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최후 버팀목 ‘小社長制’
  • 장영희 기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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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난 심화로 급속 확산…“근로조건 악화” “생산성 향상” 평가 엇갈려


텔레비전 드라마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한지붕 세가족’처럼 중소기업계에도 한지붕 다가족의 열풍이 불고 있다. 한 기업 내에 여러 명의 ‘작은 사장’을 둔 기업이 자생적으로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소사장제’라고 하는 새로운 경영방식의 확산이다.

 소사장제는 같은 사업장 내에서 근무하던 반장 등 고참직원이 생산라인이나 공정의 일부를 사장으로부터 떼어 받아 소사장(경영책임자)으로서의 책임의 맡는 방식을 말한다. 소사장은 5~7명의 직원을 데리고 아예 딴살림을 차리는 형태와 사업자등록증 없이 모기업 사장과의 고용관계를 유지하는 반독립형 이 있다. 실제 운영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실제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사장제 양상은 업종ㆍ규모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해 획일적인 구분을 하기 어렵다. 생산수단의 소유 및 이용 방법, 작업장 위치, 모기업과의 거래계약 방법, 그리고 이익배분이나 임금지급 방식 면에서 소사장과 그 기업이 어떤 관계인가에 따라 다른 형태를 보인다.

 소사장은 주로 생산활동에만 전념한다. 모기업에서 생산설비를 임대해주고 원자재를 공급해주며 생산한 제품의 판매와 세무ㆍ회계ㆍ관공서 업무까지 대행해준다. 따라서 소사장제는 단순 임가공을 주로하는 도급생산 체제의 성격을 띤다. 도급은 하청업자가 원청자에게 어떤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보수를 받기도 계약한 후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대기업에서도 일부 도입

 중소업체의 도급방식은 봉제업체나 섬유업체 등에서 이미 실행해왔다. 그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87년 6ㆍ29 이후 여타 업종으로 널리 확산된 추세이다. 현재 소사장제가 비교적 뿌리를 내린 중소기업은 광림기계(주생산품 : 유압기계 특장차) 한광산업(가위) 삼신(금속가구와 자동창고 제조) 한국크라운(라이터) 동신화학(보행기 등 발육완구) 상영기계공업(실린더 라이너 피스톤) 서일중전기(전력배선) 미원(조미료) 코메론(줄자) 로보트보일러(가정용보일러) 등이며 대기업은 대우통신 대우중공업 동국무역 등이다. 산업연구원은 소사장제를 도입한 기업이 2백~3백개가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상공부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ㆍ상공회의소ㆍ직할 공단 등에 의뢰해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대기업에서도 그와 같은 소규모 단위의 경영방식을 찾아볼 수 있다. 주로 활용되는 방식은 사내 벤처(모험기업)제도, 사내 기업가제도, 사내 독립채산제, 퇴직사원 협력업체, 부서 독립회사 등이 대표적이다. 몸집이 커지고 관료화함에 따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즉시 상품화하기가 어려운 대기업 체제의 단점을 극복하고 부서 내 경쟁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또는 퇴직사원의 취업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생겨났다. 현재 삼성ㆍ럭키금성ㆍ대우ㆍ코오롱 그룹 등에서 실시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확산되고 있는 도급방식의 소사장제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 朴英汎 연구위원은 “영세한 중소업체가 산업구조 조정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버티기를 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중소기업은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단순 조립 및 가공 위주의 노동집약적 산업이 대부분이다. 임금이 낮고 근로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서비스산업 등에 인력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단순 조립 가공 수준으로는 경쟁력이 계속 떨어진다. 게다가 싼 임금으로 물량공세를 펼치는 후발개도국의 추격도 거세 설땅을 자꾸 빼앗긴다. 한달에 4백~5백개나 되는 중소기업이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세한 중소기업체 스스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구조 조정을 할 수도 없다. 특별히 자동화 등에 시설투자를 하거나 기술개발 투자를 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이처럼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생존 위협은 중소기업으로 하여금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을 모색케 한다. 그대안의 하나가 소사장제인 것이다.

