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직관료 로비 규제한다
  • 시카고 ·조광동 통신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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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정권인수팀 새 윤리지침 공표…퇴임 후 5년간 로비활동 금지

 

 

  막강한 위력을 행사하는 언론을 입법?사법?행정부에 이어 ‘제4부’라고 일컬어 왔는데 미국인들 중에는 로비를 ‘제5부’라고 부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미국 정치에서 로비계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처럼 주정부가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수천개의 이해관계가 다른 단체가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연방정부를 상대로 치열한 설득전을 계속해야 이권의 파이를 한조각이라도 차지할 수가 있다.  싫든 좋든 로비는 미국 정치와 사회 구조의 일부분이 되었다.

  로비스트는 각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그 분야의 관리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로비스트들은 전직 관리?변호사?학자?전문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 중에 가장 각광을 받고 큰힘을 가진 로비스트는 전직 고위관리나 의원이다.  자기와 함께 일하던 동료나 부하 직원이 정부와 의회 요소요소에 있는데다가 그 분야에서 일한 덕분으로 외부 사람이 따라 갈 수 없는 전문지식과 내부 정치기술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비스트가 되기 위해 정부관리나 의원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로비스트는 매력적인 직업으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로비계가 근년들어 여론의 표적이 되기 시작했다.  정치 흥정에 너무 깊이 개입하고 너무 많은 돈을 고객에게 부과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5년 전인가 한국의 현대 자동차 로비를 맡았던 다니엘 머피가 한국을 방문, 현대회장을 예방한 뒤 수천달러의 상담료를 부과해서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어떤 로비 회사는 고객과 점심을 같이 먹은 뒤 시간당 5백달러의 상담료에다 브리핑 값, 비서가 식당에 예약한 비용, 식당까지 운전한 기사 수고비 등 1천달러가 넘는 돈을 부과하는 경우도 있다.  1천달러 정도의 뇌물이면 큰 뇌물에 속하는 미국에서 로비스트가 1천달러짜리 점심을 먹는다는 것은 일반 미국인으로서는 입이 딱 벌어지는 일이다.

특정기업과 내통하는 ‘회전문식 스캔들’

  그러나 로비계가 여론의 큰 화살을 받게 된 것은 이러한 이유보다는 정부 고위관리들이 관직을 그만두자마자 로비스트로 뛰어드는 폐단 때문이다.  어떤 관리는 현직에 있을 동안 그만둘 것에 대비해 특정 기업체에 특별한 혜택을 주고 반대급부로 그 회사 중역이 되거나 로비스트가 돼서 이른바 ‘회전문 스캔들’을 만들었다.  회전문이 빙빙 도는 것처럼 정부 관리와 기업체가 혜택과 보상을 돌아가면서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스캔들은 흔히 레이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에서 심했다.  레이건 시절 백악관 보좌관으로 워싱턴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라인 노프지거가 백악관을 떠나자마자 너무 빨리 로비스트가 되는 바람에 연방윤리법으로 기소돼 재판정에 섰던 사건은 상당히 유명했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노프지거는 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감옥에 가는 것을 면했다.  최근에 큰 물의를 일으켰던 국제신용상업은행(BCCI) 스캔들에 연루된 클리크 클라포드는 워싱턴의 대표적 로비스트였다.  트루만 대통령 때부터 워싱턴 정가에 발을 내디딘 클리포트 존슨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후 워싱턴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신망받는 로비스트였다.  80세가 넘어 만년에 아랍계 사업가가 관계된 BCCI 스캔들에 관계되어 현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회전문 스캔들로 주목을 받은 로비계가 가장 집중적인 비난을 받게 된 것은 외국 정부와 외국 기업체를 위해 고위관리들이 로비활동 한 데서 비롯되었다.  나라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들을 다루었던 고위관리들이 외국 기업체를 위해 일하는 것에 국민감정이 쏠리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사정이 악화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점점 약화되면서 이러한 감정은 더욱 달아올랐다.

  비난의 표적으로 일본이 첫손가락에 꼽히고 있다.  1973년이래 미국무역대표부에서 일한 고위관리들 가운데 3분의 1이 외국 기업체의 대리인이 되었는데 그 대부분이 일본 회사 대리인이다.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칼라 힐스는 부시 행정부에 들어오기 전부터 일본의 이또회사를 위해 상담역을 했으며 무역대표부 일을 하면서도 상담역을 계속해 미국 기업가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칼라 힐스의 보좌관 2명도 함께 일본 회사를 위해 사업 조언을 했다.  일본은 매년 1억달러 이상의 로비자금을 워싱턴 정계에 뿌리고 있으며, 미국 여론의 환심을 사기위해 연구기관이나 자선단체, 대학 등에 3억달러의 돈을 희사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보고서는 일본의 로비활동이 각계 각층에 깊숙이 뻗어 있다고 평가했다.

