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대화합의 지도력 발휘하라”
  • 김종민 기자 ()
  • 승인 1999.12.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인터뷰 / “소선거구제 - 정당명부제 합의한 적 없다”

국회가 정상화하기는 했지만 여야 관계가 말끔하게 풀리지는 않았다. 싸움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강경 투쟁으로만 치닫기는 부담스러운 것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고민이다. 그는 과연 야당 총재로서 어떤 정치력을 발휘할까. 이 총재는 여야 갈등의 한가운데 서 있는 정형근 의원을 적극 보호하는 한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대통령과 여당이 먼저 대화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여야의 핵심 쟁점은 선거구제이다. 타협안으로 ‘소선거구제 - 정당명부제’ 안이 얘기되고 있는데….
일부에서 여야 총무 사이에 ‘소선거구제 - 정당명부제’ 안이 합의되었다고 얘기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어떠한 이면 합의도 없다. 한나라당은 권역별 1인 2투표제에 의한 정당명부제 안에 분명하게 반대한다.

여당이 크로스보팅을 제의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크로스보팅은 당론이 없을 때 채택할 수 있는 방식이다. 우리 당은 당론이 분명하므로 선거 제도 문제는 크로스보팅을 할 사안이 아니다.

여당은 중선거구제와 지역별 정당명부제가 돈 선거와 지역 정치 구도를 극복할 개혁안이라고 주장한다.
중선거구제와 정당명부제는 지역구도 극복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지역마다 몰표 현상을 부추길 것이다. 또한 중선거구제에서 더 넓어진 선거구를 감당하려면 당연히 선거 비용이 더 많이 든다.

그렇다면 고비용 정치 구조와 지역 구도를 극복할 수 있는 한나라당의 대안은 무엇인가?
한나라당의 확고한 입장은 소선거구제다. 고비용 정치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치 방식 · 선거 방식 · 정치 자금 조달과 배분 방식을 종합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최근 새로운 협상안으로 도시 지역은 중선거구제, 농촌 지역은 소선거구제로 하는 복합 선거구제안이 거론되고 있는데….
대단히 정략적인 발상이다. 전혀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본다.

선거구제 문제가 정치개혁특위 선에서 합의되지 못하면 영수회담을 통해 풀 용의는 없는가?
우리 당은 기본적으로 영수 호담을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시점 · 방식 · 의제 등이다. 또한 반드시 문제를 풀려는 의지와 신의를 지키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일단 협상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총무나 특위 선에서 충실하게 협상해 보고 난 뒤 안 되면(영수 호담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형근 의원이 폭로한 것 가운데 이강래 전 정무수석이 ‘언론 무건’을 작성했다는 주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서경원 전 의원에게 만 달러를 받았다는 발언은 무리였다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강래씨 문제는 정의원 제보자로부터 들은 대로 말한 것이다. 근거 없이 한 얘기가 아니다. 제보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규명해 봐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김대중 대통령 만 달러 수수설의 경우 정의원이 안기부에 있을 때 조사한 내용이 아니다. 검찰로 사건이 넘어가서 밝혀진 것이다. 당시 검찰 수사 결과를 근거로 얘기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되나.
정형근 의원과 관련해서 고문 문제, 사설 정보팀 운영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고문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설 정보팀 운영 문제는 보고받은 바가 없다.

그동안 너무 비판과 반대에 치중해 새롭고 생산적인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양면성이 있다. 우리 당은 야당으로서 여당을 견제하고 압박해야 할 필요가 있고 동시에 수권 정당으로서의 면모도 갖추어 가야 한다. 전자의 경우 상대가 칼을 들이대는데 맨손으로 대응할 수는 없는 것이다. 총풍 · 세풍에 심지어는 야당 총재인 나까지 사법 처리 하겠다고 나오니까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존 투쟁을 해 왔다. 이렇게 된 데는 여당과 대통령의 문제가 크다. 상대방을 밀어붙이거나 힘을 빼서 다루기 좋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치 역정이 험난해서 그렇다는 점은 이해가 가나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다. 21세기를 코앞에 둔 지금은 정말로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

이 총재가 생각하는 21세기 비전, 새로운 정치의 요체는 무엇인가?
먼저 우리 사회는 법치주의의 한 시절ㅇㄹ 꼭 거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래야 선진 사회, 21세기로 갈 수 있다. 여기에 나와 우리 당이 말하는 새로운 정치의 요체가 있고, 나와 우리 당의 존재 의의가 있다. 아울러 개인의 존엄성과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자유와 창의가 보장되는 시장 경제를 확립하고, 깨끗하고 효율적인 정부 실현과 민족 통일 달성이 중요하다.

한때 김대중 대통령에게 기대를 많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김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많이 실망했고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낀다. 그 양반은 박학다식하고 장점이 많은 분이다. 특히 지역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고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러나 그동안 여야 관계에서 나타났듯이 자신의 과거 정치 운영 틀이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걸 벗어나야 큰 정치, 화합의 정치를 할 수 있다.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부정적인 갈등의 사이클에서 벗어나려면 추궁과 단죄가 아니라 기존 관념을 뛰어넘는 대화합이 필요하다.

왜 그것을 못한다고 보는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고 있다. 임기 동안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평가받으면 되는데 그 이상을 생각하는 것 같다. 집권 세력 연장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떤가? 총선을 앞두고 협졸ㄹ 구할 생각은 없는가?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총선이 많이 남아 있어 협력 문제에 대해서는 뭐라고 얘기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 정치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판단할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우리 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는 것으로 철저하게 거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오랜 여야 대치로 국민의 정치 불신이 높아졌다. 여야 관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구상이나 제안은 없는가?
원인이나 방향이나 모두 한 가지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여야 개념을 뛰어넘어야 한다. 매사를 정복하고 대결하고 쫓아내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여야 관계를 포함한 국정 전반에서 국민의 힘을 한 곳으로 모으고 수렴해 대화합하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그 힘을 대통령과 여당이 먼저 보여 주어야 한다. 힘이 있는 곳은 대통령과 여당이다. 만일 그런 방향으로 간다는 확신이 생기면 나와 우리 당은 언제든지 동참할 생각이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