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후원한 日 세자 ‘면총각 작전’
  • 도교ㆍ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2006.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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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자숙으로 ‘세자비 찾기 운동’ 본격화



 일본 왕세자 나루히토(德仁)의 약혼녀가 천신만고 끝에 간택됐다. 오는 2월 33세가 되는 노총각 나루히토의 6년 간에 걸친 열렬한 구애가 한 평민 출신 여성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왕세자비로 정해진 오와다 마사코(小和田 子 ? 29)는 일본 외무성 북미2과에 근무하는 직업외교관으로, 현 외무성 사무차관 오와다 히사시의 장녀이다.

 나루히토와 마사코의 만남은 지난 86년 10월 열린 스페인 엘레나 왕녀의 환영 茶會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사코는 당시 하버드대 경제학부를 거쳐 귀국해 도쿄대 법학부에 학사편입한 후 외교관시험에 합격하여 외무성 입성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왕세자비 간택을 서둘렀던 궁내청이 ‘부녀2대에 걸친 외교관 탄생’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를 다회에 초대함으로써 ‘황태자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4개국어를 구사하는 예비 외교관에 반한 나루히토는 주위의 힘을 빌려 마사코에게 맹렬한 구혼 공세를 벌였다. 그러나 최대 난관은 궁내청의 반대였다. 마사코가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러한 문제는 이미 34년전 아키히토 왕세자가 평민 출신의 미치코비를 맞이함으로써 해결되었다. 또 왕족 간의 근친결혼이 유전학상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 평민 출신이 왕족이 되는데 문제는 없었다.

 궁내청이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마사코의 외조부가 공해 기업 신일본소비료의 사장을 지냈다는 사실이다. 공해병으로 유명한 미나마타병을 일으킨 기업 경영자의 외손녀를 왕세자비로 맞이할 경우 큐슈 지방민의 반발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것이 궁내청이 한사코 반대한 이유였다. 궁내청의 반발로 끝내 왕ㅅ자비 후보에서 탈락한 마사코는 이후 외무성에 들어가 88년 영국 옥스퍼드대로 유학을 떠났다. 둘의 관계는 이때를 전후해 소원해졌으나 90년 동생 아키시노 노미야가 형을 추월해 결혼하자 나루히토를 비롯한 왕실의 초조감은 더했다.

 나루히토는 평소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결혼은 30세를 넘기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그동안 그의 결혼 상대로 거론된 여성은 수십명이 넘는다. 그러나 왕세자비 후보로 지목되는 여성마다 “사생활이 까다로운 왕족보다는 자유로운 평민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왕세자와의 혼담을 기피해 나루히토가 영국 찰스 황태자의 기록 32세 8개월을 깨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일본 언론들의 예상이었다.

 이런 위기감에서 작년 2월부터 시작된 것이 이른바 ‘보도자숙조처’이다. 언론의 과열보도로 왕세자비 후보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이 때문에 혼담이 진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궁내청의 불만이었다. 궁내청의 요청을 일본 언론은 군말없이 받아들였고 이 보도자숙기를 이용해 궁내청은 ‘왕세자비 찾기 운동’을 본격화했다.

 두 사람이 재회한 것은 작년 8월, 나루히토가 마사코를 잊지 못하자 이를 알아차린 궁내청과 외무성이 둘의 면담을 주선한 것이다.

 그러나 최대의 난관은 마사코 자신이었다. 영국 유학에서 돌아와 북미2과에 배치된 그는 이미 직업외교관으로 진로를 결정한 상태였다. 그 역시 왕족보다는 평민의 길을 원했다. 따라서 처음에는 나루히토의 줄기찬 구애에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작년 12월 마사코가 왕세자비가 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은 주위의 끈질긴 설득과 나루히토의 전화 공세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루히토는 마사코를 공략하기 위해 비밀 전화를 설치하고 이 ‘사랑의 핫라인’을 통해 왕세자비와 직업외교관 사이에서 흔들리는 여심을 붙잡았다.

 나루히토와 마사코의 결혼 예정일은 오는 6월3일로 이를 전후해 공전의 결혼 붐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닛케이기초연구소의 계산으로는 두 사람의 결혼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는 3조3천억엔(약20조원)이어서 자금의 복합 불환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소비붐을 일으킬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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