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공단공해병
  • 박성준 기자 ()
  • 승인 2006.05.0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환경난민’ 양산



주민 “공해 없는 곳으로 이주시켜 달라??
당국 “대기오염도 등 환경 상황 이상없다??


전남 울산군 온산면 당월리엔 사람이 살지 않는다. 한때 이곳에서 양식업으로 생계를 잇던 주민들은 국내에서 제일 큰 비철금속 공업단지인 온산 공단이 들어서자 10여년간 각종 공해에 시달리다가 지난 86년 정든 고향을 등졌다. 달포리의 여섯 마을도 당월리와 같은 이유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7년이 흐른 지금 온산공단에서 훨씬 멀리 떨어진 외딴 마을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남 울산군 청량면 용암리 오대마을. 온산 앞바다로 흘러드는 외황강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울산시와 마주보는 이 마을은 고개 너머 오천마을과 합쳐 총 78가구 3백80여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앞에는 강물이 흐르고 뒤에는 야트막한 산이 있어 오대마을은 예로부터 ‘신선이 사는 동네??로 불린 한갓진 농촌 마을이었다.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한다??

 이 마을에서 ‘신선이 떠난??것은 강 건너편에 울산석유화학단지와 여천공단, 그리고 산너머 온산공단이 들어서면서부터이다. 말 그대로 ??공해지역 안의 외로운 섬??이 되어버린 이 마을은 갖가지 공해로 말미암아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오대·오천 마을이 겪고 있는 가장 큰 공해는 심한 악취이다. 이곳 주민들은 아침마다 바람의 방향을 알아보는 버릇이 있다. 건너편 공단에서 내뿜는 유독가스가 어디로 날아가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바람이 마을을 향하면 주민들은 긴장과 불안감에 휩싸인다. 유독가스가 날아들면 마을은 이내 악취에 뒤덮이기 때문이다. 한번 들어온 유독가스는 쉽게 빠지지 않아 주민들은 늘 달걀 썩는 냄새, 술냄새, 농약 냄새 등 온갖 고약한 냄새에 시달린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엔 더욱 심하다. 이 마을 이장 권오선씨(37)는 “가스공해는 내내 계속된다. 가스 때문에 주민 대부분이 만성 두통이나 눈병, 호흡기 질환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오대마을 바로 건너편 울산석유화학단지는 동해펄프 유공콤프렉스 대천화학 영남화학 등 화학공장 일색이어서 분진과 유기용제 말고도 아황산가스, 메틸메르캅탄(황화수소), 아민류(암모니아) 같은 악취성 화학물질을 24시간 배출한다. 공단이 토해내는 오염물질에는 염화수소 초산 불소 아세트알데히드 스틸렌 알콜도 포함된다.

공해 탓인지는 몰라도 여름철이면 유난히 모기떼가 극성을 부리는 현상도 오천·오대마을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한번 손을 내저으면 한 움큼이나 잡힌다??는 이곳의 모기는 가축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지독해 지난 여름엔 이 마을 주민 손용락씨 (38)의 새끼염소까지 죽게 만들었다. 모기가 가축을 죽인 거짓말 같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더이상 사람 살 데가 못된다고 생각하게 된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다. 뚜렷한 이유없이 농작물이 말라죽고 주민 대부분이 괴질에 걸리는 사례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여름이 되면 어린 아이들은 팔다리와 얼굴 같은 노출된 살갗에 부스럼이 나고 진물이 흐른다. 또 어른들은 저마다 신경통을 호소한다.

“이곳 주민 치고 병원을 찾지 않은 사람이 없다. 기관지염과 같은 호흡기 질환은 거의 모두가 한번씩은 앓았을 것이다. 한번 걸리면 쉽게 낫지도 않아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들지만 질병의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주민 손용락씨(38)는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 줄줄이 도장이 찍힌 의료보험 카드를 내보인다.

주민들은 공단을 향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문턱이 닳도록 행정당국을 찾아다니면서 진정과 탄원을 하기 시작한 것은 괴질과 농작물 피해의 원인이 공해때문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 지난 87년이었다. 그 해 여름 오천·오대 마을 주민들은 울산석유화학단지에 몰려가 대책을 요구하며 최초로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이듬해 8월엔 경운기 60여대를 몰고 시위에 나서다 이를 막는 전경과 맞서기도 했다.

이 지역 공해문제가 울산군 전체의 문제로 떠오른 것은 지난 91년말이다. 주민들은 “더이상 참고 살 수 없다. 공해 없는 곳으로 이주시켜 달라??며 집단이주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울산군은 이 주장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오천?오대 마을의 환겸오염도를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군으로부터 용역을 받은 울산대학교 부설 환경연구소 (소장 김영태 교수)는 1년간의 현지조사 끝에 92년 12월 결과를 발표했다.

농작물에서 중금속 다량 검출돼

울산대의 연구 조사 결과는 울산시 전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애초에 문제가 됐던 악취공해 상황이 주민들의 예상대로 나타난 데다 오천·오대 마을의 농작물에서 아연 구리 납 카드뮴 둥 인체에 치명적이라고 알려진 중금속이 다량 검출되는 등 과거에 몰랐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특히 아연은 오천 마을의 콩잎에서 1백18.15ppm이라는 엄청난 양이 검출돼 충격을 주었다. 그 밖에도 감나무 잎사귀에서는 구리성분 7.86ppm이 검출되는 등 오천·오대 마을 농작물에선 자연함유량을 훨씬 넘어선 중금속이 검출됐다. 울산대 환경연구소는 “마을이 공해를 유발하는 공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주거지역으로 적합하지 못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현재 주민들은 ‘집단 이주??대책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지만 행정당국이 여러가지 이유를 대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그것이 관철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군청은 집단이주를 요구하는 근거가 된 ??주거 부적합?? 판정에 대해 ??주민들이 내용을 오해한 결과??라고 잘라 말한다.

주거에 부적합하다는 결론은 오천·오대 마을이 공단과 워낙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안전사고나 화재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어 나온 얘기일 뿐 공해 확산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군청 환경보호과의 한 관계자는 “조사해본 결과 대기오염도 등 환경 상황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 이주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려 해도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공해피해가 확대되자 울산 시민들 사이에선 “울산도 멀지 않았다??는 위기감과 함께 ??앞으로 추진할 공단확장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일고 있다. 특히 온산공단은 규모를 두배로 확장하기 위해 올해 안에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벌일 예정이어서 주민들의 불안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당월리 사람들은 새로 이주한 덕신리에서도 다시 보따리를 싸야 할 판이다. 울산공추련 의장 한기양 목사는 ??공단확장을 그치지 않는 한 공해를 피해 보따리를 싸는 환경 난민이 끝없이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싫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떠난다??는 환경난민들의 ??집단이주??요구는 울산 지역에 또 한바탕 거센 공해논쟁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