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감축 반대” 미군노조 이색 ‘反美’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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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철수로 근로자 3천명 줄어…미군 “계속 감원”노조 “감원 철회 · 사후보장금 지급하라” 최후 통첩

 “주한미군 당국은 시국판단 착오말고 일방적인 기지폐쇄를 즉각 중단하라.” 대학가에서 반미여론이 들끓었던 80년대였더라면 이와 같은 구호야말로 가장 ‘시대착오적인’관제구호로 운동권 학생들로부터 오해를 받았을는지 모른다. 반미감정이 눈에 띄게 수그러진 요즘 오히려 주한미군의 일방적 철수를 반대하는 새로운 ‘반미’가 노동게 일각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대량 감원으로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을 위기에 놓은 주한미군 배속 한국인 근로자들의 외침이 바로 그것이다. 전국 1백여개 ‘사업장’(미군기지)에 배치돼 통신 · 보급 · 수송 · 시설공병 · 경비 등 약 2백40가지 업무를 맡고 있는 근로자 수는 현재 1만8천여명에 이른다.

 지난 12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주한미군노동조합 소속 조합원 5백여명이 미군기지 폐쇄와 근로자 감원에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열었다. 대회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 노조측은 여의도 노총회관에서 노조 역사상 유례없는 이틀간(19~20일) 의 마라톤 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사용자를 대표해 참석한 제임스 테일러 미육군 소장(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에게 “일방적인 한국인 근로자 감원계획을 철회하고 감원에 따른 사후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기도 했다.

한국인, 2백40가지 업무에 1만8천명 종사
 궐기대회가 열린 것은 대의원대회장에서 테일러 소장의 축사가 끝난 뒤였다. “우리측은 감원 대상자들에 대한 구제방침 등 사후대책을 한국정부에 건의하겠다”는 테일러 소장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대의원들은 ‘감원 반대 및 사후대책 보장’ 등 6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한 뒤 의사당 앞까지 가두행진하여 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날 궐기대회는 노조측이 정부차원의 중재가 있을 때까지 단체행동을 미루겠다는 입장을 저제로 한 것이어서 이른바 ‘불행한 사태’의 발생 없이 조용히 막을 내렸지만 노조가 단체행동의 유보시한으로 못박은 3월 들어서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극한대립 상태로 치달을 염려가 있다.

 노사간 불화의 씨앗이 된 것은 주한미군의 병력감축에 따른 한국인 근로자 대량감원이다. 89년 8월 ‘넌 · 워너 수정안’의 미국의회 통과로 이듬해부터 1단계 병력감축이 시작되면서 주한미군사령부측은 군사기지를 폐쇄하거나 기구를 개편하는 방법으로 한국인 종업원들에 대한 실질적인 감원에 들어갔다. 90년 1월 주한 미제7공군은 수원 대구 광주 등 한국내 미공군기지를 패쇄하면서 한국 근로자 75명을 줄였다. 91년 6월에는 주한미군사령부가 서울 주둔 제1통신여단을 대구로 이전한다며 종업원 감원계획 사실을 노조에 알렸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1월27일 대구에 사령부를 둔 19지원단 소속 한국인 종업원 1백46명을 1차적으로 감원하겠다고 노조측에 통고했다. 2월엔 지상군 중 최초로 미육군 802공병대대가 해체되면서 1백38명의 ‘한국노무단’(KSC) 이 사라졌다. 한편 주한미군 제2사단사령부는 현재 사단 관할 한국노무단 근로자 중 25%를 감원 할 계획이다.

