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정부 그늘 벗어나야
  • 구로다 가쓰히로(산케이 신문) ()
  • 승인 1997.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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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 주제 일본 기자들은 ‘한반도는 북이나 남이나 아들들이 왜 그럴까?’ 라며 의아해 했다. 남과 북이 아들로 인해 난리였기 때문이다. 북쪽은 지금도 ‘아들의 통지’가 미해결 문제로 남아있는데, 이번에는 북한과 남한이 ‘기아’로 난리다. 알다시피 북의 기아는 주민이 굶는 ‘飢餓’이고, 남의 기아는 경영난으로 한국 결제를 흔들고 있는 ‘起亞’이다.

그런데 기아자동차는 일본과 인연이 깊다. 그리고 나도 약간의 인연이 있다. 일본의 신문 기자는 젊은 시절 무조건 먼저 지방 기자 생활을 경험해야 했다. 나도 20대에 히로시마에서 4년간 일했다. 히로시마는 서일본 지역에 있는 인구 백만의 도시이다. 45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원폭 피해를 본 도시로 세계에 알려져 있지만, 또 하나 자동차 메이커 미쓰다로도 알려져 있다. 히로시마 경제를 마쓰다가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기아자동차는 마쓰다와 오래 전부토 제휴해 기반을 쌓았다. 따라서 히로시마에서 기자 활동을 했던 나는 오래 전부터 기아에 애착을 느끼고 있었다.

기아와 마쓰다의 깊은 관계는, 예를 들어 기아가 생산한 소형 트럭 이아마스타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이름은 원래 KIAMAZDA로 할 예정이었는데, 한국 사람에게는 쓰(TS또는Z)발음이 어렵기 때문에 KIAMASTER로 된 것이다. 또 한국에서는 소형 승합차를 일컬어 봉고차라고 부르는데, 이것도 마쓰다봉고를 기아가 한국에서 생산, 시판하고부터 그 이름(봉고)이 보통 명사로 한국 사회에 정착한 것이다.

기아의 경영난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마쓰다 또한 수년 전부터 경영난을 겪어 벌써부터 미국의 포드사가 경영에 참가해 재건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70년대에 자동차산업 개편이 시행되었는데, 21세기에 살아 남기 위해 새로운 업계 재조정을 강요당하고 있다. 기아의 재생을 기원하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한국도 자동차산업개편이 불가피한 것 같다. 기아그룹은 재벌 기업이 아니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 국민 기업으로서 살리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부도방지협약 적용이 발표된 직후, 기아그룹 본사를 방문한 일본인 비즈니스맨은 긴장감이 없는 데 놀랐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기업이 이런 사태에 빠질 경우, 기업 전체 분위기가 긴장감과 위기감으로 꽉 차기 마련이다. 특히 채권자가 몰려올 것에 대비해 외부 인사 출입에 대단히 신경을 쓴다. 그러나 기아의 경우는 일본과 비교해 볼 때 아직 긴장감이 약해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 기업의 경영난이나 도산 사태는 그 기업에만 국한한 문제가 아니라 관련 업계는 물론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 문제로까지 연결되는데, 한국 기업은 사회적 책임감이 모자란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여론 “은행도 부실하면 도산해야 마땅하다”
일본에서도 빚의 액수가 작으면 빌리는 쪽보다 빌려 주는 쪽이 강하게 나오지만, 빚의 액수가 커지면 커질수록 빌리는 쪽의 입장이 강해진다고 한다. 빚이 크면 도산했을 때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에, 빌려준 쪽이 오히려 도산할까 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부도방지협약은 바로 그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인 비즈니스맨에 의하면, 한국의 기업은 타인 의존 의식이 강하다고 한다. 결국은 정부를 비롯해 누군가가 구해줄 것이라는 불안 속의 안심감 때문에, 경영난에 직면했어도 긴장감이 모자란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한국 기업이 정부(타인)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성장해 온 체질 탓일 것이다. 한보나 기아의 거액 부채는 정부의 직·간접 지원과 묵인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른바 장부 규제 완화는 기업의 자립·자율과 표리 관계에 있다. 대선 후보자들은 누구나 규제 완화와 민간 주도 경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아름다운 단어이지만 여기에는 당연히 기업의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동시에 강조해야 마땅하다.

일본에서는 부동산 투기에서 나온 금융계의 거액 불량 채권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노무라증권이나 나이이치간교은행의 부정 융자 등 일류 금융기관의 기업 체질이 규탄 대상이 되고 있다. 여론은 ‘은행도 도산해야 마땅하다’라며,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의 과잉보호를 비난하는 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에서도 아직 진정한 민간 주도 경제로 향하는 진통과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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