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난기류에 고공 비행 주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8.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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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세계 경제

 지난 8월4일 미국 주식 시장이 곰(약세 시장)의 습격을 받았다. 다우존스 공업 평균 지수가 하루만에 299.5 포인트나 폭락한 것이다. 지난 7월 17일 미국 주가 지수는 사상 최고치인 9,338에 이르렀다. 연평균 주식 시장 수익률도 25-30%나 되었다. 과거 주식 시장 연평균 수익률이 8%였음을 감안하면 과열된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가 주가가 폭락하자 거품 경제를 우려하던 경제 관측통들은 ‘올 것이 왔구나’라며 미국 경제가 활황세를 멈추고 경기 연착률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는 91년 이후 7년 동안 성장률이 3%를 넘는 고공 비행을 계속했다. 80년대 진행된 구조 조정 작업을 통해 미국 기업들은 비용을 큰 폭으로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 이윤이 크게 늘었다. 실업률은 4.3%로 완전 고용 수준을 유지했고, 임금도 올랐다.

 개인 소득이 늘자 소비자 씀씀이도 커졌다. 소비 지출이 늘면서 내수 시장이 활황세를 보였다. 올해 1/4분기 경제 성장률은 5.5%를 기록해 웬만한 개발 도상국의 성장세를 압도했다. 그럼에도 인플레가 오기는커녕 1/4분기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4%에 불과해 6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경제 기초가 탄탄하다 보니 주식 시장에서는 수소(강세 시장)가 힘을 얻었다. 미국인들은 은행에서 돈을 빼서 주식 시장에 투자했고, 아시아 경제 위기 이후 아사아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대거 미국 주식 시장에 쏟아져 들어갔다. 세계적인 경기 예측 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산하 DRI(Data Resources Incorporated)의 나리먼 베라베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넷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가 호황을 구가하는 것은 지난 10년 동안 진행된 구조 조정 덕분도 있지만 재정 수지를 흑자로 반전시키고 인플레이션을 막는 통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활황이 지속되다 보니 소비와 투자가 기초 경제 여건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치달아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업 수익률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미 자동차노동조합(UAW)이 7월 제너럴 모터스 북미 공장 두 곳에서 파업을 벌여 자동차 생산량이 24만2천대 이상 줄었다. 미국 경제 예측 기관들은 이 파업으로 친한 생산 차질이 미국의 경제 성장률 0.3%-0.5% 포인트 떨어뜨릴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고성장을 구가하던 미국 경제 성장률이 2/4분기에 1.4%까지 뚝 떨어졌다. 실물 경제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주식 투자자들은 앞을 아투어 보유 주식을 내다 팔기 시작했다.
 
“미국 경제, 침체에 접어들 확률 25-30%”
 일부 사람들은 미국 경제 흐름을 반전시킨 원인을 아시아쪽에서 찾았다. 아시아 경제 독감이 미국 해안에 상륙했다는 것이다. 사실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지역은 미국 동남부이고, 아시아와 무역 거래가 많은 서부 지역 경기는 형편없다. 서부 지역의 경우 올해 1/4분기 아시아에 대한 수출이 지난해 말보다 10% 줄어든 반면 수입은 5%나 늘었다.

 아시아 위기가 세계 경제를 침체에 빠트린다는 이론을 주도하는 집단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DRI이다. DRI는 지난 7월29일 발간한 <일본과 아시아에서 일어날 최악의 시나리오가 가지는 의미에 관한 특별 보고서>에서 ‘아시아 경제가 앞으로 몇 달 동안 악화해 30년대 대공황같이 세게 경제를 침체시킬 가능성이 25%정도 있다’고 전망했다.

 물론 이같은 비관적 전망은 경제 흐름이 최악으로 치달았을 때를 전제로 한 결론이다. 이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나리먼 베라베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 경제 위기가 세계적 불황을 일으키지는 않을 듯하다. 미국과 유럽 경제가 여전히 강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시아 경제 위기가 북미와 남미에 파급되고 미국에서 인플레이션과 주가 대폭락 같은 사태가 일어나면 미국과 세계 경제는 갑자기 성장을 멈출 수 있다.”라고 말했다. 베라베시는, 미국 경제가 침체로 돌아설 확률은 25-30%라고 전망했다.

 DRI 못지않게 세계적인 경기 예측 기관인 와튼 계량경제연구소(WEFA)도 아시아 경제 위기가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을 0.3-0.5% 포인트 깎아내리리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아시아 경제 위기 여파가 미국과 세계 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와튼 계량경제연구소 바크먼 대니얼 글로벌 컨설팅 디렉터는 <시사저널>과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최근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북미 경제는 여전히 강세이고 서유럽은 잠재 성장률 이상 성장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2.0-2.5% 성장세를 유지하리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와튼 계량연구소 내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실질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3.85%에서 올해 3.4%로 다소 떨어진다. 제너럴 모터스 파업과 아시아 경제 위기가 불안 요인이고, 높은 소비 지출과 투자 성향이 강세 요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 두가지 요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세력 균형에 주목하고 있다. 불균형이 뚜렷하게 나타나면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이자율을 조정해 다시 균형을 잡으며 미국 경제의 연착륙을 유도하려 할 것이다.

 미국 경기는 결국 아시아 경제 위기가 키운 곰과 미국 소비 지출과 투자 강세를 반영한 수소가 치열하게 벌이는 싸움 결과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전세계 투자자들은 그 판세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미국 주가 대폭락은 아시아산 곰이 승기를 잡은 것이 아니냐는 다소 성급한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승부를 가리려면 좀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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