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름장 ‘3抑정책’은 반짝 효과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2.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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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 고금리 · 고임금 과잉규제는 경제 자율기능 원칙에 위배

“경제부처가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것은 6공 들어 꽤 드물다. 마치 쥐를 뒤쫓는 고양이의 집요함도 엿보인다. 국민들에게 내민 정부의 손에는 당근과 채찍이 동시에 들려 있다.”

한 경제학 교수는 올해 들어 거세게 불고 있는 이른바 ‘3抑정책’을 이렇게 평했다. 고물가 · 고금리 · 고임금이라는 ‘세마리의 쥐’는 우리경제를 어렵게 하는 주범으로 꼽힌다.

그러나 정부의 3대 억제 정책은 짧게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긴 눈으로 보면 시장경제의 흐름을 뒤틀어 경제의 자율기능을 약화시키고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연말, 재계가 금리인하를 대통령에게 건의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李龍萬 재무부장관은 연초부터 “통화를 신축적으로 공급하여 금융기관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수요를 줄이는 유도책을 써 금리를 떨어뜨리겠다”며 두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금리인하를 올해 반드시 이루겠다는 결의이다. 추진 기구인 금융협의회와 채권발행협의회도 구성했다. 금리가 떨어지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돈을 더 푸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재할인 금리를 내려서 금융기관이 금리를 따라 내리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정부는 “물가불안 때문에 이 방법은 택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금리안정책은 그래서 행정규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예금 · 대출 간의 마진을 줄이는 방안의 경우 정부가 금융기관별로 마진폭을 따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내 일반은행의 예대마진폭이 4.53%나 돼 일본의 도시은행(2.31%)보다 두배 정도 높다고 밝히고 있다. 마진폭 축소 정책이 반드시 좋은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른 요인은 변하지 않고 대출금리가 낮아질 경우 은행은 적정 마진을 얻기 위해 저축금리를 내리려고 할 것이다. 저축자에게 손해를 끼치며 결국 저축률을 떨어뜨릴게 된다.

가계대출 억제로 생긴 돈을 기업쪽에 풀겠다는 발상은 가뜩이나 서민들에게 높은 은행문턱을 더 높게 만들 것이다. 수출업체를 지원하겠다는 무역어음할인금리 인하유도도 ‘자유화된’ 금리를 정부의 입김으로 내리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금융자율화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회사채 · 국공채 등 모든 채권의 발행물량을 재무부가 사전에 조정하겠다는 방안도, 주식시장을 활성화하고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낮춘다는 명분을 얻고 있으나 채권발행기관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어 효과를 점치기 쉽지 않다.

노동부, ‘임금억제부’로 전락했나
긍정적인 방안은 기업으로 하여금 중복 · 과잉투자를 억제토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기업들은 그동안 ‘자금사재기’에 몰두했다. 고금리 지불도 마다하지 않았다. 부동산 등에서 투자수익률이 높아 고금리 부담을 보전하고도 장사가 됐기 때문이다. 매출액대비 금융비용이 우리 기업은 90년 현재 5.1%나 되는데 비해 일본과 대만기업은 1.7%(89년)에 그친다는 것도 기업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금리를 안정시키려면 금융기관을 닥달하는 것 못지 않게 기업의 자금운용행태를 고치는 수요측면에서의 수술이 절실한 것이다.

노동부는 최근 ‘임금억제부’로 전락했다는 비아냥을 듣는다. 崔秉烈 장관은 “수당 등의 편법을 없애 임금인상의 뒷문을 차단하겠다. 월평균 임금액이 1백만원 이상인 고임업체들은 총액기준으로 인상률을 5% 이내로 묶지 않으면 제재조처를 취하겠다”는 엄포를 수차례 했다. 상공부도 가세했다. 朴鎔道 차관은 경제단체협의회 주관의 30대 그룹 임금교섭 대책회의에 참석해 “임금지침을 어긴 기업은 공업발전기금 등 각종 정책자금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고 노사분규 피해확인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사실 임금억제책은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서, 최부총리의 이른바 ‘내몫하기론’이라는 신년구상으로 이미 강조된 바가 있었다. 정부는 우리의 시간당 노동비용이 86년까지만 해도 아시아 네마리 용(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가운데 가장 낮았으나 90년부터 가장 높아졌다고 주장한다. 최근 물가가 불안한 것도 이처럼 짧은 기간에 급히 오른 임금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동단체에서 제시하는 수치는 판이하다. 이들은 국제노동기구(ILO)의 통계를 인용, 86년과 90년 사이 우리의 시간당 임금수준은 1달러43센트에서 3달러49센트(제조업 평규능ㄴ 5달러40센트)로 올랐는데 이는 대만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미국 일본 서독 등 선진국과 비교할 때는 3분의 1에서 4분의 1 수준으로 상승속도는 바르지만 절대수준은 결코 높지 않다는 것이다. 또 임금인상이 물가와 국제수지에 영향을 미치려면 생산성을 웃돌아야 하는데 지난 30년 동안 실질임금 인상률이 물적 노동생산성을 앞질렀던 때는 89년 한해 뿐이라는 반박도 있다(李正植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연구위원).

