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 쇳물의 기적 다시 이룰까
  • 송준 기자 ()
  • 승인 1998.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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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경영진과 함께 창립 30돌 맞고 체제 정비 돌입 … 경쟁력회복 · 민영화등 넘어야할 산 첩첩

포항제철(POSCO)이 4월1일 창사 30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포철의 조강 생산량은 2천6백43만t, 기업단위 생산규모로 세계2위의 기록이다. 1위인 신일본제철(2천6백90만t)이 백여 년에 걸쳐 쌓아온 성과를 한달음에 따라잡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록은 더욱 경이롭다. 총 매출액 9조7천1백81원, 순이익 7천2백억원,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이었다.

 그런데도 포철의 30주년 잔치는 썰렁하기 그지없다. 한 차례 리셉션과 4월1일 아침 기념식을 거행하는 것이 전부다. 국가경제가 IMF한파에 꽁꽁 얼어붙은 데다가, 유상부 신임회장의 취임에 뒤이어 작지 않은 규모의 구조조정이 예상되어 흥이 날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회장 · 사장에 대한 인사에도 말이 많았다. ‘박태준 사단 부활’‘한풀이식 낙하산 인사’라는 머리글자가 연일 일간지의 지면을 장식했고, 외국 투자가들은 ‘금융부실을 부른 은행장들은 연임하고, 최고실적을 올린 경영자는 경질되는 한국식 경영방식이 이해가 안간다’고 입을 모았다.

 왜 그랬을까. 이번 인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 있는 복잡한 배경과 철강산업의 특수성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번인사는, 지난 3월13일 박태준 자민련 총재의 보고를 받고 김대중 대통령이 ‘구상대로 진행하라’고 힘을 실어주면서 17일 전격 집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정권인수위원회가 작성한 ‘포항제철 보고서’가 근거자료로 첨부되었다.

 보고서에는 이권개입 의혹과 방만한 경영실태등 김만제 전 회장의 문제점들이 조목조목 지적되어 잇다(68쪽 기사참조). 이 방식은 93년 초 박태준 당시 명예회장과 황경로 부회장, 유상부 부사장등 포철 경영진이 물러날 때의 양상과 상당히 닮은꼴이다. 95년에 명예회복이 되기는 했지만, 탈세 · 뇌물수수 ·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를 쓰고, 박씨는 해외로 떠나고 황씨와 유씨는 유죄판결을 받았었다. 이 양상만 놓고 보면, 보복성 인사라는 인상이 짙게 풍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포항제철이 지난해 달성한 ‘역대 최고 매출액’의 이면을 살펴보면, 5년을 뛰어넘은 두 인사의 차이점이 명확해진다.

 김회장 재임기간의 경영 실적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감가상각 비율이 급격히 낮아져, 97년에는 최근 10여년 동안 가장 낮은 비율을 기록한 것이다(아래표참조). 이로 인한 차액이 범상치 않다. 93년 이전에는 매출액에서 감가상각비를 뺀 차액이 대체로 4천억원 선에서 유지되는데, 94~95년에는 약 9천9백억원, 96~97년에는 무려 1조5천억원 가량의 차액이 발생한다.

 건물 · 시설마다 적용되는 감가상각 내역이 조금씩 달라서 싸잡아 정리하기는 쉽지 않지만, 공교로운 것은 포항에 투입된 건물 · 시설의 감가상각이 94년께 상당부분 마무리되고  광양지역을 포함한 나머지 건물 · 시설의 감가상각이 97년께 또 한차례 매듭지어진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기간의 경영 실적은 김회장이 일군 성과라기보다 종전의 경영에서 나온 결과인 셈이다. 김회장 재임 기간은 유실수가 본격적으로 열매 맺은 시점이엇던 것이다.

 김회장은 이 행운을 만끽했다. 정권인수위 보고서가 밝힌 방만한 경영도 이 행운과 무관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68쪽에 지적된 낭비성 투자 외에도, 김회장은 여러 가지 선심정책을 썼다. 취임하던 해부터 임원 급여를 70~84%(회장 자신의 연봉은 5천4백50만원에서 1억35만원으로)인상하고 직원급여도 50%올렸다. 명예퇴직금으로 90개월분을 지급하기도 했다. 87년부터 지루하게 진행된 ‘어민피해보상’협상도 김 전 회장 재임중에 전격 타결되었다. 95년5월에는 포항시에 2백억원을 들여 휴양 · 문화 · 체육시설을 건립해 주겠다고 제의했다. 96년5월에는 18억원을 들여 경상북도에 국내 최대규모의 ‘도민의 종(약29t)을 제작 · 기증하기로 했고, 96년 11월에는 서울대에 스포츠컴플렉스 건립공사비 백억원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방만한 경영으로 국민기업 이미지 퇴색
 물론 이같은 결정이 모두 허튼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우선 투자할 부분을 소홀히 했다는 점이다. 박태준씨가 이끌던 때의 포철은 무엇보다 노후한 시설을 고치거나 교체하고 나아가 첨단 시설에 투자하는데 높은 비중을 두어왔다. 전 포철 임원 아무개씨는 “철강산업 경영의 관건은 3~5년 앞을 내다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설비보수 및 투자를 게을리 한 대가도 그때쯤 치르게 된다”라고 말했다.

 포철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철강재 가격을 빈번이 인상한 점도 매출액을 부풀린 간접 요인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여러 철강 제품의 가격인상이 잦았다. 바로 이 점에서 ‘김만제의포철’은 이전의 포철과 확연하게 궤를 달리한다. 포철의 역사는 곧 제품가격을 낮추자는 몸부림의 궤적이었고, 그러기위해 택한 정책이‘원가절감 지상주의’였다.

