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얕보지 말란 말이야”
  • 최영재 기자 ()
  • 승인 1998.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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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핵실험 ‘숨은 뜻’/ 앙숙인 중국 · 파키스탄 견제…푸대접하는 미국에 ‘한 방’

인도가 강대국 압력을 무릅쓰고 핵실험을 강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인도와 국경을 접한 주변국이 핵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인도 서북쪽에 있는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파키스탄은 48년, 65년 71년 세 차례 인도와 전쟁을 벌여 세 번 모두 패했다. 파키스탄으로서는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린 것이 당연하다. 파키스탄의 알리 부토 총리는 65년 전쟁에서 패한 뒤 “풀뿌리를 먹고살더라도 핵무기를 만들겠다”라고 ‘풀뿌리 발언’을 한 뒤 핵개발을 진두 지휘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인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파키스탄의 핵 개발은 인도의 꽁무니를 따랐을 뿐이다. 인도는 56년 첫 원자로를 돌렸고 66년에 플루토늄 분리 공장을 준공한 핵 선진국이다. 74년에는 핵실험에 성공해 비공식 핵보유국이 되었다. 핵 전문가들은 인도가 이미 연간 플루토늄 1백30~2백40㎏을 생산하고 있으며, 핵무기 수십 개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추정한다. 파키스탄은 65년부터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해 87년에 가서야 핵무기를 보유했다.

인도의 핵실험은 중국에 고마운 일
 인도가 가장 위험하게 생각하는 상대는 중국이다. 인도와 중국은 58년부터 끊임없이 국경 분쟁을 겪었다. 62년에는 전쟁까지 벌여 인도가 참패했다. 당시 중국의 주언라이(周恩來) 총리는 ‘인도에 교훈을 가르쳐 주겠다’며 국경을 공략해 인도의 자존심에 먹칠을 했다. 2년 뒤인 64년 중국은 핵실험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주변국을 통해서 끊임없이 인도를 압박했다. 중국은 파키스탄에 핵무기와 미사일 기술을 제공했으며, 인도의 해·공군과 미사일 실험을 탐지하기 위해 미얀마(지금은 미얀마)에서 감시 기지를 운영했다. 중국은 또 인도를 겨냥한 핵무기를 티베트에 전진 배치했다. 이런 상황이니 인도가 중국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도의 뉴델리 정책연구센터 브라마 첼러니 안보 담당 교수는 “중국은 과거 경제가 낙후하고 국력이 약할 때도 티베트를 삼키고 인도의 국경을 침공했다. 이제 점점 더 국력이 성장하고 있어 인도의 미래에 자꾸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도는 중국의 위협에 곧바로 대응하지는 않았다. 핵 정책 전문가인 김태우 박사는 이를 인도 특유의 실용주의적 대외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인도의 정책은 ‘슈퍼 베이비’인 인도를 잘 가꾸고 지키는 것이었다. 62년 중국과 싸워서 진 뒤 인도 국내에서는 핵무기를 개발하라는 여론이 빗발쳤다. 당시 인도 정부는 적어도 겉으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상 인도의 핵 기술은 중국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인도는 지금까지 36년간 가능한 한 중국과 국제 사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다. 인도는 핵탄두도 만들 수 있었지만 대외적으로 이를 드러내지 않고 숨 죽인 채 핵무기를 계속 개발했다. 공군력이 약해서 핵탄두를 중국의 주요 도시까지 운반할 수단이 없다는 것을 알고 물밑으로 미사일을 개발한 것이 그 사례이다.