‘1 · 17 물가안정대책’은 “더 이상 동원될 대책이 없을 정도”라는 관계자의 표현처럼 온갖 정책이 망라돼 잇다. 우선 총통화증가율을 18.5% 내외에서 운용하는 등 총수요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한다. 국민생계와 밀접한 20개의 생활필수품은 평균물가 상승률보다 안정될 수 있도록 관련부처별로 특별관리대책을 마련했다. 정부는 물가정책에 어느때보다 “엄격히” “철저히” “반드시”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 임금억제 방안에는 “최근의 불안한 물가는 사람값이 오른 데에 크게 기인한다”고 강조해온 최부총리의 생각이 잘 반영돼 있다는 평가이다.

또 기획원은 지난해 연초부터 개인서비스 요금이 크게 올라 물가를 잡는 데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기획원의 한 관계자는 “올해는 부동산값이 안정돼 있어 임대료가 올라 서비스요금을 올린다는 지난해의 정상참작사유가 성립될 수 없다”며 행정지도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중앙정부의 ‘닥달’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자 시 · 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물가단속권을 주었다. 요금을 올린 지 1년이 안된 업소는 우선 과거의 요금수준으로 내리도록 독려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위생검사와 세무조사 등의 제재조처를 취할 계획이다.

‘3억정책’의 효과는 있어 보인다. 우선 시장실세금리의 하락이 눈에 띈다. 지난해말 연 18.92%나 됐던 단자시간 하루짜리 콜금리는 새해들어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13%대에 머물고 잇다. 회사채유통수익률(3년 만기)도 19.05%에서 16~17%대로 떨어졌다. 물가도 1월 중 소비자물가상승률이 0.8%에 그쳐 작년 상승률(2.1%)에 크게 못미치는 안정세를 보였다.

물가 먼저 잡아야 금리 · 임금도 안정
이런 효과는 규제의 영향 탓이 크지만 다른 요인들도 가세했다는 견해가 많다. 콜금리 등 시장실세금리가 떨어진 데 대해 금융전문가들은 1월이 원래 자금비수기인 데다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기전망이 불투명해 기업들이 신규투자를 축소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지난해말 며칠 사이에 3조원 이상의 재정자금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시중의 돈이 풍성해진 것도 한몫 거들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누르려고 한다면 단기적으로 효과는 나타날 수 있다. 정부의 강도높은 ‘3억정책’ 표명은 기업이나 소비자들로 하여금 “최소한 당분간은 내릴 것”이라는 기대심리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 영향권 안에 잇는 기관들이 정책의지에 동참한 것도 한 요인이다. 은행들이 하루짜리 타입대 금리와 20일이 기한인 일시대 금리를 내린 것이 그 예다. 한일은행은 중소기업에 한해 단기우대금리를 0.5% 인하했다. 서울지역의 8개 단자화사(투자금융회사) 대표들도 20% 가까이 오르던 어음중개금리를 18.5%선으로 내리기로 결정해 금리인하 물결은 제2금융권에도 밀어닥쳤다.

임금의 경우도 ‘동결’ 바람이 거세다. 대한무역진흥공사 한국전력 토지개발공사 등 정부투자기관들은 다투어 올해 간부급의 봉급동결과 비간부급의 5%내 억제를 발표한 바 있다. 은행도 과장급 이상의 봉급을 동결했으며 기업들도 움직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金相廈회장 등 경제5단체장은 4.7%(중소기업 6.7%) 인상을 결의했다. 임원과 대졸신입사원 초임은 아예 동결이다.

물가안정 · 국제수지 개선을 목표로 단행되고 잇는 정부의 ‘3억정책’은 설득력이 없이않다. 그리가 지나치게 높아 기업의 금융부담이 가중돼왔으며 3~4년 새 가파른 임금상승은 가격경쟁력을 크게 약화시켜온 것이 사실이다. 경제성장률을 7%내로 잡고 다소 실업률이 올라가는 것도 감내하겠다는 물가안정의지는 그만큼 물가불안이 우리경제를 압박하고 이쓴 현실을 나타낸다.

정부가 나서야만 하는 고육지책은 인정되지만 지나치게 행정력에 의존한 정책방향은 또 다른 부작용을 양산할 것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반론의 근거는 경제라는 유기체를 강제로 누르면 구조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병의 근원을 치료하지 않고 응급처지로 봉합하고 만다면 병의 부리는 계속 신체내에 잠복되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는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어 금리자유화와의 상충이 우려되고 있다. 임금 억제도 정부가 총액기준 5%로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이 안에서 억제하라는 것은 임금협상의 기본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많다. 현대자동차의 노사분쟁 처리에서도 드러났듯이 노사간의 자율적 협상풍토를 해쳐 우리 경제의 모순을 더 깊게 할 것이라는 우려이다. 제계의 한 관계자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정부가 5%선을 들고 나오면 이것이 상한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한선이 된다”는 것이다. 또 임금인상률은 기업별 산업별로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일정률로 묶어버리는 것은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해치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리와 임금을 안정시키는 왕도는 물가를 잡는 것이다. 우리나라 금리가 국제비교에서 크게 높게 나타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물가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임금억제도 물가를 잡지 못하면 설득력을 잃는다. 우리경제의 최대 난제인 인플레 잡기는 행정규제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가격통제와 으름장으로 인플레를 지표밑으로 숨길 수는 있지만 이 인플레 압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인플레 요인과 만나 무섭게 폭발하는 상황을 우리는 과거 80년대에 경험했다. 인풀레는 결국 화폐가치의 하락이므로 통화와 재정긴축 등의 근원적인 처방으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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