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 절하 아시아 제2 환란 세계 대공황
  • 장영희 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1998.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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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시나리오 현실화 가능성 점점 높아져

러시아가 8월17일 국가 외채에 대한 90일간의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과 루블화 평가 절하를 전격 단행했다. 러시아 정부와 중앙 은행은 국제 금융 위기가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같은 충격요법을 동원했지만, 재정 파탄과 금융 시스템 마비에  따른 금융 공황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이 여파로 도쿄 외환 시장에서는 미국의 달러화가 강세를 보인 반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한국 등 아시아 각국 통화도 환율이 올랐다. 가뜩이나 엔저 추세와 중국 위안화가 불안한데 러시아 루블화마저 가치가 추락해 세계 금융 시장에서는 위기감이 높아 가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아직 현실화하지 않은 최대 복병은 위안화 평가 절하 가능성이다. 중국 중앙 은행인 중국인민은행 류밍캉(劉明康) 부총재는 홍콩이 국제 투기 자본들에 수 차례 난타당한 뒤 8월 11일 기자 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내외 투기 세력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중국은) 런민삐(人民?)를 평가 절하할 필요가 없으며 하지도 않을 것이다. 중국은 ‘큰손’을 갖고 있다는 점을 투자자들에게 충고하고 싶다. 오판하지 말기바란다.” 8월 초부터 장쩌민(江?民) 국가 주석등 중국 지도부도 일제히 나서 ‘위안화 절하는 없다’는 말을 되뇌었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위안화가 평가 절하(환율을 올려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 94년 1월부터 1달러 = 8.28위안)될 가능성은 여전히 국제 금융 시장에 ‘살아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능성을 점치는 세력이 늘어 가고 이제 단행 시기만 남았다는 관측도 무성하다. 세계 경제를 뒤흔들 최대 변수로 거론되는 위안화 평가 절하는 왜 시장 관계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일까.

‘엔저 → 위안화 절하’는 필연인가
 국제 금융 시장에서 거의 두세 달 간격으로 출몰과 잠FGUS하게 된 실마리는 투기 자본의 홍콩 공격과 54년 이후 최악의 재해라는 양쯔 강 홍수 사태가 제공했다. 양쯔 강 홍수가 올해 중국의 국내총샌산(GDP)을 적어도 1% 포인트 떨어뜨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 수마가 중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결코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위안화 절하 가능성이 시장에서 사그러들지 않는 본질적 이유는 일본 엔화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8월11일, 1달러에 대한 엔호 환율은 8년 만에 최저치(147.90엔)로 떨어졌다. 지나 6월17일 중국의 ‘위협’에 굴복한 미국이 외환 시장에 개입해 가까스로 더 이상의 폭락을 막았던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즉각 일본발 세계 대공황 경보가 울려 시장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현재 엔화는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설 등이 나돌면서 1백46엔 안팎(8월17일)에서 소폭 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미 외환 시장 관계자들은 1백50 엔대로 추락하는 것을 시간 문제로 보고 있다. 기본적으로 일본 경제가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출범한 지 3주일밖에 안된 오붙이 게이조(小??三) 내각 역시 벌써부터 엔저와 주가 폭락이라는 시장의 냉혹한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엔화가 1백60 선까지 폭락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외환은행 이홍우 외화자금부장은 “금융 시장에서는 1백55-1백60 엔이 되면 중국이 어쩔 수 없이 위안화를 평가 절하하지 않겠느냐고 보는 사람이 많다”라고 전한다. 씨티은행 오석태 딜러는 이 기준이 논리적이든 아니든 시장이 그렇게 믿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엔화가 달러당 1백55-1백60 엔대가 될 때 중국 정부가 위안화를 평가 절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우선 알려진 것과 달리 중국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보는 학자들은 절하 쪽에 무게 중심을 둔다. 산업연구원 온기운 동향분석실장과 환은경제연구소 신금덕 동향분석실장, 대우경제연구소 한상춘 연구위원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중국이 올해 목표로 하고 있는 8% 성장률 달성을 물 건너간 일로 본다.

