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열도 뒤흔든 중학생 자살 사건
  • 도쿄ㆍ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5.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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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의 ‘학대’ 못이겨 한달새 4명 목숨 끊어

‘중학생 자살 열도’. 어느 신문의 표현대로 지금 일본 전국은 중학생 연속 자살사건의 충격에 휩싸여 있다.

 연속 자살 사건은 94년 11월27일. 아이치 현니시오(西尾) 시라는 한 조그만 지방 도시에서 중학교 2학년에 다니던 열네 살 난 소년이 집 뒤뜰 감나무에 목을 매단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이어 12월13일. 같은 아이치 현 오카자키(岡崎) 시의 중학교 1학년 학생이 부친이 경영하는 공장에서 목을 매었다. 다음날에는 후쿠시마 현의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인근 야산에서 목을 매었고, 그 다음날에는 사이타마 현의 중학교 2학년 학생이 학교 체육관에서 로프로 자살했다.

 이처럼 한달 사이에 중학생 4명이 연속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내각은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라고 지시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내각이 교육 문제로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중학생 4명이 자살한 원인은 ‘이지메’라고 불리는 동급생들의 학대 행위 때문이다. 일본어 사전을 펼쳐보면 이지메란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거나 폭행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렇다면 동급생들의 이지메가 얼마나 가혹했길래 중학생 4명이 차례로 자살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연속 자살 사건의 발단이 된 니시오 시 오코우치군은 죽기 전 동급생들의 학대 행위를 낱낱이 기록한 ‘이지메 일기’를 남겨 큰 충격을 던졌다. 이 일기에 따르면 오코우치가 동급생들의 이지메 행위에 걸려든 것은, 1년 전 여름 동급생 4명과 물놀이를 간 날부터 시작되었다.

 오코우치는 그날 동급생 4명으로부터 “돈을 갖다 바치지 않으면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들은 수심 5~6m나 되는 곳에서 오코우치의 발을 수 차례 잡아당기고 물을 먹이는 행패를 부려 오코우치로 하여금 공포심을 갖게 했다.

공포심 때문에 충실한 부하 노릇
 오코우치는 이 물놀이 이후 공포심 때문에 그들의 충실한 부하로 전락했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의하면, 오코우치가 죽기 전 자전거를 훔친 것도, 수업중 선생에게 반항적 태도를 보인 것도 모두 그들의 지시에 따른 행위였다고 한다. 또 오코우치는 그들의 명령에 따라 머리를 빨갛게 염색한 적도 있고, 죽기 전 담배를 함께 피우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코우치 소년이 자살하기로 결심한 것은 동급생들의 이러한 육체적 학대 행위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죽기 전 유서와 함께 어머니에 대한 차용증도 함께 남겼다. 이 차용증에 의하면 그가 동급생 4명에게 뜯겨온 용돈의 총액은 무려 1백11만엔. 우리나라 돈으로 8백만원이 넘는 거액이다.

 오코우치는 자기의 용돈은 물론 아버지의 월급 봉투, 어머니의 시장 지갑을 털어 동급생들의 요구에 응해 왔다. 심지어 할머니의 쌈지돈까지 훔쳐다 바쳤다. 하지만 동급생들의 금전 요구는 죽기 직전까지 끊이지 않았다. 소년은 유서에 이렇게 기록했다. ‘어제 4만엔을 갖다 주었는데 또 12만엔을 갖고 오라고 협박했습니다. 제가 죽으면 집안의 돈이 더 이상 없어질 염려가 없을 겁니다. 충고대로 죽음의 길을 선택하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코우치는 동급생들의 육체적 이지메와 정신적 이지메 때문에 짧은 삶을 스스로 끝맺게 된 것이다. 나머지 3명도 동급생들의 정신적 이지메가 자살의 직접 원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지메란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어느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도 왜 유독 일본의 이지메가 큰 문제인가.

