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실업 대책은 ‘소규모 기업’ 지원”/정부가 일자리 창출하는 것보다 효과 탁월
  • 성기영 기자 ()
  • 승인 1998.04.1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앨빈 토플러 박사 인터뷰

<제 3의 물결>로 유명한 앨빈 토플러 박사는 지난해 9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 후보를 만났을 때 ‘당신이 당선되면 자문역을 맡겠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여섯 번째인 토플러 박사의 이번 방한에는 ‘국민 정부 출범 기념’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4월4일 토플러 박사를 만났다.

김대통령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가?
지난해 그가 ‘감옥에서 박사님의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가 나를 한국에 다시 오게 한 셈이다.

4~5개 핵심 업종만 남기고 모두 정리하라는 정부의 재벌 정책은 그동안 당신이 주장해 온 논리와 상충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기업에게 한두 개 업종으로 전문화하도록 압력을 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주식을 살 때에도 위험을 줄이기 위해 분산 투자하지 않는가. 그러나 한국의 재벌들은 경제 환경이 바뀐 만큼 핵심 사업을 남겨 두고 나머지를 외부에서 조달(아웃 소싱)하는 정책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20~30년대에 자동차 회사들이 원료를 조달하기 위해서는 철강 회사를 소유해야 하고 심지어는 탄광까지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그럴 정도로 수직적 통합에 집착했다. 그러나 이런 모델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한국 정부는 경제 위기 극복 과정에서 불가피한 구조 조정과 실업 문제 해결이라는 상반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어디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보는가?
매우 근본적인 질문이지만 결국 실업 문제를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느냐 장기적으로 대처해야 할 과제로 보느냐에 달렸다. 5백년 가까운 실업의 역사를 보더라도 모든 정부가 수많은 방법을 동원해 실업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실시한 공공 투자 정책 같은 것은 30년 전에 적용한 정책인데 오늘날에도 성공할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개입해 일자리를 창출하기보다는 소규모 기업들을 지원함으로써 실업 문제에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규모 기업이란 어떤 것인가?
미국 기업들은 5~6년 전과 비교해 개별적으로는 훨씬 적은 인원을 고용하고 있지만 실업률은 지금이 가장 낮다. 소규모 기업들을 지원함으로써 거대 기업 하나가 고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국제 금융권 일각에서조차 고금리를 강요하는 국제통화기금의 처방이 해당 국가를 회생시키기보다는 위기를 심화한다고 비판한다. 한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의 처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제통화기금은 서로 다른 나라들의 질병을 치유하는 데 한 가지 처방만을 고집하고 있다. 멕시코·인도네시아 등은 한국과 다르다. 멕시코는 가톨릭 국가이고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이다. 외채 중 정부 부채와 민간 부채의 비율도 다르다. 그런데도 국제통화기금은 경제적  요소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당신은 한국은 물론 많은 아시아 국가를 방문하면서 아시아적 성장 모델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다. 최근의 아시아 상황에서도 당신의 분석이 유효하다고 보는가?
인도네시아의 환율이 70% 폭등했다고 해서 인도네시아에 있는 공장의 70%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의 환율 문제는 세계적인 문제이다. 또 아시아의 문제는 경제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문제인 경우가 많다. 물론 아시아 사람들도 명심해야 할 것은 있다. 대량 수출을 통한 고속 성장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국가가 이 모델을 쓰고 있고, 중앙 집권적 사업은 더 이상 살아 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시아 경제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 폴 크로그먼 교수가 아시아의 기적이 신화이며 단지 많은 노동력을 투입한 결과였다고 하는 데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시아의 성장은 멈춘 것이 아니라 다음 발전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나는 아시아의 장래와 가능성을 낙관한다.

황장엽씨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가?
지난해 <뉴욕 타임스>에 황장엽씨가 내 책을 보고 나와 토론하고 싶어한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어서 그를 만난 것이다. 그의 사상에 관해 토론했으나 별다른 것은 없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