 중국 경제는 97년 중반부터 내수가 부진하고 물가가 크게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며, 동아시아 경제 위기로 수출과 외국인 투자가 위축되면서 경기가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특히 상반기 공업 생산 증가율은 7.9%로 작년 같은 기간(11.6%)에 비해 뚝 떨어졌고, 지난해 11월부터 증가세가 둔화한 수출은 지난 5월 22개월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1.5%로 반전되었다.(표2 참조). 주룽지(??基) 총리가 7월 말 올해 8%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며 전력 투구를 촉구하는 것도 중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실업자가 크게 늘고 있는 것도 큰 부담이다. 공식 실업률은 3.3%(6백10만명)이지만, 사실상 실업 상태에 빠진 노동자를 합치면 실업자가 이미 2천5백만명에 달한다는 놀라운 수치가 올 2월 국무원 산하 국가개발계획위원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보고되었다는 얘기마저 있다. 이미 1-3월에 노동자 시위가 4천 건이나 있었고 이 가운데 1백30건은 무장공안과의 충돌로 비화했다는 소식도 있다. 7월 초 중국 최대 조선사인 다롄(??) 신조선의 인밍롱 부사장이 중국 정부가 수출 경쟁력을 회복하는 조처들을 취하지 않는다면 경제 불안과 함께 노동자 소요 사태가 더욱 크게 일어날 것이라고 베이징 당국에 압력을 가한 것도 수출 산업 쪽부터 위안화 절하 압력이 거세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위안화 절하는 중국 경제의 부메랑
 그럼에도 올해는 위안화 절하가 없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우선 경제적 실익이 없다는 주장이다. 조선족 출신인 LG경제연구원 한홍석 연구위원은 “절하 가능성이 전혀 없다. 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틀림없지만, 절하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한위원은 “중국은 금융 시장이 거의 닫혀 있어 긴박한 외환 위기 상황이 일어날 수 없는 구조이다. 외환 보유고가 1천4백억달러에 달하는 등 방어 능력도 충분하다. 수출이 어렵다고 해도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정도에 그쳐 경기 침체를 내수로 해결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또 이미 동남아 통화들이 50% 이상 돈 가치가 떨어져 중국 위안화를 10% 정도 절하해서는 효과가 없을뿐더러, 만약 비난을 무릅쓰면서 30-40% 절하를 전격 단행할 경우 아시아 통화들의 돈 가치를 더욱 떨어뜨려 수출도 안되고 중국 안마당인 동남아를 피폐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중국 정부가 그같은 무리수를 두겠느냐는 주장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월라 책임연구원도 위안화 절하가 경제적 실익은 거의 없는 대신 정치적 부담만 준다고 지적한다. 장쩌민 주석 이하 중국 지도부가 수 차례 ‘절하는 없다’고 공언해 온 데다가, 중국의 지도력에 의해 아시아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아시아 맹주론’을 뒤엎게 되어 공신력 추락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이 평가 절하하리라고 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를 홍콩에서 찾는 전문가도 있다(금융연구원 차백인 연구위원). 홍콩은 중국 본토의 해외 자금 조달 창구로, 외자가 절실한 중국 처지에서 홍콩은 절대 흔들려서는 안된다. 최근 홍콩에 대한 국제 투기 자본의 맹폭에 중국인민은행이 결사 저지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위안화가 절하될 경우 홍콩의 고정 환율제가 붕괴할 위험이 높아진다. 홍콩 당국은 83년 10월부터 1달러 = 7.75 홍콩 달러 환율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홍콩이 귀속된 지 불과 1년 만에 위안화 평가 절하라는 결과를 낳는다면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와 ‘항인 항치’(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를 내걸며 세계로 입지를 넓히던 중국이 궁지에 몰리고 앞으로 대만 접수에도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 중국에 타격 주려고 엔저 용인?
중국 정부는 과연 약속을 지킬 것인가. 절하하지 않는다는 지도부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파기할 틈새는 남아 있다. 우선 환율 변동은 국제 사회에서도 거짓말이 통하는 분야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81년 이후 다셧 차례나 그 전날까지도 부인하다가 평가 절하를 전격 단행한 ‘전과’를 가지고 있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엔저다. 중국 지도부는 지금까지 위안화 절하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면서도 ‘엔화 안정’에 방점을 찍어 왔다. 최근 장쩌민 주석은 고무라 마사히토(高村正?) 신임 일본 외무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평가 절하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해 일본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유독 강조했다. 중국 국가개발계획위원회 경제연구중심은 한술 더 떴다. 8월3일 중국에서 발행되는 <아 · 태 경제 시보> 기고문을 통해, 엔화 절하가 계속되는 현재로서는 위안화 절하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중국은 왜 그토록 엔화에 집착하는 것일까. 우선 중국의 일본 의존도가 커 경제적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표3 참조). 엔저가 계속된다면 중국의 대일 수출이 줄어들고 일본으로부터 외자 조달이 어려워질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외자 없는 성장과 개혁을 상상할 수 도 없다.

 엔저의 영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동남아 나라들이 엔저에 따라 절하 압력을 받으면 이 지역으로 나가는 수출품이 더 팔리지 않는다. 중국은 사회 간접 자본에 대한 투자를 통해 내수를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다. 이런 마당에 유일한 성장 요소인 수출마저 위협받는다면 중국은 3대 개혁(국유기업 · 금융 · 행정 개혁)도 안되고 실업 증가라는 정치적 긴장만 높아져 체제가 위협받을지도 모른다.