 첫째는, 중학생들의 이지메 행위가 최근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문부성이 학교내 이지메를 문제삼아 조사를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 전이다. 이 때 약 15만건이 보고되었는데, 교내 이지메 방지 노력을 계속한 결과 91년에는 2만2천건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92년부터 다시 늘어나는 경향을 보여 93년에는 2만5천건을 기록했는데, 중학교에서 이지메가 다시 늘어나고 있는 것이 원인이었다. 전문가들은 일본에서는 중학생까지가 의무교육대상이므로 가해 중학생들에 대한 적절한 처별이 어려워 이지메가 집중적으로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두번째는, 동급생들의 이지메로 인한 자살자가 다시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일본 문부성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0년 전 국ㆍ중ㆍ고둥 학교에서 보고한 자살 건수는 모두 2백89건. 그후 이지메 건수와 같이 감소 경향을 보이다 92년에 또다시 1백59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중학생의 자살 건수가 91년에 비해 25명이나 늘어난 68명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중학교가 이지메 집중 발생지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물론 자살자가 모두 이지메와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93년에 밝혀진 이지메 관련 중학생 자살자만 해도 10명에 달했다.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渡邊淳一)는 이지메란 결국 어른 흉내내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즉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를 일상적으로 차별하거나 학대하는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성인사회를 모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ㆍ조선인 차별이나 최근의 조총련계 여학생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바로 그러한 ‘사회적 이지메’의 전형적인 예라고 지적한다. 또 성적 위주의 교육과 부모ㆍ교사의 권위 상실, 폭력 영화 범람도 학교내 이지메를 조장하는 원인이라고 본다.

 한편 일본 사회의 극단적 집단 의식을 이지메의 근원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에는 예로부터 ‘무라 하치루’란 말이 있는데, 마을의 이단자를 집단으로 차별하거나 학대하는 풍습을 말한다. 때문에 일본의 이지메는 음험하고 끈질기다는 평을 듣는다. 한번 무라 하치부의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은 그 마을에 붙어 살 수 없었던 것처럼 어린 학생들도 동급생들을 음험한 수단으로 끈질지게 공격한다는 것이다. 일본 문부성이 10년 전부터 이지메 대책을 수립한 것도 바로 그러한 극단성을 인식한 때문이다.

가족간의 대화 부족이 이지메 조장
 그러나 이지메의 원인을 모두 일본의 사회 구조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동안 학교, 가해 학생, 피해 학생의 보호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오코우치 소년을 자살로 몰고간 동급생 4명은 모두 중류 가정 출신이었다. 그들의 보호자는 일본의 전형적인 ‘회사형 인간’들로서 자식과 대화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피해자인 오코우치 소년의 아버지도 그런 점에서는 똑같은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문부성이 최근 조사 발표한 ‘가정 교육에 관한 국제 비교’ 에 의하면 하루 중 자식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적은 것이 바로 일본 가정이었다. 즉 아버지가 자식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평균 3.32시간, 어머니는 7.44시간에 불과했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는 아버지가 3.62시간, 어머니는 8.40시간이다. 전문가들은 짧은 대화 시간이 이지메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량으로 내놓는 한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이지메가 성인 범죄 못지 않게 잔인성을 보이자, 미성년자라도 가해 학생을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자는 의견도 대두하고있다. 나아가 전문가들 중 일부는 중학교의 의무교육을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처벌 강화가 이지메 대책의 전부는 아니다. 이지메 행위를 빨리 발견하고 적절히 조처하지 못한 학교와 교사들의 감독 책임도 무겁다.

 미국의 경우 60년대에 이러한 동급생 학대가 맹위를 떨쳤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마다 ‘스쿨 사이컬러지스트’ 라는 아동 심리학자를 배치하여 대처한 결과 큰 효과를 보았다고 전해진다. 노르웨이도 85년 동급생 학대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학교에 방지 대책 수립과 보고 제도를 의무화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그 결과 6년후인 91년에는 이지메 행위가 약 60%정도 줄었다고 전해진다.

 일본 정부는 올해 예산에 이지메 대책비 4억엔을 계상했다. 주로 이지메를 당하고 있는 학생들의 상담을 맡을 임상심리사와 카운셀링 전문가를 파견하는 비용이다.

 이지메는 결코 일본만의 현상은 아니다.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도 적절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
도쿄ㆍ蔡明錫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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