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성교육, 이제 그만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9.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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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소년, 섹스 행위 ‘빠삭’, 성 지식은 캄캄 … 10대 낙태, 전체의 25% 추정

“성관계 직후 여자 아랫배를 세게 누르면 정액이 흘러 나와요. 이 방법으로 아직까지 한번도 여자 친구를 임신시키지 않았어요.”(남자 중학생).

‘성(性)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빠삭한데 구체적인 성지식에는 무지한 아이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은 10대 청소년을 이렇게 평가한다. 상담소에 따르면, 청소년 가운데 59.6%는 성교육에 대해 이미 다 아는 뻔한 얘기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이는 ‘행위 위주의 성’에 대한 지식일 따름이다.

성교육을 받는 도중 학생들이 써낸 ‘쪽지 질문’은 청소년의 성 지식 수준을 분명하게 드러낸다(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 ‘임신했을 때 바늘로 배를 찌르면 터지나요?’ ‘섹스 도중 여자 자궁에 오줌을 싸게 되면 어떡해요?’(이상 남녀 공학 중학교). ‘여자 친구와 성관계를 가졌는데 처녀막은 터지지 않고 정액만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임신이 되나요?’(실업계 고교).

성에 대한 무지는 결국 빗나간 호기심을 부추긴다. 원조 교제를 하거나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10대 소녀 대부분이 호기심 때문에 첫 관계를 가졌다고 대답한 대목은 눈여겨 볼만하다. 낙태반대운동연합에 따르면, 호기심 또는 성욕 때문에 첫 관계를 가졌다는 여성이 17.7%에 이른다(남성은 40.8%).

빗나간 호기심은 사회적 일탈을 부른다. 대표적인예가 낙태이다. 한 대학 연구소는 1년 평균 낙태 건수가 1백50만 건이 넘으며 이중 36만 건이 10대 청소년의 낙태로 추산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물론 신뢰할 만한 낙태 자료가 전무하므로 이는 추정치일 뿐이다(현재 쓰이는 낙태 자료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년에 한 번꼴로 실시하는 기혼 여성 출산력 자료에 기반을 둔 것이다).

교사들 “상세한 교육, 성경험 조장할까 봐…”
그런데도 10대의 낙태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대해서는 사회 각계가 의견을 같이한다. 10대 낙태가 성인 낙태보다 건강을 해칠 우려가 훨씬 높다는 것이 산부인과 전문의 박금자 원장(박금자산부인과)의 지적이다. 지방 세포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마취 자체가 위험한데다, 미성숙한 자궁경관을 억지로 벌리는 과정에서 열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더욱이 10대 임산부는 임신 중기가 되어서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생리가 불규칙한데다, 임신 사실을 알아도 병원 가기를 차일피일 미루기 때문이다. 더욱 위험한 것은 합병증이라고 박원장은 말한다. 임신 중절 t술을 받은 여성은 1주일 가까이 후속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학교 눈치를 보느라 후속 치료를 소홀히 한 10대들은 2차 불임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탈을 막을 방법은 무엇인가.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신순철 홍보과장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성에 대한 청소년의 기본 욕망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21세기를 앞두고 ‘청소년기에도 충분히 성을 즐길 수 있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도 있다’는 방향으로 사고를 바꾸어 갈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근거는 역사적인 상대성이다. 백 년 전만 해도 10대 결혼은 보편적이었던 것이다.

청소년의 성욕을 인정한다면 ‘우아한 성 · 아름다운 성’ 따위 추상적인 성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더 구체적으로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부설 성문화연구소 서정애 연구원은 지적한다. 대표적인 예가 피임 교육이다. 연구소가 보급하는 중고등 학생용 성교육 교재에는 피임의 원리와 구체적인 피임 방법을 소개한 단원이 들어 있다. 이 단원에는 콘돔과 페미돔 사용법이 그림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중학생에게 구체적으로 피임을 가르치기에는 갈등이 크다는 것이 ㄷ중학교 양호 교사의 말이다. 지나치게 사세한 교육이 성경험을 조장한다는 오해를 부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학교 양호 교사는 평소 품행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만 양호실로 따로 불러 피임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 실패율 높은 피임법 ‘애용’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학교 박에서 보고 들은 지식으로 피임을 시도한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상담위원으로 참여하는 인터넷 홈페이지 ‘피임 연구회’(www.piim.or.kr)에는 하루 평균 10여 개씩 질문이 올라온다. 흥미 있는 것은, 질문 가운데 80%가 ‘여자 친구 배란 주기가 31일인데, 주기 9일째 성관계를 가졌다. 그래도 임신이 되는가’처럼 배란 주기 피임법을 묻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피임 연구회 소속 의사들은 성관계를 갖는 청소년 상당수가, 주기법과 질외 사정법을 혼합한 피임법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렇지만 질외 사정법의 피임 실패율은 40%에 이른다. 실패율이 10%를 넘는 피임은 피임이라 하기 어렵다는 것이 박금자 원장의 지적이다.

결국 성교육은 저인 교육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봉림중 이혜란 교사의 말이다. 성교육 교과는 생물학적 · 해부학적 지식보다 ‘내 삶을 총체적으로 설계하기 위해 성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교육은 정규 교과 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성교육은 체육시간이 빌 때, 또는 수능 시험이 끝난 뒤 실시하는 자투리 교육일 따름이다. 10대의 성을 사고파는 성인을 엄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10대 매매춘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삶을 설계하는 성교육 또한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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