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가 돼버린 악어새
  • 문정우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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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간부들 빠찡꼬 업주와 결탁 배당 혐의… 해결책은 법ㆍ제도 개혁

 경찰이 빠찡꼬 업계의 뒤를 봐주고 뇌물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일정 지분을 배당받고 동업을 해온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빠찡꼬 업계 대부 정덕진씨를 수사하는 서울지검 강력부에 따르면 치안감 한명을 포함한 경찰 간부 10여명이 서울 시내 빠찡꼬 업소 지분을 다른 사람 명의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부산지검 강력부도 전직 경찰 간부 일부가 정씨 등 빠찡꼬 업주들로부터 업소 지분을 배당받아 운영해 온 혐의를 잡고 수사를 진행중이다.

 대부분의 빠찡꼬 업주가 잠적한 상태이고 지분 소유주의 명의도 거의 가명이거나 다른 사람 앞으로 돼 있기 때문에 이번 수사 과정에서 경찰과 빠찡꼬 업계의 ‘추악한 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밝혀질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검찰은 이들 비리 경찰들의 혐의가 드러나는 대로 구속 수감해 일벌백계로 다스릴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몇몇 경찰을 사법처리한다고 해서 경찰과 검은 손간의 고리를 완전히 끊을 수 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재수없는 사람이나 몇명 걸려들고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다.

 서울지검 강력부에 따르면 정덕진씨 형제들이 주물러온 ‘관광호텔 슬롯머신협회’(현 한국슬롯머신협회의 전신)는 지난 86~90년 5년간 경찰 등 관계 기관에 기부금 형식으로 10억여원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 돈을 체육관에 운동기구를 들여놓는 데도 쓰고 전경 회식비로도 썼다.

 “빠찡꼬 추문은 현재 경찰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경찰 간부 중 그들이 낸 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경찰조직 자체의 도덕성이 마비돼 있다. 물론 중간에서 사복을 채운 몇몇 경찰에게 동정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몇 경찰에 대한 처벌만으로 마무리된다면 이 사건은 일선 경찰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서울 지방경찰청 한 고참 형사의 말이다. 그는 이번 기회에 비리와 결탁하기 쉬운 경찰 조직의 내부 모순이 제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얘기하는 경찰 조직 내의 문제란 대략 이런 것이다.

 우선 승진ㆍ전보 등 인사 때 돈을 주고받는 것이 부분적으로 관례화돼 있다는 것이다. 어느 지역 경찰서 어떤 부서는 노른자위라고 소문이 나 있는 형편이라고 그는 개탄한다. 경찰끼리도 민원이 있을 경우에는 봉투를 건네야 해결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는 또 수사 능력보다는 ‘거래처’와의 관계를 원만히 갖고 돈을 잘 끌어오는 사람이 인정받는 풍토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몇몇 경찰 고위 간부는 돈을 잘 끌어와 승승장구하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서울 ㄴ경찰서의한 수사관은 이렇게 말한다.“인원이 충원되면 사람이 와도 비품은 충분히 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고참들이 약점 있는 재력 있는 업주들에게 가서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결국 돈 뜯어다가 작은 도둑이나 다스리라는 얘기가 아닌가.”

 

마피아 닮아가는 조직 폭력배

 검찰은 정덕진씨 사건을 수사하면서 우리나라 조직 폭력배들이 유흥업계를 점점 장악해 미국 마피아와 비슷하게 돼가고 있다고 발표했다. 본래 미국 마피아가 합법적인 기업 조직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금주법 덕분이었다. 금주법이 공표돼 술을 만들고 파는 것이 모두 불법화되자 조직 폭력배들이 유흥가를 장악해 떼돈을 벌게 된 것이다.

 한국유흥업중앙회의 한 간부는 이렇게 말한다.“현재 유흥업 관련 법규는 지키라는 법이 아니다. 룸살롱 1종 유흥업소의 경우는 부가세 10%, 특소세 13.6%, 재산세ㆍ종합소득세 등 합쳐 총 수입 금액의 50% 정도를 세금으로 내도록 돼 있다. 룸살롱 장사가 대개 외상 거래인데 이래 가지고는 장사 못한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세금 포탈해 범법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존 업주들은 대개 전업을 하고 그 자리를 조직들이 메워가고 있는 중이다.”