 모순 같지만, 포철이 오늘날처럼 공룡의 모습을 하게 된 것도 원가절감에 절치부심한 결과였다. 원가절감의 비책은 대량생산과 공기단축이었다. 그래서 대형고로 방식을 택했다. 원료(연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브라질 · 캐나다 · 호주등과 장기계약을 맺는 한편 해외광산 개발에 직접 투자하는 방안까지 모색했다. 수송시간을 아끼기 위해 마련한 대형전용 선박(15~25t급)은 어느덧 원료용 38척과 제품용4척에 이르렀다.

 포항 · 광양 항은 이들 선박의 전용항구로 개발했고, 막대한 전력소요량도 같은 방식으로 해결했다, 자체발전을 원칙으로 삼고 매진한 결과, 94년5월 100메가와트(MW)급 열병합 발전 설비준공을 끝으로 전력자립도 94%를 달성해 매년 96억원의 원가절감 효과를 얻어냈다. ‘산 · 학 · 연 협력시스템’을 구축해 기술변화에 주도적으로 대비한다는 취지에서 포항공대도 설립했다. 이 같은 투자에 힘입어 포항제철은 평균 출선비(하루 쇳물 생산량을 고로 내부 용적으로 나눈 수치)와 최저 원가율, 설비 가동률, 1인당 조강 생산량, 제품t당 최소 노동시간 등에서 세계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확보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철강재 저가정책을 고수함으로써, 다른 중화확 공업과 수출정책에 경쟁력을 담보해 준다는 것이 포철의 일관된 정책 방향이었던 것이다.

 곽상경교수(고려대 · 경제학)의 논문 <국민경제에 대한 포항제철의 기여분석>(92년)에 따르면, 포철의 철강재 저가 정책에 따라 산업별로 0.31~3.58%의 생산비 절감 효과가 발생했으며(88년 현재),산업간파생 · 국제수지개선 · 수입대체효과등에도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물가지수증가율과의 상관관계도 0.77(1에 가까울수록 물가에 큰영향)에 달해, 71~89년의 물가와 철강재 가격은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이 같은 포철의 성격이, 김회장 시절에 이익극대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그 결과 포철이 더욱 우수한 기업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국민기업이라는 이미지는 상당히 퇴색한 셈이다. 게다가 포항제철은 대일 청구권자금이라는‘뼈아픈 역사의대가’로 탄생했다. 역사의 피해자가 아직도 무수히 고통받고 있는데, 그 역사의‘불완전한 보상금’을 사용한 포철의 빚은‘특별기금’같은 합당한 대책을 내놓기 전에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또 한가지,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김회장 재임때 갑작스레 인상된 급여수준이 가격 경쟁력에 어느 정도 장애가 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한보철강 · 삼미 특수강 등 부실업체문제(66쪽 딸린 기사 참조)와 IMF한파가 맞물리면서 신임회장단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포스코 경영연구소가 지난해 12월에 작성한 보고서 <IMF 체제하의 98년 철강수급전망>에서도 그다지 밝은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고금리 · 고환율 · 긴축재정 · 투자축소 · 소비감축 등으로 올해 철강재 국내수요가5.5%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총 생산량의 60~70%를 국내에 공급하는 포철로서는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미미하지만 제품 재고량도 늘어가는 추세다.

 수출 전망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일본(39%) 동남아(23%) 중국(16%) 미국(15%)이 주요수출국인데, 동남아는 극심한 경제위기에 빠져 있고 일본도 불황으로 고심하고 있다. 중국 역시 아시아지역 수출이 감소하면서 공급 과잉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부터 미니밀(2백만t이하의 소규모 전기로 설비를 지칭함. 다품종 소량 생산 전략을 위한 최신공법)을 위시한 신규설비들이 여기저기서 가동하기 시작하면서 제품가격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경기가 좋은 유럽에 공급되는 한국철강재는 전체 수출량의 1%가 안 된다.

고급강 생산 체제로 전환,‘질의경쟁’벌여야
 벌써부터 조급해 할 상황은 아니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포철이 일반강 위주의 생산 체제를 고급강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국 · 대만등의 추격이 만만치 않거니와, 일본 · 미국등과도 ‘질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신일본제철은 조강 생산량에서 겨우 47만t앞서지만, 매출액으로는 2배에 가까운 18조1천2백20원(100엔=820원)을 기록하고 있다.

 환차손 문제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거의 전량을 수입해 쓰는 원료의 계약날짜가 주로 4월초로 몰려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환차손(3천1백54억원)은 이미 계약했던 수출 분량의 환차익(2천1백71억)덕분에 어느 정도 보전되었지만, 올해전망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하다.

 암초투성이인 형국이지만, 다행히도 포철이 비축해온 원가절감 노하우와 112.2%(97년)에 이르는 설비 가동률이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임 회장단은 ‘제철보국’정신으로 회귀하겠다고 천명했다. 제2의 창업 선언인 셈이다.

 가까스로 고비를 넘긴다 해도 문제는 또 있다. 바로 민영화다. 최근의 신자유주의 경제추세도 그렇거니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영진이 교체되는 폐단을 막기 위해서라도 민영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전에 풀어야할 숙제가 있다. 독점적 지위를 악용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과, 외국 자본의 경영권 잠식을 효과적으로 막는 일이 그것이다. 이래저래 30주년을 맞는 포철의 미래가 변화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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