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절도범 결코 멋있지 않다
  • 표정훈 (출판 평론가) ()
  • 승인 2006.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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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책] <도둑맞은 베르메르:누가 명화를 훔치는가>

 
 미술품 절도를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연간 평균 피해액이 1조원을 넘었고 매년 10%씩 증가하고 있다. 일단 도둑맞으면 본래 주인에게 돌아올 확률은 열에 하나에 불과하다. 미술품 도둑들의 표적 1호는 피카소, 고흐, 베르메르. 특히 고흐와 베르메르의 그림은 크기가 작아 훔치기 편리해 ‘싸가는 베르메르’ ‘싸가는 고흐’라는 표현까지 생겼다.

 1990년 3월17일, 미국 보스턴의 가드너 미술관에 경찰관을 사칭한 두 명의 남자가 경비원을 속이고 들어와 렘브란트, 플링크(렘브란트의 제자), 베르메르, 마네, 드가 등의 작품 10여 점을 훔쳤다. 암시장에 내놓으면 즉시 발각될 작품들만 고른 것 같다. 그래서 범행 동기를 두고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인 악덕 수집가의 사주에 의한 범행이라는 설이 대두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설이 등장한 것에는 1980년대 이후 거품 경제를 등에 업고 일본인들이 유명한 미술품을 경매에서 싹쓸이하다시피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 여기다 일본 민법이 구매자를 보호하는 견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민법에는 동산의 즉시 취득이라는 원칙이 있다. 구매자가 선의의 목적으로 그림을 구입했다면 곧바로 취득이 인정되고, 도난 혹은 유실 시점에서 2년 이내에 피해자가 반환을 청구하면 돌려줘야 하지만, 2년이 지나면 피해자는 돈을 주고 다시 사야 한단다.

소설처럼 읽히는 ‘좀도둑’ 이야기

 
 미술품 절도의 동기로 정치적인 이유도 있다. 1974년 4월, 아일랜드 더블린 교외 러스보로 하우스에서 베르메르, 고야, 벨라스케스, 루벤스 등의 그림 열아홉 점이 도난당했다. 일주일 뒤 협박장이 날아왔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 테러리스트 프라이스 자매와 휴 피니, 제럴드 게리 등을 석방하라는 조건이었다. 탐문 수사 끝에 체포된 범인은 아일랜드공화국군 과격파 브리짓 로즈 더그데일. 그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런던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국제연합(UN)에서 경제 전문가로 일한 엘리트였지만 언제부터인가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고 아일랜드공화국군에 가담했다.

 그런데 1986년 러스보로 하우스가 다시 털렸다. 범인은 아일랜드의 악명 높은 범죄자 마틴 카힐. 카힐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그림을 팔려고 동분서주했다. 아일랜드공화국군는 물론 아일랜드공화국군 조직원 살해를 목적으로 조직된 반대파인 얼스터 의용군(UVF)와도 접촉했다. 1994년 5월21일 아일랜드공화국군 정치 조직인 신페인당의 자금 조달 파티장을 얼스터 의용군이 기습 공격하자 카힐이 공격을 도왔다는 설이 나돌았고, 카힐은 아일랜드공화국군 저격수가 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카힐의 삶은 존 부어맨 감독의 영화 <제너럴>로 만들어졌고 이 영화는 1998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미술품 절도를 다분히 낭만적인 절도로 미화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큰 범죄 조직이 저지른 일이거나 미술품 전문 좀도둑의 짓이 대부분이다. 절도범들은 미술품 보관에는 큰 관심이 없고 팔릴 것만 생각하기 때문에, 훔친 작품이 잘 팔릴 가능성이 없어 보이면 파괴도 서슴지 않는다. 결코 귀족적이지도, 멋있지도 않다는 게 저자의 일침이다. 절도에서 낭만을 찾지 말자니. 그럼에도 이 책이 마치 소설 한 편처럼 흥미롭게 읽히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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