9월까지 최소 2천명 추가 감원
 이처럼 주한미군이 감축됨에 따라 미군에 고용됐던 한국인 근로자들은 미군기지를 속절없이 떠나게 됐다. 89년 2만2천여명에 달했던 주한미군 소속 한국인 종업원 수는 지난해 연말엔 1만8천7백여명으로 3천여명이 줄어들었다. 노조측 자료(활동보고서) 에 따르면 90년 한해에만 이미 감원됐거나 감원통보를 받은 한국인 근로자의 수가 1천43명에 이른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미국식 회계연도에 따라 오는 9월가지 추가감원될 근로자는 최소한 2천명”이라며 대량감원에 대한 위기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인력감사를 위해 8군사령부에서 다녀간 뒤로 감원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현재 밝혀진 예상 감원인원은 47명인데 누가 감원될 것인지 아무도 몰라 모두들 불안에 떨고 있다.” 부산시 초곡동 ‘하야리아 부대’에서 용접공으로 근무하는 金洞玉씨(59 · 주한미군노조 부산지회장)는 감원을 앞둔 현지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김씨는 “근로자들의 항의로 3월로 예정됐던 감원계획인 연기되긴 했으나 올해 상반기 안으로 감원이 이뤄지는 것은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32년 동안 주한미군을 위해 일해온 김씨는 “경력이 오래됐거나 노조 간부직을 맡고 있다고 해서 감원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불안감을 억누르지 못한다. 판문점을 비롯, 전국 곳곳의 미군기지에서 기술지원과 작전보조 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노무단의 노조지부장 金雲起씨(54)는 “아직 감원이 통보되진 않았으나 2사단 지역에서 대량 감원이 예상된다”고 우려한다.

 서울의 미군노조 본부는 이미 지난 90년 10월 감원구제 · 사후대책보장금 지급 등 9개항의 요구조건을 들어 노동부에 쟁의발생 신고서를 제출했다. 노조측이 제기한 감원구제 등 3개항은 ‘주둔군 지위에 관한 협정’(SOFA)의 관련규정(이하 노무조합)에 따라 ‘한미합동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라갔다. 쟁의가 발생하면 으레 노동부 중재로 처리되곤 했던 전례를 깨고 노사분쟁이 양국 정부의 협상 테이블에 올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노조측의 요구조건이 한미합동위원회에 올라간 뒤에도 감원이 계속 진행되는 등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노주측은 쟁의발생 이후의 감원과 감원통보를 위법으로 규정하며 주한미군측의 감원조처를 ‘부당감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 · 미 양국 정부 서로 책임회피
 91년 12월 의사당앞 궐기대회는 사안의 중요성에도 불구, 양국 정부가 문제해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 데 대한 노조측의 실망감이 배어 있었다. 주한미군노조 姜寅起 위원장은 “노무조합에 규정된 ‘냉각기간’ 70일이 훨씬 지났기 때문에 언제라도 단체행동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동안 참고 기다려 왔는데, 양측 정부가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이상이 깊다” 주장한다. 노조측은 노무조항의 냉각기간 70일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악법조항”이라고 주장하며 개정을 촉구해왔지만 이번 쟁의기간 동안에는 이를 준수했다.

 감원문제와 맞물린 노사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노조측에서 제시한 ‘사후대책보장금’문제이다. 근로자들이 요구하는 사후보장금이란 이들이 갑작스런 감원으로 일자리를 일었을 때 다른 일자리를 얻거나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말한다. 문제는 노조가 사후대책보장금으로 최소한 40개월분의 평균임금을 한꺼번에 달라고 요구하는 반면 미군은 본국에서의 예산삭감을 이유로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가 내세우는 근거는 이제까지의 퇴직금 처분방식이 근로자에게 불리했고 실질적으로 손해를 끼쳤다는 것에 있다. 지난 79년 카터행정부 당시 주한미국ㄴ철수 임직임의 여파로 생겨난 현행 방식은 퇴직금을 적립해 한꺼번에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지급하는 방식이다. 주한미군 근로자들은 “정년등의 이유로 퇴직할 때 목돈으로 받아야 할 퇴직금이 매년 부스러기 돈으로 되돌아와 생활비로 녹아버렸다”고 주장하며 적립누진식의 퇴직금지불방식을 부활할 것과 40개월분 평균임금을 사후대책보장금으로 지급해 달라고 요구한다.

 노조측 요구에 대한 주한미군사령부의 태도는 단호하다. 주한미군사령부측은 한미합동위원회를 통해 “주한미군 당국을 주둔군지원협정에 따라 법적인 책임을 원만하게 수행하였기 때문에 노조측 요구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주한미군측이 내놓은 대안은 “경제적으로 불안한 감원 대상자들에게 1년간 금전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노조측에서 받아들여질는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3월까지 요구조건을 수락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낸 뒤 일전불사결의를 다지고 있는 노조측은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이렇게 요구한다. “노무조항규정 상 우리의 대응력에는 한계가 있다. 나머지는 정부에서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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