 이 점은 소사장제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 특징에서 잘 드러난다. 소사장제는 생산공정의 특성상 자동화가 어려운 노동집약적 업종이면서 다품종 소량생산 기업이 많이 도입했다. 또 주물 단조 조선 피혁 유리제품 등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이른바 ‘3D’ 업종에서 많이 실시하고 있다. 인력관리가 어려운 제품운송ㆍ포장ㆍ원재료 입고ㆍ창고 적재 등 단순 서비스용역직도 많이 도입하고 있다. 독립된 공정이 많아 잘게 나눌 수 있는 업종이나 경쟁력이 약해 장기 전망이 불투명한 업종에도 도입 바람은 활기차다. 격심한 노사분규를 겪는 사업장에까지 소사장제는 확대된다.

 

“산업구조 조정 방해요인 된다”

 소사장제는 인력난 완화 및 생산성 향상이라는 기대효과를 두고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89년 소사장제를 도입한 삼영기게공업사의 韓今泰사장은 “도입 이후 인력변동이 없고 놀란 만큼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다”고 지적하면서 소사장제 기업의 임금이 50% 이상 높아졌다고 말한다. 한국무역협회도 지난 3월 <소사장제 실태 및 활성화 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이직이 잦은 업종과 기피없종인 3D 분야 등에 소사장제를 도입해 인력난을 해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실태조사 결과 작업 시간의 증가, 작업 집중도 향상, 작업대기 시간의 단축 등으로 10~20%의 생산성 증가를 가져왔다고 밝혀졌다. 한국무역협회 河仁千 산업1과정은 “생산직 근로자에게 자신도 사장이 될 수 있다는 비전을 줌으로써 안정적인 산업인력 확보에 기여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하나의 기업이 경쟁력을 갖춘 소사장 단위로 분화하면서 구조 조정기에 알맞은 산업조직으로의 재편이 기대되고 일본 등에서 볼 수 있는 계열화ㆍ전문화된 도금 체제로 발달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대 의견도 많다. 주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등 노동계에서 나온다. 노동계는 소사장제가 노동강도의 강화를 통해 생산성 향상과 노동조합 파괴라는 두마리 토기를 잡기 위해 나온 착취 방식이라고 몰아부친다. 이들은 소사장제를 노조 와해책이라고 단정한다. 조직 자체를 잘게 쪼개고 성과급이라는 도구로 동료애를 약화시켜 노조를 무력화한다는 주장이다. 소사장제 도입 이후 노조가 유명무실해지거나 아예 없어진 사례가 꽤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이들은 사용자 단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소사장제를 통해 생산성이 향상되는가, 노동자는 일한 만큼 대가를 받고 있는가 하고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시설ㆍ설비 투자와 기술개발 등의 근본처방을 하지 않고 생산량을 늘리는 길은 오직 노동강도 강화뿐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서울노동운동연구소가 지난 6월 소사장제 실시 이후의 생산성과 임금 변화를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9개 소사장제 기업 중 거의 대부분이 단기간에 임금이 높아지고 생산량이 늘었으나 그 중 몇 기업은 1년 후에 정체하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러나 근로시간은 9개 기업에서 모두 늘어났다. 이 연구소는 생산성 향상이 노동 투입량의 증가에서 오는 것이어서 장기적으로 보면 노동능력 훼손 등의 한계가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또 임금도 수당이나 퇴직금이 없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 白洛基 중소기업실장은 “초기단게에서 인력난 완화ㆍ생산성 향상 등 효과가 나타난 사례도 많지만 이 효과가 중장기적으로 지속된다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불확실한 요인이 많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소사장제가 근로조건의 악화를 가져온다는데는 대체적으로 의견이 일치한다. 또 매우 불안정한 조직이라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불황이 심각해져 모기업이 위축될 때는 1차 정리대상이 된다. 또 소사장제 도입이 부가가치가 높고 시장성이 있는 주력부품이나 공정보다는 경쟁력이 약하고 장기 전망이 불투명한 분야에 집중 되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다. 이런 분야는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사라지려고 하는 이런 취약한 분야를 소사장제가 붙들고 있어 구조 조정이 늦어질 공산도 크다.

 경제기획원 金潤光 산업2과장은 “국민경제의 측면에서 소사장제를 환영해야 하는가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성패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획일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소사장제 기업은 너무 영세해 오히려 분업을 저해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과장은 3D 업종이나 노동집약적 업종에서는 소사장제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이지만 기술혁신 속도가 빠르고 제품 수명이 짧거나 소비자 욕구가 다양한 업종에서는 “생존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내다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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