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잠수함 길목 ‘백상어’로 막는다
  • 이정훈 기자 ()
  • 승인 1998.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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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연. LG정밀, 스스로 적함 뒤쫓는 ‘중어뢰’ 개발

 물속은 수십m만 내겨가도 깜깜하다. 불을 켜도 수m 앞만 겨우 살필 수 있는 완전한 어둠의 세계이다. 물속에서는 전파도 통하지 않는다.VLF(초장파)처럼 파장이 큰 전파는 5~10mm 물속까지만 들어갈 뿐, 더 이상 깊이 통과하지 못한다. 해저는 이처럼 빛도 전파도 통과할 수 없는 암흑세계이다.

  이렇게 캄캄한 수중에서 전투는 어떻게 치러질까. 지난 7월7일,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과 더불어 ‘도대체 수중 전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수중 섹)P에서 전달되는 유일한 매체는 음파이다. 음파는 공기 중에서는 1초에 3백40m 이동하지만, 물속에서는 세 배 정도 빨라 천m이상을 달린다. 잠수함은 박쥐처럼 이 음파를 이용해 기동한다. 음파를 쏜 후 메아리를 잡아, 앞에 장애물이 있는지 적 잠수함이 있는지 살피면서 기동하는 것이다. 때로는 음파를 쏘지 않고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머리서 전해오는 음파를 탐지하기도 한다.

  7천t급인 미국 해군의 핵 추진 잠수함(로스앤젤레스급)은 대용량 음파 발생기를 탑 재해, 윈 거리에 있는 적을 먼저 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강력한 음파 때문에 오히려 적 잠수함에게 먼저 발견될 수도 있다. 또 대형인 만큼 스크류 소음도 커서 적 잠수함에게 먼저 탐지될 약점도 있다.

6백억 원 투자해 9년 만에 결실
  1천2백t급인 한국의 209 잠수함은 소형 음파 발생기만 탑재해 원거리에 잇는 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스크류 소음이 작아 들키지 않고 적지에 파고들 수 있다. 멀리 살필 수 있는 반면 시끄러운 것이 대형 잠수함이라면, ‘근시’ 이지만 조용히 파고드는 거의 209와 같은 소형 잠수함이다.

  채집한 음파는 잠수함 전투 통제실에서 분석된다. 전투 통제실 근무자들은 음파를 분석해 ‘어선’ ‘아군 전투함’ ‘적군의 잠수함’이 내는 소리라고 판단한다. 이‘판단’ 이 잘못되면 잠수함은 아군 함정이나 상선. 어선을 공격하는 엄청난 실수를 범 할 수도 있다.

  잠수함이 음파만으로 피아를 식별할 수 있는 것은,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이 배마다 음파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미국 해군은 소련을 비롯한 적성 국가는 물론이고 우방 국가가 신형 함정을 건조하면, 잠수함을 은밀히 침투시켜 이 함정의 음파 정보를 수집해 왔다. 따라서 미국 해군은 전 세계 r의 모든 함정의 음파 정보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집단이다.

  ‘음파 정보 데이터베이스’는 이처럼 목숨을 걸고 수집한 것이기에, 미국은 어떠한 나라에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면 제한된 범위에서 이 음파 정보를 동맹국에 제공한다. 동맹국 해군이 미국 함정의 음파 정보를 알고 있어야, 미국 함정을 적으로 오인해 공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동맹국도 적국 함정의 음파 정보를 미리 알고 있어야 적 함정을 공격할 수 있으므로, 미국은 제한된 음파 정보를 동맹국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 등 태평양 국가들이 2년마다 열리는 림팩 훈련에 적극 참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음파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이다. 훈련 목적상 미국은 사전에 음파 정보를 ‘조금’ 나누어주는데, 한국 등 환태평양 국가들에게 이것은 ‘엄청난 정보’ 이다.

  209잠수함 진수식 광경을 유심히 지켜본 이들이라면 잠수함의 스크류 부분이 검은 천에 가려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스크류를 감추는 것은 소음 정보가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반면 한국은 96년 스크류가 달린 상어급 잠수함에 이어 올해 유고급 잠수정을 나포함으로써, 북한 잠수함의 소음 특성을 완벽히 확보하게 되었다.

  음파를 분석해 적 잠수함이나 수상함이라고 판단 될 때 수중으로 발사하는 무기가 바라 어뢰다. 어뢰에는 ‘경(輕)어뢰’와 ‘중(重)어뢰’ 두 가지가 있다. 잠수함은 음파만을 사용해 기동하므로 느리지만, 수상함은 레이더를 사용하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다. 경 어뢰는 수상함처럼 속도가 빠른 물체를  잡는 무기이고, 중 어뢰는 잠수함처럼 속도가 느린 물체를 공격하는 무기이다.

