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 · 자금유출로 몸살 앓는 홍콩
  • 홍콩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89.12.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7년 중국에 주권 반환 앞두고 “장래 불안하다” 해외이주 줄이어

홍콩의 外交街인 ‘센트럴 홍콩’에 가보면 주요 외국대표부 건물 앞마다 이른 아침부터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는 풍경을 보게 된다. 요즘엔 코넛路에 있는 駐홍콩 캐나다 대표부 앞이 유난히 법석댄다. 다른나라 영주권을 얻어 ‘홍콩탈출’ 대열에 끼어들려는 홍콩인들의 안쓰런 모습이다.

1997년 홍콩 주권의 중국 반환을 향해 시계바늘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지 벌써 몇년이 지나갔지만, 지난 6월 北京사태 이후 홍콩의 장래와 자신들의 신변안전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홍콩인들에게는 그 초침이 더욱 발리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중국의 개혁바람이 天安門사태로 숨죽이기 시작하고, 보수강경파들이 득세한 중국정부가 이념을 위해서는 홍콩의 자그마한 자본주의체제 하나쯤 단숨에 희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이곳 홍콩인들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홍콩의 두뇌 유출은 그 불안감이 구체화된 모습이다. 홍콩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에 절정을 이룬 해외이주자수는 4만8천5백명. 올해 다소 숫자가 줄어 4만2천명선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지만 내년부터 오는 1997년까지는 매년 줄잡아 5만명 수준을 웃돌 것으로 예측된다. 홍콩의 주권 반환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던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해외이주자가 年 2만명 정도 수준이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곱절이나 늘어난 셈이다. 특히 이미 해외로 이주했거나 또는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들 가운데 4분의 1 정도를 사업가나 중견관리 계측이 차지하고 있어 심각한 경영문제로 등장했다. 홍콩의 3대은행 중 하나인 스탠더드 차터드의 경우 중견관리 1백5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제3국에 영주권 신청을 해놓고 있다고 한다.

 

본토어 수강 열풍

이곳 전문가들은 해외이주 문제를 놓고 홍콩사회를 3개 계층으로 구분한다. 첫째, 부유한 상위 계층. 이들은 돈과 기술을 밑천으로 언제든지 외국으로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둘째, 돈도 연고도 그리고 기술도 없어 해외에 나갈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나 이들은 최근에 중국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어서 사회주의체제의 삶에 비교적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는 ‘강점’을 갖고 있는 계층이라고 한다. 셋째로, 가장 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계층이 바로 중산층. 정부 행정관리나, 기업의 중추세력, 고급기술자들을 이루고 있는 이들은 오늘의 번영을 이룩한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해외이주를 할 경우 지금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사회적 위치를 모두 버리고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현실적인 딜레머에 부딪치고 있다. 그들이 누구보다도 홍콩의 장래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구체적인 미래의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홍콩의 장래는 점쟁이가 수정 점을 들여다 보는 것만큼이나 불확실하다.” 홍콩 정청 新聞處의 책임자인 마크 핑크스톤씨의 말이다. 그는 최근 인력유출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해외에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확보한 홍콩인들이 다시 이 땅에 돌아와 이전같이 홍콩의 발전에 한몫을 계속 맡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희망이고 한편 그럴 가능성도 매우 크다”라고 전망했다.

이미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중국의 홍콩 통치시대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한 흐름이 되어버린 이상, 사실 홍콩인들에게는 그대로 눌러앉아 새 주인을 맞아 사느냐 아니면 과감히 떨쳐버리고 자본주의 세계에서의 새로운 삶을 찾아 식구들과 뿔뿔이 흩어져 떠나느냐는 두가지 선택의 길밖에 없다. 첫번째 선택의 모습은 廣東語를 사용하는 홍콩인들 사이에 최근 본토어(만다린) 수강 열풍이 불고 있는 현상에서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정치 · 사회 문제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관심이 높다. 최근, 천안문사태 이후 퍼부었던 중국정부에 대한 맹렬한 비난을 자제하자는 주장이 폭넓게 호응받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홍콩의 지속적인 자본주의체제 보장을 위해 보다 완벽한 민주주의 정착을 주장하며 중국의 직접적인 지배를 맹렬히 반대하는 도 하나의 기류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현질적으로는 설득력이 약한 실정이다.

