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국민과의 약속 지켜야“
  • 이부영 (국회의원) ()
  • 승인 1998.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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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의원 기고/“지역주의 청산 · 새 정치 실현 미흡”

4월2일 실시된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한나라당의 이부영 의원이 <시사저널>에 특별 기고문을 보내 왔다. 당내 개혁파인 이의원은 이 기고문에서 거대 야당으로서 국난 극복에 적극 나서지 못한 점. 이번 선거에서 지역 감정을 부추긴 것, 북풍 진상 규명에 대한 노력이 미흡한 점 등 잘못을 지적하며 한나라당이 정체성을 확립해 새로운 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편집자>

  한나라당은 4월2일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전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영남 지역에서 승리한 것을 가지고 안심하기에는 한나라당의 앞딜이 너무나도 불투명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의 의견인듯하다.

  역대 어느 야당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역대 어느 야당보다도 불확실한 상황에 처한 것이 한나라당의 현주소이다. 지난 15대 대통령 선거 이후 한나라당이 겪는 어려움은 1차적으로 야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데 기인한 바 크다.

  한국 정치에서 야당은 언제나 대의 명분과 도덕적 정당성을 갖고 국민의 지지를 호소해 왔다. 비록 수는 적더라도 야당의 커다란 정치적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같은 힘의 원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나라당은 몇 가지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IMF, 극복·북풍 진상 규명·실업자 대책 외면
  이번 재·보궐 선거가 여야를 막론하고 금권과 지역 감정을 난무하는 혼탁한 선거였다는 것이 대부분 언론의 지적이다.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의 지역 편중 인사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지역 감정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렇다면 지난 대선에서 3김의 지역주의 정치 청산을 내걸었던 한나라당으로서는 대단한 자가 당착이다.

 북풍 수사에 대한 한나라당의 태도 역시 저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물론 북풍 수사를 야당에 대한 압박 카드로 사용한 정부·여당의 태도는 비난 받아 마땅한 이이다. 따라서 정부·여당의 정치적 의도를 공격하는 일도 필요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의 기틀을 흔들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북풍 공작의 전보를 규명하는데 여야가 따로 있을 수는 없는 이이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이 북풍 공작의 본질을 규명하는 데 소극적인 듯한 인상을 심어 준 것은 매우 유감스러웠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북풍 수사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정부·여당의 정치적 의도를 비판하되, 진상 규명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일련의 정국 파행 과정에서도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책임을 결코 면제해 주지 않았다. 김종필 총리 지명자에 대한 인준 반대는 분명 정당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정국 파행이 심해지면서 원내 과반수를 차지한 한나라당에 대한 책임론이 비등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정치 현안에 적극 대응한 것만큼, IMF 국난 극복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국회를 주도하는 거대 야당의 노선과 정책을 정리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지금 많은 국민은 한나라당이 지향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예를 들어 재벌 개혁에 대한 한나라당의 입장은 무엇인가. 한나라당이 설정하고 있는 실업자 대책의 기조는 무엇인가, 경제난 극복을 위한 한나라당의 해법은 무엇인가 등등.

  그러나 정작 한나라당의 당권 경쟁에는 인물 간의 다툼과 세 확보 경쟁만이 있을 뿐, 거대 야당의 위상에 걸맞는 노선이나 정책에 관한 논쟁은 찾아보기 어렵다. 과거 야당에서 있었던 대여(對與)노선을 둘러싼 논쟁조차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적지 않은 사람이 한나라당을 여당보다도 훨씬 과거 지향적인 정당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노·사·정 합의, 재벌 개혁 등에 대한 입장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친재버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간의 인식을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보일 것인지, 한나라당의 전당대회는 이러한 문제에 관해 토론을 진행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지난 15대 대선 때 상당 수 개혁적 인사들이 한나라당에 합류했다. 정권 교체가 우선이냐 3김 정치 청산이 우선이냐 하는 논란 속에서도 그러한 선택을 했던 것은.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내건 3김 정치와 지역주의 청산, 그리고 새 정치 실현에 뜻을 같이했기 때문이었지 구태를 답습하고 지역주의 정치에 안주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정당이 선거에서 졌다고 해서 국민에게 말한 모든 약속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여당과 대비되는 야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새 정치를 향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새로운 야당으로 거듭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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