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결과 믿거나 말거나인가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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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소견 많다” 주장에 국과수 “무지의 소리” 반박

 지난 2월13일 서울 서초동에 자리잡은 의료사고가족협의회(이하 의가협·회장 李殷丁)는 국내 유일의 부검기관인 국과수 권위에 정면도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의가협은 이 성명에서 “국과수가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원인규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검소견을 엉뚱하게 또는 애매모호하게 표현함으로써 수사당국의 올바른 판결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가협 이은정 회장은 “국과수 부검결과에 다른 의료사고의 재판 결과 피해자가 승소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환자를 숨지게 한 의사나 사체부검을 맡은 국과수나 모두 한통속이기 때문”이라며 국과수를 성토했다.

 의가협의 주장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대표적인 의료사고로 아직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李韓勝군 사망사건’을 통해 검시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89년 9월 심장병 수술을 위해 전남대병원에 입원했던 李韓勝(당시 18세)이라는 이름의 한 고등학생이 수술 직후 중환자실에 옮겨져 회복을 기다리던 도중 숨졌다. 병원측 사망진단서에 기록된 직접사인은 심폐정지, 선행사인은 단순한 심장병이었다. 이군의 죽음이 문제가 된 것은 수술이 끝난 뒤 인공호흡기에 호흡에 의지해야 했던 이군의 기도에서 산소호흡기에 연결된 관이 이탈하는 불상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병원측으로부터 “정상적으로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던 유족들은 이군의 사망을 병원측의 잘못으로 보고 즉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한편, 병원측에 대해 응분의 보상을 요구했다. 병원측은 모든 일을 국과수의 부검결과에 맡기자고 제의했다. 부검을 반대했던 유족들은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선 불가피하다”는 경찰측의 설득에 결국 부검에 응했다.

 89년 11월 국과수의 부검결과가 나왔다. 직접사인은 역시 심비대에 의한 심부전증으로 나왔으나 국과수의 감정서엔 “진료부를 검토한 결과 산소호흡기의 관이 빠졌고 이것을 다시 기도에 끼워넣는 과정이 심장마비를 초래하는 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다소 애매한 참고사항이 붙어 있었다. 유족은 이러한 참고사항 때문에 환자 관리를 소홀히 한 병원측의 잘못이 인정되리라 믿었고 지방 언론들도 이 사건을 “국립병원에서 의료과실이 인정된 최초의 예”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국과수의 당시 부검결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유가족에세 불리한 쪽으로 돌아갔다. 이군 사망사건은 해를 넘기며 광주지검, 광주고검을 거쳐 대검찰청으로 올라갔으나 이들은 각각 ‘직접사인은 심장병’이라는 국과수 감정결과와 병원측의 주장을 토대로 유족들이 고소를 “사실오인으로 인한 고소”라며 기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이군의 매형 金仲燮씨(30)는 “병원측에서 잘못했다고 시인까지 했던 일이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느냐”며 명백한 의료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얼버무린 국과수 부검의 애매함을 탓했다.

 의가협에 따르면 해마다 의가협측에 접수되는 의료사고 건수는 2천여건. “이중에서 30~40%가 부검과정을 거치지만 피해자들에게 유리한 판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이은정 회장의 말이다. 이러한 사례 가운데는 교통사고로 가벼운 찰과상을 입고 병원에 갔다가 병원에서 주사를 맞은 뒤 사망하거나 수술이 비교적 간다하다고 알려진 포경수술을 하 뒤 29시간만에 환자가 죽은 예 들 비교적 의사들에게 혐의가 짙은 의료사고가 많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각종 약물의 주사가 사망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이다. 앞서 예를 든 이한승군 사망사건도 일부에선 “사용이 금지된 약물을 사용한 사고”라고 주장한다. 교통사고로 가벼운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케이롤’이라는 뇌부종 치료제 주사를 맞은 직후 사망한 李秀在군(당시 14세) 사건도 이러한 경우다.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는 이군의 누나 李順女시(32)는 “국과수 감정결과 사망원인이 ‘외상으로 인한 뇌부종’으로 나왔지만 약물로 인한 쇼크사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국과수가 독점한 부검권 분산시켜야”
 국과수 법의학과장 姜信夢 박사는 “피해자측의 반발은 이해하지만 의료사고 자체가 전문적인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밝히며 피해자들의 무지와 비전문서만을 탓한다. 국내에서 몇 안되는 법의부검 전문의인 강씨는 “부검의의 사체 검시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것일 뿐 그 이후의 수사와는 전혀 별개의 차원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국내 법의학의 권위자 문국진 박사는 지난해 10월 대한법의학회 학술대회에서 “현행 국내 검시제도는 사회질서 유지 및 사법적용의 정확을 기하기 위한 것에는 상당한 배려가 있으나 국민의 보건정책 및 의학교육 그리고 민사적 책임분배의 정확을 기하기 위한 목적은 거의 무시된 상태에서 사법검시만 이뤄지고 있다”고 현행 부검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도한 법의학계 일부에서는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법의학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대학병원의 법의학과를 중심으로 지역별 부검을 실시케 함으로써 현재 국과수가 독점하고 있는 부검권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무튼 현행 부검체제의 근본적 개선없이는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국과수에 대한 불신은 날로 증폭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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