얼마전 홍콩의 한 신문에 캐나다 이주를 몇달 앞둔 한 예술가가 기고한 편지는 홍콩 현지인들의 처절한 심정을 잘 전해주고 있다. “지난 6월 일어난 사건과 1997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창창한 나의 장래를 생각할 때 주저할 이유가 없다. 내 친구 가운데 70%는 이민 준비를 하는데 그들도 처음에는 1997년 이후에도 홍콩이 안전한 지역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천안문사태를 지켜보고는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꾸어버렸다. 태어날 때부터 국가의식을 갖지 못한 채 살아왔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줄 조국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중국은 분명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영국의 미온적 태도에 배신감 느껴

1차 아편 전쟁(1840~42년) 결과, 홍콩은 南京조약에 따라 영국에 함양되었고, 1860년 北京조약(2차 아편전쟁)으로 구룡반도가 영국령이 되었다. 그뒤 1898년 영국은 淸國과, 구룡반도 나머지 부분과 인근 도서, 부근 해역을 1997년까지 조차하는 이른바 ‘홍콩 영토 확장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1982년 대처 영국총리가 訪中, 홍콩의 미래에 관한 중 · 영 교섭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1984년 대처 총리와 趙紫陽 당시 중국총리는 1997년 6월가지 홍콩 전역을 중국에 반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합의문서에 정식 조인했다. 그 선언에는 △홍콩은 특별행정구로서 외교 · 국방 이외 고도의 자치권을 갖는다 △언론 · 출판 · 집회 등의 제반 권리를 보장하고 △자유항 · 금융센터로서의 지위를 유지한다는 내용과 함께 97년 반환 이후 50년간 자본주의체제의 유지를 명시했다. 그렇긴 하지만 이 합의 내용을 보장하는 후속조치를 마련하는 데 영국이 매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홍콩인들은 강한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현재 홍콩인의 영국거주권 취득을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혜택을 누릴 사람은 10만명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홍콩인구 5백60만 가운데 98%를 차지하고있는 중국인들은 거의 1세기 동안 싫든 좋든 식민지 지배하에서 자본주의와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를 누려왔다.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그들의 막연한 불안감과 신변위협은 北京사태를 보면서 불에다 기름붓는 듯 폭발적으로 커졌다. 北京당국은 홍콩의 통치권을 다시 회복한 뒤에도 적어도 50년간은 ‘1국가 2체제’를 유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천혜의 자유무역항, 아시아에서 굳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잇는 국제적 금융시장 등 기존의 강점을 충분히 이용해 자본과 기술을 흡수하는 전초기지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공동성명 이후 분명해진 중국측의 입장이다.

홍콩은 지난 20년간 줄곧 9% 정도의 고도성장을 보이는 등 놀랄만한 경제활력을 보여왔다. 시가총액규모에서 볼 때 아시아에서 일본, 대만 다음의 3대 주식시장, 세계 4대 금시장이란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홍콩과 중국의 관계는 대만과의 경우와는 아주 다르다. 대만이 투철한 반공을 이념으로 미국을 포함한 서방진영과 손잡고 40년간 중국을 등진 채 살아왔지만,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라는 이중적인 구조하에서도 지정학적으로나, 밀접한 혈연, 사업관계로 본토와 함께 숨을 쉬어왔다.

중국과의 경제관계는 70년대 말 중국이 개방정책을 펴기 전까지는 별 게 아니었다. 78년도 홍콩의 對중국 수출은 1천만달러로 전체 수출의 0.2%에 불과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수출액은 48억달러, 전체 수출액의 17%을 차지해 중국이 미국 다음으로 큰 수출상대국이 된 것이다. 수입은 전체의 31%를 중국이 차지, 최대 수입시장으로 탈바꿈했다. 뿐만 아니라 廣東省을 중심으로 중국 남해안 일대에 대하여 활발히 진행됐던 홍콩의 對본토 투자붐은 2백만명 이상의 중국인 노동력을 흡수하고 있다.

 

외국인투자는 오히려 늘어

자본이탈도 상당수준 진행되고 있다. “자본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금유입과 유출이 진행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자금유출이 심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라고 핑크스톤 처장은 설명했다. 그러나 사람가는 데는 돈이 따르기 마련, 현지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자금유출은 홍콩의 국제수지를 크게 움직일만큼 커져, 작년 한해만도 홍콩인들이 이민대상국으로 가장 선호하는 캐나다로 흘러들어간 돈이 무려 30억달러, 호주에도 5억달러 수준의 돈이 들어갔다.

최근 홍콩인들의 해외이주와 자금유출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을 선두로 한 일본, 중국의 對홍콩 직접투자는 50년간의 장래와 대륙 진출의 최적지라는 조건을 보고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연간 국민소득 1만달러로 아시아권에서 최상위 소득수준을 누리며 1세기 가가이 식민지 통치에 안주해왔던 홍콩인들은 영국 통치에서 벗어나 조국의 품에 안기려는 순간에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하는 아이러니의 역사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결국 홍콩의 미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접목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인지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적인 실험이라 하겠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슨트>의 陳주간은 매우 시사적인 말을 기자에게 던졌다.

“한국전쟁 중 미국이 중국에 대한 금수조치를 내려 홍콩경제가 파국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 당시 총독이었던 그랜탐이 한 말이 있다.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라. 그러나 최선에의 희망은 버리지 마라.’ 이 말은 40년이 지난 지금의 홍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