쇄조치를 주도했다.

베트남이 78년 캄보디아를 침공, 괴뢰정부를 세우자 미국은 반군세력인 '민주캄푸치아연정'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해왔다. 카터 행정부 이래의 이같은 대 베트남 강경노선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베이커 장관이 밝힌 대 캄보디아 정책전환이라 할 수 있다.

 

캄보디아 문제 함께 풀며 관계 정상화 '포석'

82년 이후 유지돼온 캄보디아 반군연합체의 유엔대표권에 대한 지지 철회와 베트남과의 대화재개를 골자로 한 미국의 새 인도차이나 정책은 캄보디아 반군의 일파인 크메르 루주의 재집권 방지에 일차적 목표를 둔 것이었으나 베트남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포석이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그간 카터 및 레이건 행정부이래 베트남과의 관계정상화 조건으로 캄보디아로부터의 베트남군 완전철수, 크메르 루주의 재집권 방지 및 캄보디아인의 자결권 인정을 골자로 한 이른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한 포괄적 해결안'을 받아들이도록 촉구했었다. 그러나 베트남군은 89년 9월 완전 철수했고, 크메르 루주의 재집권 방지문제도 미국과 베트남측은 의견일치를 보았다.

지난 6월 반군연합 대표와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는 도쿄에서 회담을 갖고 각측이 동수로 참여하는 최고민족평의회를 구성, 자유총선을 통한 신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과도정부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로써 캄보디아인의 자결권 문제도 해결전망이 한층 밝아졌다고 볼 수 있다.

당초 베이커 장관이 베트남과의 대화재개를 천명할 당시만 해도 그는 이례적으로 "베트남과의 관계정상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점에 비추어볼 때 최근 미국이 베트남과의 접촉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관측통들은 그 이유로 동서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대표적 분쟁지역인 캄보디아 사태에 대해 미  소 양국이 조기타결의 필요성에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는 점, 동유럽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의 경제재건을 도와 이 지역의 안정을 이뤄야 한다는 태국 등 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들의 요청을 미 정부가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란 점 등을 들고 있다. 또한 자국내 경제계의 대 베트남 수출금지 조처 해제에 대한 강력한 압력도 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동남아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은 이미 일본 기업들이 베트남 교역량의 3분의 1을 점하고 있고 호주 등 여타 경쟁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음을 들어 경제봉쇄조치 해제를 강력히 요청해왔다.

또 현재와 같은 미국의 대 베트남 경제봉쇄조치가 계속될 경우 지난 86년 이후 추진되어온 베트남 정부의 '도이 모이'(개혁) 정책이 일대 타격을 입게 되며, 최악의 경우 베트남이 경직된 공산체제의 중국 품안으로 들어갈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미국의 새 베트남 정책 입안에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은 외자도입이 절박

베트남 정부로서도 자국의 경제 사정상 미국과 관계개선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게 사실이다. 베트남은 87년말 외국인투자법을 제정, 적극적인 외국투자 유치에 나서 지난해 10월 현재 총 70여건 6억달러의 투자 신청을 받아놓은 상태다. 그러나 정작 경제개혁에 필요한 외자도입을 위해 지난해 9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미국의 입김으로 좌절된 바 있다. 또한 당장 12월부터 소련과의 교역관계가 종전의 협력 차원에서 상업적 관계로 전환될 경우 베트남 경제는 치명적 위기를 맞이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측은 지난 83년 레이건 행정부 당시부터 비공식적으로나마 실종미군 문제에 대해 꾸준한 접촉을 가져왔다. 지난 87년엔 미측수석대표인 베시 장군이 베트남측과 현장조사반 구성에 합의, 지금까지 11차례에 걸쳐 수색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미 의회 대표단이 실종미군 문제의 협의를 위해 베트남을 방문했으며 베트남 정부는 87년8월이후 작년 10월까지 실종미군의 유해 2백30구를 미국측에 인도하기도 했다. 미국측 관리들은 "실종된 미군의 협상이 원만히 진행될 경우 2년내 외교수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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