  2년 전에 《대리인들의 영향》이란 책을 써서 미국 내 일본의 로비활동을 충격적으로 알린 팻 초트는 엘리옷 리처드슨, 스튜어트 아이젠스타트, 찰스 마넷 등 전직 고위관리가 일본의 로비스트라고 말하고 이들의 윤리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의 정치제도와 경제구조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일본 등 외국의 농간은 미국의 자주성까지 위협하는 단계까지 왔다”고 주장한 초트는 문제의 핵심은 미국의 헛점을 이용하는 일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받고 팔려가는 미국 통산관리들의 심리적 허약성과 이기주의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목소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여론의 도마 위에 올려놓은 사람이 대통령선거전에 출마했던 로스 페로였다.  페로는 고위관리를 지낸 로비스트들이 외국 정부와 기업체를 위해 일하는 것을 ‘경제적 반역행위’라고 혹독하게 비난하고 선거 때 외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로비스트가 부시 후보와 클린턴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냉전시대 때 러시아 스파이가 미국 대통령후보의 선거운동을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클린턴 대통령 당선자도 선거운동 기간 부시 행정부의 로비정책을 비판했으나 페로의 강도가 워낙 높아서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페로 “로비는 경제적 반역 행위”

  이러한 여론에 힘입어 클린턴 대통령 당선자는 이번에 고위관리의 로비활동을 규제하는 로비지침서를 내놓았다.  클린턴 정부의 국무장관이 되는 워렌 크리스토퍼가 지난 9일 발표한 로비지침서는 고위 공직자는 관직에서 물러난 후 외국 정부나 외국 기업체를 위해 로비활동을 하는 것을 일생 동안 못하도록 했다.  또 이들 고위 관리는 현직을 떠난 후 5년 내에 로비스트가 될 수 없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외국 정부나 기업체를 위해 로비스트가 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이 없었으며, 국내 로비스트 규정은 현직을 떠난 지 1년 이후로 돼 있었다.  무역협상가로 일한 관리들은 현직을 떠난 지 5년이 지나야 외국 정부나 이해관계가 같은 단체를 위해 로비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백악관 보좌관 경우도 5년 내에 로비스트가 될 수 없도록 규정했다.  고위관리가 되려는 사람은 누구나 이 지침서를 지킬 것을 서약토록 하고, 이를 어길 때는 불법 로비 활동에서 취득한 돈을 모두 국고에 환수토록 했다.  이번 지침서 규정을 지켜야 할 관리는 1천1백명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상원의 인준을 받는 사람은 7백명이다.

1,100명이 ‘지침’ 해당

  이 지침서는 미국 로비계에 커다란 변화의 계기를 만들 것으로 보이지만 이 지침서만으로 로비계의 폐해가 시정될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점도 있다.  다른 대통령이 들어서서 이 지침서를 무효화시킬 수 있고 과연 일생 동안 외국 로비를 못하게 할 수 있겠느냐 하는 반론도 있다.  또 외국에서 근무한 관리나 기술 관리가 이 규제에서 제외되고 새 정부가 임명할 3천명의 새 관리 가운데 이 지침서에 해당하는 관리는 1천1백명 밖에 안된다는 것은 균형이 안맞는다는 비판도 있다.

  로비계 일부에서는 클린턴 정권인수팀의 지침서가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주장하고 이로 인해 행정부에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클린턴 정권인수팀은 아직까지 이 지침서 때문에 인물을 찾는 데 지장이 없으며 지침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지침서는 외국 정부를 위한 로비 풍토에 쐐기를 박고 회전문 로비의 문을 봉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 남은 과제는 ‘제5부’라고 지칭될 만큼 큰 힘을 가진 로비계를 어떻게 체질개선하느냐에 있다.

클린턴 정부의 새 윤리지침

퇴임 후 5년간 로비 금지조항

새지침 

① 전직 고위공직자는 퇴임 후 5년간 로비활동을 할 수 없다.

② 고위 행정부관리는 재임시 관여했던 실무와 관련해 정부부처나 기관의 현직 공무원을 상대로 5년간 로비 활동을 할 수 없다.

기존지침

① 전직 공직자는 퇴임 후 1년간 로비활동을 할 수 없다.

② 전직 최고 고위 관리는 퇴임 후 5년간 로비활동을 할 수 없다.

외국인 로비 등록 규정

새지침

- 전직 고위공직자는 외국정부나 정파를 위해 퇴임 후 평생 동안 로비활동을 할 수 없다.

기존지침

- 전직 고위공직자는 연방정부나 기관을 상대로 퇴임 후 1년 동안 외국정부 또는 정파를 위해 로비활동을 할 수 없다.

무역협상관리 5년 로비 금지조항

새지침

- 전직 고위 무역협상관리는 외국정부, 기업 및 정파를 위해 5년간 로비활동을 할 수 없다.

기존지침

① 무역대표부 대표는 퇴임 후 외국정부, 기업 및 정파를 위해 3년간 로비활동을 할 수 없다.

② 진행중인 무역협상에 참여했거나 협상과 관련해 비밀자료를 접했던 관리는 퇴임 후 1년간 외국인을 위해 로비활동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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