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적 만난 ‘MS 제국’ 항복이냐, 항전이냐
  • 워싱턴. 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1999.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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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사 ‘독점’ 판결... 최악 땐 분할의 길로

금세기에 가장 큰 황금 알을 낳으며 오너인 빌 게이츠를 세계 최고 갑부로 만든 마이크로소프트(MS). 이른바 ‘윈도’라는 독특한 운용 체제를 무기로 전 세계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며 초고속 성장가도를 달려온 이 회사의 앞길에 빨간 불이 켜졌다. 미국 연방 법원이 지난 11월 5일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며 사실상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연방 법원토머스 펜필드 잭슨 판사는 이 날 2백 7쪽에 걸친 판결문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인용 컴퓨터 운영 체제를 독점하고 있으며,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행사해 경쟁을 억제하고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판시했다. 비록 예비 판결이지만, 법원이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제소한 연방 정부의 손을 들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독점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법원으로부터 독점 판정을 받으면, 피고 회사는 분할 · 해체라는 극단적인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잭슨 판사의 최종 판결은 내년 2월로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Pql 판결이 최종 판결의 법률적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단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판결에 대해 지난 18개월간 소송을 주도해 온 법무부 조엘 클라인 독점금지담당 차관보가 쾌재를 부른 것도 그 때문이다. 법무부는 94년에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소프트웨어 업체인 인투이트 사를 인수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이를 독점금지법에 의거해 저지했다. 싸움의 양상은 다르지만, 94년이 전초전이었다면 이번은 본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법원, 경쟁사에 대한 회유 · 압력 사례로 들어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잭슨 판사의 결정에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빌 게이츠 회장이 지난 11월 10일 주주총회에 모인 3천여 주주 앞에서 정부와 막판에 타결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강경한 입장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주장은 이렇다. 우선 마이크로소프트사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업계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했으면 했지 경쟁을 저해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또 경쟁 업체를 협박하거나 인수해 시장에서 퇴출시켰다는 정부 측 주장에 대해서도, 이는 어디R지나 통상적인 기업 행위로 보아야 한다고 항변한다. 또 문제가 된 윈도 운영 체제는 시장에서 독점력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도전에 직면해 어느 순간에 경쟁에서 떨어질지 모른다는 것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리눅스와 애플 같은 경쟁사를 예로 들었다.

그러나 잭슨 판사는 이번 판결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독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경쟁사에 가한 갖가지 회유와 압력 사례를 들었다. 한 예로 이 회사는 웹브라우저 경쟁사인 넷스케이프를 따돌리기 위해 자사 운영 체제인 윈도에 자체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넣었다. 또 소프트웨어 쪽을 기웃거리던 인텔사를 협박해 아예 소프트웨어 시장에 발을 못 붙이게 했다. 여기에 더해 선 마이크로시스템 사가 개발한 자바 프로그램 언어가 윈도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이를 채용한 IBM · 컴팩 · 애플사의 시장 기반을 위협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경쟁사라고 거론한 리눅스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 점유율이 3%에 머무는 반면, 윈도의 시장 점유율은 90%를 웃돈다. 잭슨 판사가 마이크로소프트사이 주장을 외면한 것도 바로 이 같은 구체적 사례가 나왔기 때문이다. 독점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독점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었다.

‘독점’에 대한 경제학적 정의는, 어느 특정 회사가 가장 근접한 대체품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특정 상품을 단독으로 파는 행위다. 그러나 독점의 더 본질적인 원인은 독점에 따른 다른 경쟁사의 ‘시장 진입’ 장벽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경쟁업체들이 그토록 아우성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시장 진입ㅇㄹ 가로막는 원천적 장벽 때문이다.

75년 빌 게이츠가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현재 자산 가치만 5천억 달러를 호가하는 세계 최고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체이다. 미국인 종업원 1만8천3백 명을 포함해 전 세계 60개국에 종업원 2만7천명을 거느리고 있고, 지난해 매출액 1백97억 달러에 당기 순익을 78억 달러 내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86년 주식 시장에서 상장될 때만 해도 주당 몇 달러이던 주식이 지금은 90 달러대를 오르락내리락한다. 데이터퀘스트 사에 따르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윈도 운영 체제의 시장 점유율은 97년 94.5%였고, 2001년께에는 무려 96.7%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잭슨 판사가 판결한 대로,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시장을 독점해 경쟁사의 진입을 막았다면 이른바 ‘셔먼법’을 널리 알려진 독점금지법의 제재를 피할 길이 없게 된다.

