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의식 강렬하나 예술성 미흡
  • 이효인 (영화평론가) ()
  • 승인 1990.12.2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체사상 '金正日의 《영화예술론》이 창작 원리 … 연출'촬영기술 떨어져

북한영화의 시작은 1949년이다. 1949년은 일제 치하의 조선과 해방 후 북조선을 비교한 영화 《내 고향》이 제작된 해다.

 북한의 영화인은 모두 조선문학예술총동맹(문예총)에 소속돼 있으며 당의 지도를 받고 있다. 즉 북한의 영화제작체계와 영화인 조직은 ‘조선노동당의 문예정책을 반영함과 동시에 그러한 창작사업의 집체적 지도를 보장하는 체계’속에 편입돼 있다.

 북한영화는 북한사회의 집단적 사상인 주체사상과 주체의 문예이론에 입각해 만들어진다. 구체적으로는 1973년 김정일이 발표한 4백10쪽에 달하는 <영화예술론>이 영화창작에 관한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영화문학(시나리오) 연출 촬영 연기 미술 음악 창작원론 창작조직 등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은 구체적인 지침과 방법론의 해설에서 대단히 실무적이면서도 철학적 깊이를 갖고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주체사상과 주체의 문예이론을 동어반복하거나 영화문법상의 설명이 부족한 단점도 지니고 있다.

 북한영화의 주요한 흐름은 ‘항일투쟁기의 묘사’ ‘수령형상의 창조’ ‘공산주의적 인간교육’ ‘노동계급의 모범형상 묘사’ ‘반미전쟁의 묘사’ 등으로 줄기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추상적인 단어로 북한영화의 주제를 정리하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다. 비록 북한영화의 주제가 이러저러하다고 요약하는 것이 가능하더라도 그 표현상의 다양한 방법까지를 정리하고 요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영화는 해방기(1945~1949) 전쟁기(1950~1953) 전후복구기(1953~1960) 발전기(1960~1970) 주체사상의 초기(1970~1985) 당의 집체지도기(1986~현재)로 구분이 가능하고, 이러한 구분 위에서 영화의 특성 또한 나눠질 수 있다.

 최근 대학내에서의 상영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인 북한 작품은《꽃파는 처녀》(1972) 《탈출기》(1984) 《소금》(1985) 등이다. 이 작품들을 주제별로 분류하면 ‘항일투쟁을 묘사’하는 영화이다. 즉 북한영화의 대표적 작품 중의 하나인 《피바다》(1969)와 같은 장르로 묶을 수 있다.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1979)는 안중근의 항일투쟁을 묘사하고 있기는 하나 안중근의 한계성을 표현함으로써 김일성 장군의 시대적 의미를 부각시키는 작품이다. 예컨대 안중근은 사형장에서 “나를 옳게 이끌어줄 그런 위인, 그런 영웅은 없구나, 우리민족을 구원해주고 세계에 당당히 내세워줄 그런 절세의 위인을 한번 만나보았으면…”하는 대사를 남긴다. 《조선의 별》(1~10부?1980~1987) 역시 항일투쟁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나 ‘수령형상의 창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앞의 작품들과는 구분된다.

 

대표작은 ‘피바다 꽃파는 처녀’

 《탈출기》와《소금》은 신상옥 감독이 1978년부터 1986년까지 체류하면서 만든 8편의 영화 중 일부이다. 강경애와 최서해의 소설을 각색한 것이며 주어진 사회현실에 저항하는 조선인의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탈출기》는 일제의 압정에서 벗어나 간도로 간 청년이 그곳에서도 살 수 없어 또 다시 간도를 벗어나는 이야기이다. 《소금》은 항일투쟁에 나서는 아들을 말리다가 결국 자신도 그 뜻을 이해하게 돼 항일유격대를 따라 나서는 한 여인의 삶을 다뤘다. 이 두 영화는 평범한 구성과 연출면에서 1970년대 남한영화를 답습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한다든가, 이를 위해 롱 테이크(카메라 스위치를 눌렀다가 놓는 시간이 긴 촬영방식. 흔히 사실주의적 촬영방식으로 이해되기도 한다)를 자주 사용하는 점이다. 그러나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성공적인 연출은 아니었다.

 북한영화에서 촬영술만을 놓고 어떤 특징을 발견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앞에서 열거한 작품만을 놓고 볼 때 북한영화촬영술(혹은 연출법)은 일관된 어떤 방법보다는 구체적인 장면, 인물의 감정 등에 따라 적절하게 운용되고 있다. 예컨대 《피바다》의 경우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장면에서도 많이 나눠서 찍는 반면에 《꽃파는 처녀》에서는 거의 롱 테이크에 의존하고 있다. 《소금》의 경우에는 다소 절충식이다.

 북한의 대표적 혁명가극을 영화화한 《꽃파는 처녀》는 친일지주 밑에서 착취당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1백20분짜리 영화 중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마다 2분이 넘는 노래가 10여번이나 나온다. 이러한 ‘영화보면서 노래듣기’는 생소한 형식이라서가 아니라 장면장면을 연결하는 서투른 매개물로 이용돼 리듬을 끊고 있다. 이 영화는 영화음악이 대단히 강조되는 북한영화의 특징을 증명해보일 뿐 내용과 형식이 제각기 노는 작품이다. 스틸사진으로 친다면 무척 안정되고 ‘좋은 그림’이지만 영화로서는 실패작이다.

 반면 《피바다》는 제목의 살범함과는 대조적으로 소박하고 애국심 강한 인간의 깨끗한 마음, 눈물겨운 용기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흑백필름 4시간짜리 작품인데도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요지는 압축된, 분명한 것이다. 물론 간간이 ‘김일성 장군’에 대한 숭모(?)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본체는 ‘일제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몽타쥬와 롱 테이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영화음악도 자연스럽게 화면을 보강한다. 거장 에이젠쉬타인이 연출한 《전함 포춈킨》의 긍정적 아류로 분류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주제의 강렬함을 형식이 완전히 따라잡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는 북한영화 모두에 해당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문제가 북한영화의 경직된 제작체계와 이론적 교조성에 의해 초래된 결과인지, 아니면 영화 연출력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단언하기 어렵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