 이 간부는 합법 업소들이 나날이 줄어들고 조직들이 운영하는 불법 업소만 늘어가고 있는 추세라며 “경찰이나 관련 기관, 세무서 등은 이런 업계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관계 법규를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약점 있는 불법 업소들에게서 단꿀만 빨고 있다”고 분노를 터뜨린다. 현재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인신매매, 미성년자 매춘 등은 대부분 이와 같은 불법 업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카지노 빠찡꼬 등 사행성 업계의 사정도 유흥업계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정덕진씨가 빠찡꼬 업계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일반 업주는 도저히 현행법을 지켜가며 장사를 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복표 발행, 현상, 기타 사행행위 단속법에 따르면 1백원짜리 동전을 넣고 행운이 터졌을 때 받을 수 있는 최고 한도액은 10만원이다. 또 1백원을 반복해서 넣었을 때 평균 82원(승률 82%)은 되찾을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을 지키면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10만원 벌자고 빠찡꼬장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빠찡꼬라 불리는 슬롯 머신 1대 가격은 대략 4백만원선. 40대 정도 설치하는 데 1억 6천만원 정도 든다. 기계는 보통 3년에 한번씩 새 기종으로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그 때마다 거액을 투자해야 한다. 기계가 고장나는 데 대비해 전문 기사도 대기시켜야 한다. 기사 월급은 대개 2백만원이 넘는다. 자선 사업을 할 생각이면 모를까 법대로 장사하기는 어렵다.

 반면 법을 어기면 떼돈을 벌 수가 잇다. 상한선을 높여 사람을 모으고 승률을 조작하면 땅 짚고 헤엄치기이다. 현금 장사이기 때문에 자금 압박을 받을 염려도 없다. 따라서 일반 업주들은 손을 들고 폭력배만 꼬이게 마련이다. 이들 어깨들이 장악한 업소 중에는 법을 지키는 곳이 단 한군데도 없다. 기계 한두대만 빼놓고는 대부분 승률을 조작하며 상한가도 4백만~5백만원, 심하면 1천만원까지 끌어올려 놓기도 한다.

 

“법 개정 위해 수십억 뿌렸다”

 빠찡꼬 업계의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현행법은 폭력 조직을 양성하고 경찰을 썩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법이 그렇게 돼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역대 정치 권력이 경찰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법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분명하다”라고 주장한다.

 그같은 의혹을 사게도 생긴 것이 빠찡꼬업에 관한 한 모든 것을 경찰이 관장하도록 법이 보장하고 있다. 경찰의 전횡을 감시할 만한 제도적 장치 하나 없다. 인허가 업무에서 사후 관리, 그리고 허가기간 갱신까지 모두가 경찰의 몫이다. 한마디로 빠찡꼬 업주들의 생사여탈권을 경찰이 틀어쥐고 있는 것이다. 업주들이 아예 경찰 몫으로 지분을 떼어주고 있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빠찡꼬의 승률 조작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 당시는 고객이 그림이 멈춰서는 자리를 선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즉 대각선인, 혹은 지그재그로 맞아도 그것을 고객이 선택했으면 돈을 탈 수 있었다는 얘기이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들어와 몇차례 법이 개정되면서 일자로만 맞아야 돈을 주는 것으로 고정이 돼버렸다. 당시 빠찡꼬 업계에서는 “업주들이 법 개정을 위해 경찰 관계자들에게 수십억원을 뿌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빠찡꼬 업계는 법이 개정된 뒤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80년대 중반부터 한국슬롯머신중앙협의회가 경찰청에 기부금 공세를 편 것은 다 까닭이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유흥업소나 빠찡꼬 등 사행성업소와 경찰의 유착은 몇몇 ‘눈에 띄게 해먹은’ 경찰만 처벌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법과 제도와 경찰청 조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각 분야에서 진행되는 사정이 다 그렇지만 경찰과 폭력 조직의 유착을 끊는 일은 법과 제도의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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