  수상함처럼 빠른 물체를 잡으려면 어뢰가 빨라야하므로, 작고 가벼운 경 어뢰를 사용한다. 반면 잠수함을 공격할 때는 빠르지 않더라도 원거리를 쫓아갈 수 있는 중 어뢰를 발사한다. 7월7일 보도된 백상어가 잠수함 공격용 중 어뢰이다.

  국방광학연구소(국과연)와 LG정밀이 백상어 개발에 착수한 때는 89년이었다. LG정밀은 80년대 초반, 미국에서 군사 원조품으로 받은 경 어뢰를 개량하는 이른바 ‘상어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어, 백상어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무기 개발 사업은 사업 기간을 연장하거나 사업비를 늘리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왔는데, 백상어 사업은 애초 계획한 일정과 예산 내에서 완성 되었다. 미국이 24년 동안 1조원을 투자해 MK48 중 어뢰를 개발하고, 독일이 10년 동안 4천억 원을 투입해 수트(SUT)중어뢰를 개발한 반면, 한국은 인건비를 포함해 6백억 원을 투자해 9년 만에 백상어를 개발했다.

  국과연과 LG정밀이 애초 계획대로 사업을 성공시킨 데는 해군의 배려도 한몫 했다. 해군은 209잠수함을 도입할 때 패키지로 구입한 중어뢰 외에는 일체 중어뢰를 수입하지 않고, 백상어 개발을 기다려 주었다. 끈기 있게 기다려 준 해군은 백상어 개발을 독려한 가장 확실한 ‘원군(援軍)’이었다.

백상어 2탄은 속도 빠른 ‘청상어’
  어뢰는 추진 방식에 따라 배터리형과 엔진형 두가지가 있다. 엔진형은 속도가 빠른 대신 소음이 큰 것이 약점이다. 미국은 원거리에서 적을 탐지하는 대형 잠수함 위주이기 때문에 속도가 빠른 엔진 추진형 어뢰를 선호한다. 반면 소형인 디젤 잠수함을 운영하는 유럽 국가들은 속도는 느려도 소음이 작은 배터리의 추진형 어뢰를 제작한다. 백상어는 209 잠수함에 탑제되는 것이어서 배터리 추진 방식을 채택 했다.

  배터리 추진형 중어뢰의 대표가 독일의 수트 중어뢰인데, 이 어뢰는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와이어 (유선)로 유도된다. 와이어로 어뢰를 유도 하려면 잠수함이 기둥을 멈추고 어뢰 유도에 집중해야만 한다. 그러나 속도가 느린 수트 어뢰가 접근하는 동안 이 어뢰가 내는 소음이 먼저 퍼져 나가므로 적 잠수함은 수트 어뢰의 접근을 눈치 챌 수 있다. 이때 적 잠수함도 급히 어뢰를 발사하므로, 꼼짝않고 수트어뢰를 유도하는 잠수함이 역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한구은 백상어 스스로 적 잠수함을 추적해 가도록 제작했다.

  지난해 봄 백상어 해상 발사 시험도중 아주 해괴한 사고가 일어났다. 자기 유도 장치에 이상이 생긴 백상어 한 발이 돌고래처럼 물 위로 치솟았다가 잠수하는 등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 ‘지랄탄‘이 된 백상어는 지그재그로 잠영해 일본쓰시마 근해까지 달아났다. 지랄탄을 놓친 개발팀이 전전긍긍할 때 쯤, 일본에서 “일본 어부가 쓰시마 근해에서 괴상하게 항진하는 물체를 발견했는데 혹시 한국 것이 아니냐“라고 연락해 왔다. 그 바람에 한국의 백상어 개발 사실이 일본에 알려졌다. 그러나 이때 발생한 유도 체제의 문제점을 보완함 으로써 백상어는 완벽히 개발되어, 7번 잠수함 이순신함’부터 모든 잠수함에 탑재된다.

  백상어 개발 성공에 이어 국과연과 LG정밀은 어뢰공격으로부터 아군 잠수함을 보호하는 기만기를 개발할 예정이다. 기만기는 잠수함과 똑같은 소음을 ‘약간 더 크게’ 내는 장치이다. 적 어뢰가 접근해 올 때 기만기를 발사하면, 어뢰는 소리가 더 큰 기만기를 따라가 폭발하므로 잠수함은 무사할 수 있다. 또 국과연과 LG정밀은 속도가 빠른 경어뢰를 개발하기로 하고 이 사업을 ‘청상어’로 명명했다.

  음파와 소음을 소재로 쫓고 쫓기는 한판 드라마가 수중 전쟁의 모습이다. 이 전투에서 아군의 핵심 무기는 백상어와 청상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잠수함과 기만기가 이 어뢰 사이를 뚫고 기막히게 곡예 기동을 한다. 여기에 지뢰처럼 부딪치기만 하면 터지는 ‘자항(自航) 기뢰’가 소리 없는 ‘가미카제‘처럼 적 함정을 찾아 돌진해 들어가는 것이 수중 전투 세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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