 결국 위안화 절하는 엔저가 그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둘의 상관 관계 배후에 있는 ‘또 다른 힘’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중국 문제 전문가인 한광수 교수(인천대)는 엔저와 지난해부터 수 차례에 걸친 서방 자본의 홍콩 공격을 서방의 ‘중국 흔들기’로 본다. 동남아 화교 자본을 거느리고 홍콩마저 얻은 중국이 세계 강국으로 떠오르는 것을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이나 일본 역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엔화를 의도적으로 절하시킴으로써 결국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도록 만들어 중국의 체면을 구기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한마디로 클린턴이 중국에 날아가 장쩌민과 손을 잡는 동시에 국제 투기 자본을 끌어들여 중국의 젖줄인 홍콩을 타격하고, 일본처지에서는 고맙지만 중국에게는 치명타인 엔저를 용인하는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의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아시아 위기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마저 흔들린다면 미국에도 좋을 것이 없다는 견해가 미국정계는 물론 제조업체 사이에 비등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적당한 수준에서 아시아 두 강국인 중국과 일본을 길들여 미국이 주도하는 ‘신세계 금융 질서 구상’에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일본의 대표적 시사 월간지 <포사이트(Foresight)>는 이런 미국의 ‘구상’을 폭로한 글을 7월호에 실었다.

 설령 엔저를 미국과 일본 두 나라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해도 앞으로 상당 기간 엔화가 강세로 돌아설 공산은 매우 희박하다. 일본 경제가 세계 금융 시장에서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엔화 환율이 1백55엔대를 넘어갔을 때 미국이 시장 개입에 나설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만약 이 때 미국이 엔화 추락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중국은 위안화 절하를 단행하리라고 시장은 보고 있다. 주룽지 중국 총리는 지난 6월 미국 재무부 고위 관리에게 ‘미국 정부가 엔저를 막지 않으면서 중국한테 위안화를 절하하지 말라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못박았다.

 이미 중국 지도부가 그동안의 발언을 뒤엎을 명분 쌓기에 들어갔다는 관측도 나돈다. 중국 문제 전문가인 미국 조지타운 대학 엘리웃 국제문제대학원의 해리 하딩 교수는 8월 13일 홍콩에서 강연하면서 ‘중국은 엔화가 달러당 1백50-1백60 엔대로 떨어질 경우 위안화를 평가 절하할 것’이라면서, 베이징 당국은 이미 ‘엔화 하락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일본에 책임을 전가하는 정치적 논리를 개발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미 · 중 · 일 협조 체제 구축만이 살길
 미 · 중 · 일 세 나라의 전략적 협조 체제가 어떤 이유에서든 깨져 중국 정부가 위안화 절하라는 악수(惡手)를 둔다면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절하 폭이 얼마나 될 것인가가 변수이지만, 즉시 한국과 동남아 나라들의 통화가 다시 폭락할 것이다. 동남아 국가들은 워낙 얽히고 설켜, 이른바 경제 연관도가 높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절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 경우 아시아에서 외국 자본이 썰물처럼 빠지면서 주가 폭락 등 금융 위기가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될 것이다. 이른바 제2의 아시아 경제 위기가 도래하는 것이다.

 미국 신용 평가 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산하 경제 예측 기관인 DRI가 7월 중순 내 놓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자. ‘엔화가 달러당 2백엔까지 폭락한다. 이에 따라 중국 위안화와 홍콩 달러가 40% 가까이 절하되면서 아시아 각국의 통화들도 동반 추락한다. 자금이 고갈된 국제통화 기금은 이를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일본의 올해 성장률은 마이너스 10%를 기록하고 중국은 1%에 그친다. 인도네시아가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지고, 거덜난 러시아는 물론 브라질같은 개도국과 중동 산유국들도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하지만 선진국들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지 않다.’

 DRI가 보는 것처럼 도쿄와 베이징이 초래할 아시아 위기가 구미 선진국을 살짝 스쳐 지나갈 것인가. 그러나 이미 1차 아시아 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2차 위기가 온다면 그 피해는 1차와 비교할 수 없으리라는 점에서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연합도 위기의 도미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 결과는 세계 대공황이라는 재앙이다.

 세계 대공황의 뇌관은 중국이 쥐고 있다. 그 중국을 자극하는 것은 일본이다. 일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미국이다. 세 나라는 협조(위기 해소)와 갈등(위기 재연)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겉과 속이 다른 세 나라가 최종 조율에 실패할 경우 공멸하리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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