 중국은 현재 서방과 달리 인도의 핵개발에 침묵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의 이해 관계가 걸려 있다. 중국은 5대 핵 강국에는 들지만 다른 나라에 견주면 핵무기 수가 훨씬 적다. 핵무기는 바다나 대륙을 건너 상대국 주요 도시를 타격할 수 있어야 국제 무대에서 군사·외교·정치적인 카드로 쓸 수 있다. 그러려면 사정 거리가 8천㎞ 정도 되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보유해야 한다. 중국의 핵무기 가운데 이런 기준에 맞는 것ㅇㄴ 사정 거리 7천㎞인 ‘통펭-4 미사일’ 10~20기와 사정 거리 1만3천㎞인 ‘통펭-5미사일’ 10기뿐이다. 더구나 다탄두 미사일은 아직 만들지 못했다. 중국은 다른 핵 강국들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추가 핵실험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인도의 핵실험은 중국에는 ‘손 안 대고 코 풀어 주는’ 고마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서방 세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자기네를 푸대접한 미국을 자극하기 위해 인도가 핵실험을 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수십 년간 인도보다는 파키스탄·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미국 국무부에는 중국 전문가가 수십 명이나 있지만 인도 전문가는 턱없이 모자란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미국의 세계 전략은 미국의 국익을 얼마나 보장할 수 있느냐가 잣대이다. 미국은 70년대에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이유로 경제를 봉쇄했지만, 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전격적으로 파키스탄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 반군을 지원하는 기지를 파키스탄에 세우기 위해서였다. 이 시기에 인도는 소련과 손을 잡고 있었다.

 인도는 74년 핵실험을 한 이래 실질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또 핵실험을 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는 국내 정치 용인이 작용했다. 정치 기반이 약한 인도인민당(BJP)으로서는 분위기를 바꿀 계기가 필요했다. 실제로 이번 핵실험을 계기로 인도가 자신을 공식적인 핵보유국이라고 전세계에 선포한 뒤 인도인민당의 인기는 크게 올라갔다.

 여기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강대국들이 강요하는 핵무기 관련 조약의 허구성이다. 김태우 박사는 “서방 강대국이 제3 세계의 핵 확산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것은 자기들의 원죄를 감추는 핵 패권주의의 발로다”라고 지적했다. 70년 발효된 핵확산방지조약(NPT)만 해도 그렇다. 이 조약은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외에는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핵보유국이 많아지면 핵 종말이 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핵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에서이다. 그러나 이는 5대 강국에게만 핵 보유 권한을 주는 불평등 조약이자 이들이 핵무기 숫자를 늘리거나 성능을 개선하는 ‘수직적 핵확산’을 합법화하는 장치일 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인도의 핵실험을 매우 강력하게 비난하는 미국이야말로 가장 문제가 되는 핵보유국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최근 수십억달러가 드는 ‘원자 무기 저장 관리’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이 계획에 따라 미국은 핵무기 수만t을 비축하고 있으며, 최근에 B61-11을 개발하는 등 더욱 효과적인 핵무기를 만드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너무나 쉽게 핵주권 포기한 한국
 핵실험을 금하는 가장 큰 목적은 새로운 핵무기 개발을 막으려는 것이다. 새 핵무기가 제대로 터지는지 확인하려면 핵실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의 기술은 과거의 핵실험 정보를 근거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핵실험을 대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치적으로 시끄러운 핵실험을 피하고도 핵무기를 개발할 길이 트인 것이다. 핵실험을 하는 나라는 이제 기술 후진국뿐이다.

 현재 미국은 핵실험을 한 인도에 경제제재를 할 태세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실천에 옮길지는 의문이다. 또 인도는 핵실험을 한 뒤부터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ICBT)에 서명하겠다는 뜻을 여러 경로로 밝혔다. 따라서 서방의 제재는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할 전망이다. 인도는 이전에도 미국에 발목을 잡히지 않았다. 핵확산방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핵사찰을 받지 않았고, 96년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물론 지구상에서 핵을 없애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이를 위해서 강대국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인도의 실리 외교를 보면서 핵 전문가들은 너무나도 쉽사리 핵주권을 포기한 우리의 핵 정책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평화는 한 국가가 이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라야만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명제이다.
崔寧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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