1890년 오하이오 주 공화당 상원의원 존 셔먼이 주도해 만든 독점금지법은 제1항과 2항을 통해 모든 상거래에서 독점 또는 독점 기도 행위를 금하고 있다. 또 1914년에는 연방 정부에 민간회사 소송권을 허용한 클레이턴법이 통과되어 독점금지법이 훨씬 강화되었다. 금세기 초에 세계 최대 정유회사인 스탠더드 오일이, 84년에는 최대 장거리 전화회사인 AT&T가 독점 판정을 받고 여러 소회사로 강제 분할된 것도 이 법 때문이었다. 이번에 연방 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제소한 근거도 이 셔먼법이다. 미국 굴지의 대기업들이 끊임없이 합병·매수의 유혹을 느끼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 법이 있어서이다. 96년 보잉사가 업계 2위인 맥도널 더글러스사를 인수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미국 정부, 4개 제재 안 검토
최종 유죄 판결이 날 경우에 대비해 정부 측이 고려하는 마이크로소프트사 제재 안은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 안은, 독점의 ‘주범’인 윈도 운영 체제 소스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다른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윈도와 호환성을 갖는 운영 체제를 개발할 수 있다. 90년 초  IBM사가 개인용 컴퓨터 운영 체제인 OS/2를 팔려고 했지만 대다수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외면한 적ㅇ 있다. OS/2가 당시 널리 통용되던 윈도와 호환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안은, 마이크로소프트로 하여금 윈도 운영 체제 소스를 경매에 붙여 팔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2~3개 경쟁사로 하여금 경쟁 운용 체제를 똑같이 경매에 붙여 결과적으로 시장에서 윈도와 호환성을 갖도록 하자는 안이다.

세 번째 안은,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소규모 회사로 분할해 그 회사들로 하여금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모든 소프트웨어 제품을 팔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 안은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별도 법인 3개로 나누는 안이다. 즉 A사는 운영 체제만을 관리하고, B사는 워드와 엑셀 같은 응용 프로그램을 전담해 취급하고, C사가 인터넷과 관련 사업만을 맡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마지막 안은 각 회사가 여전히 분할하기 이전의 시장 독점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위험이 따른다. 이를 테면 운영 체제를 맡고 있는 회사가 다른 제품을 운영 체제에 끼워 팔 경우 독점에 따른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는 것이다. 사실 법무부가 맨 처음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제소하게 된 원인도 바로 윈도 운영 체제에 인터넷 웹브라우저를 끼워 팔았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 장외 해결책 모색할 가능성
이 가운데 정부가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제재 안은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대한 강제 분할이다. 클라인 법무부 차관보도 11월 5일 “잭슨 판사가 지적한 마이크로소프트사 문제를 철저하고도 적절히 시정하겠다”라고 밝혔다. 소송을 제기한 19개 주 가운데 하나인 뉴욕 주 엘리엇 스피저 검찰총장은 11월 10일 <뉴욕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이제 우리는 뭔가 극적인 치유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와 있으며, 그 핵심은 윈도 운영 체제의 독점을 시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지금까지 정부 측 소송단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인터넷 웹브라우저를 윈도에 끼워 파는 것이 위법이냐 아니냐에 관심을 쏟아 왔다. 그런데 잭슨 판사가 윈도 운영 체제 자체에 독점 혐의를 두자 이를 근거로 마이크로소프트사 자체에 대한 분할 제재 안까지 심각히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정부가 어떤 제재를 가하든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이를 고분고분 받아들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잭슨 판사가 내년 2월 최종 판결에서 독점 혐의를 인정할 경우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즉각 고등법원에 항고할 것이고, 여기서도 패소하면 연방 대법원에 항소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최종 판결은 2002년에야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스탠더드 오일이나 AT&T의 전철을 밟을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연방법원이 사실상 독점이라고 예비 판정을 내렸으므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어떤 식으로든 사업 방식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게이츠 회장이 최종 판결이 나오기 앞서 정부 측 소송단의 요구 사항을 상당 부분 수용해 법정 밖에서 ‘장외 해결’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어떤 길을 택하든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이번 판결의 후유증으로 상당 기간 타격을 입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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