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식 뉴딜 정책의 딜레마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8.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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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사업 확대→실업자 흡수"획기적 해법 찾기 골몰…IMF 조건과 어긋나 고민

하루 실업자가 만명에 달하는 사상 초유의 고실업 사태를 맞아, 김대중 대통령이 새로운 역할 모델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반정부 인사에서 대통령으로 변신한 덕에 흔히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로 불리는 그는, 지금 획기적 실업 대책의 원조 격으로 알려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을 닮고자 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30년대를 휩쓴 대공황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경제 피라미드의 바닥에 깔린 잊힌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 지금껏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구제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뉴딜 정책과 같은 대규모 공공 사업을 벌여 실업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

외국 자본에 공기업 매각 ‘검토중'  김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실업 문제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해지자, 한국판 뉴딜 정책을 공공연히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김대통령은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참석 기간에 “매일 만명씩 실업자가 생겨나고 백개씩 기업이 쓰러지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이 '그것이면 되겠다'는 안을 제시하겠다??라고 밝혔다. 여당은 아예 16일에 있을 두 번째 국민과의 대화에서 획기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도입한 국민과의 대화 역시 루스벨트 대통령의 '하롯가 정담(fireside chat)'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 공공 사업을 일으켜 실업 문제를 풀어 보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새로운 논란을 일으킬 공산이 크다. 우선은 재원이 문제다. 대규모 공공 사업을 펼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데,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재정 흑자를 내겠다는 약속을 해둔 터이다. 게다가 고금리를 유지하기 위해 통화 증가율을 14%대로 묶어 두기로 한 상태이다. 이 때문에 정부 일각에서는 실업 대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세계은행(IBRD)의 추가 지원을 얻어내며△50여 개 공기업 가운데 일부를 외국 자본에 매갹한다는 방안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재원 마련 방안을 국제통화기금을 비롯한 국제 기구들이 용인할지는 의문이다. 실업 대책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제통화기금 한국사무소측의 공식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일단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업 대책에 골몰하다 보면 구조 조정 작업이 지연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설령 국제 기구들로부터 재정 적자와 구조 조정 기금을 이부 전용하는 데 양해를 얻더라도, 국민 정서가 알짜배기 공기업을 외국 자본에 파는 것을 용인할지도 의문이다.

실업 대책·구조 조정, 동시 추진 난망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국제 기구들의 우려처럼, 획기적 실업 대책을 펴면서 구조 조정 작업을 지속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여당은 실업 문제와는 별도로 재벌과 부실금융기관 구조 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이 달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개혁 입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구조 조정 작업을 진두 지휘할 금융감독위원회(위원장 이헌재)와 기획예산위원회(위원장 진 념)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실상의 경기 부양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실업 대책과 구조 조정 작업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다. 재벌과 부실 금융기관을 구조 조정하려면 대규모 인원 정리가 불가피하다. 일부 부실 재벌과 금융기관을 정리할 경우, 정리 해고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기업에서는 획기적 실업 대책이 사실상 정리 해고를 봉쇄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실정이다. 이와는 반대로 기업들이 정리 해고를 줄이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부가 주문한 개혁 조처들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또한 실업 대책에 많은 재원을 쏟아부을 경우 재벌과 부실 금융기관의 구조 조정에 쓰일 기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도 "경제를 수술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를 살려 놓고 봐야 한다??면서 제한적인 경기 부양책인 신경제 100일 계획을 편 바 있다. 그 후부터는 경기 부양 논리에 밀려 개혁다운 개혁을 해보지도 못했다.??한 경제학자의 진단이다. 사실 루스벨트가 획기적이었던 것은 실업 대책에 대한 아이디어라기보다는 고통 분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낸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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