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하다가 '악!' 하는 전립선암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6.09.0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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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 환자 42% “자각 증세 나타난 뒤 알았다”…발견 늦을수록 병세 깊어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기껏해야 위장의 모양이나 심장과 간의 기능 정도가 아닐까. 자의로든 타의로든 병원을 몇 번 다녀본 사람은 조금 다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인체의 많은 ‘비밀’을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전립선도 우리가 잘 모르는 신체 부위 중 한 곳이다. 의사들조차 그 기능과 필요성에 의구심을 가질 정도이다(실제 전립선은 맹장처럼 없어도 아무 문제 없이 살 수 있다).

전립선은 남성에게만 있는 호두알만한 소모성 기관이다. 방광 바로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요도를 도넛 모양으로 감싸고 있다. 양쪽에 위치한 사정관이 요도와 연결되어 있는데, 정액의 3분의 1가량을 생산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립선특이항원(PSA)이라는 단백질도 분비한다. 이 물질은 정액을 묽게 만들어 정자들이 목표물을 향해 더 쉽게 헤엄쳐갈 수 있도록 돕는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그 기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아니, 저하 정도가 아니라 ‘비극’을 부른다. 오줌이 잘 안 나오고, 잔뇨감이 생기고, 암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전립선암이 가장 위험한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무방비 상태가 된다. 남성이 55세에 10만명 가운데 20명이 걸린다면, 70~80세에서는 5백~6백명이 걸린다. 미국에서는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암 발생률과 사망률에서 매년 1, 2위를 다툰다. ‘전립선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곳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느냐’라는 말은 허풍이 아닌 셈이다.

전립선암 환자, 급격하게 늘어나

한국에서는 1999~2001년에 연평균 1천4백25명이 발병해 암 발생률에서 9위에 올랐다. 사망률도 2004년에만 9백20명이 사망해 8위를 기록했다. 증가율은 깜짝 놀랄 만큼 가파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02년 중앙 암 등록 사업 결과’에 따르면, 그해 전립선암 환자는 1995년에 비해 2백11% 급증했다. 갑상선암이 2백46% 늘어났지만 환자 대부분이 여성인 점을 감안하면, 남성 암 중에서 가장 많이 증가한 셈이다.

당연히 비뇨기과 의사들은 긴장했고, 그 원인을 따져보았다. 그 결과 노인 인구의 증가, 진단 기술의 발달, 식습관의 변화가 주요 원인으로 드러났다. 병을 무시하고 방치하는 것도 발병률과 사망률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29일, 천준 교수(고려대 의대·비뇨기과)는 ‘블루 리본 캠페인’의 일환으로 ‘전립선암 환자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조사 대상은 강남성모병원·고려대병원·삼성서울병원 등 19개 종합병원의 전립선암 환자 2백8명이었다).

 
그 내용에 따르면, 8월2~23일 실시한 조사에서 환자의 42%가 정기 검진이 아닌 ‘자각 증상이 나타나 전립선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응답했다. 환자 2백8명 중 87여 명이 병원에 한 번도 안 가본 채 병을 키운 것이다. 문제는 자각 증상으로 병을 알게 되면 그만큼 병기(病期)가 깊어진다는 사실이다. 정기 검진을 꾸준히 받아온 환자의 경우 병세가 약한 1기로 진단받은 사람이 33명인 데 반해, 치명적인 4기로 진단받은 사람은 18명이었다. 그러나 자각 증상을 느낀 뒤 병원에서 전립선암 판정을 받은 환자는 1기가 18명이었고, 4기가 30명이나 되었다. 그만큼 더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증상만으로 전립선암을 발견한 환자들(87명)이 토로한 자각 증상은 여러 가지였다. 60%는 배뇨 장애가, 20%는 혈뇨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빈뇨와 혈(血)정액도 각각 13%와 5%나 되었다(기타 10%). 이처럼 심각한 증세가 나타났는데도 환자의 절반 이상(59%)이 ‘일시적인 증상’으로 여겼다. 다른 질환으로 의심한 환자도 29%나 되었다. 전립선암으로 의심한 환자는 10%뿐이었다.

배뇨 장애 등 증세 나타나도 병원 안 가고 버텨

사정이 이러니 배뇨 장애나 빈뇨 등이 나타나도 병원을 찾았을 리 없다. 87명 가운데 76%가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한약·민간 요법으로 대처한 사람이 있었지만 아홉 명뿐이었다. ‘가만 놓아두면 지나가 버리겠지’하고 버티다가 병원을 찾는 시기는 자각 증세가 나타난 지 평균 9개월이 넘어서였다. 병원 가는 것이 늦으면 늦을수록 병은 더 고질이 된다. 천교수에 따르면, 자각 증상이 나타난 뒤 1개월 만에 병원을 찾은 사람들(30명) 중에서는 1기 진단을 받은 환자가 23%나 되지만, 2개월 뒤에 찾은 사람 중에서 1기 판정을 받은 환자는 4%에 불과했다. 이같은 결과를 근거로 천교수는 “50세 이상의 남성은 배뇨 장애나 혈뇨 등이 나타나면 즉시 직장수지검사 등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립선암은 왜 걸릴까. 지금까지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립선암을 유발하는 가장 큰 세 가지 위험 요소는 나이·인종·가족력이다. “고령이 주요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는 수없이 많다”라고 황태곤 교수(가톨릭 의대·비뇨기과)는 말했다. 한 자료에 따르면, 70대 중·후반의 미국 남성이 40대 남성보다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이 1백30배 정도 더 많다. 발병 확률도 크게 높아서 40~59세 미국 남성이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은 53분의 1인데, 60~79세 남성은 7분의 1이나 된다(<전립선암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연세대 출판부).

인종적으로 보면 전립선암은 흑인에게 가장 많이 나타난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에게는 드물다. 재발 확률·사망 확률에서도 인종적으로 차이가 나타나는데, 역시 흑인·백인 순으로 높다. 그러나 인종이 발병률이나 재발률을 결정 짓는 것은 아니다. 유전이나 식습관, 비타민D 등이 인종 간의 차이를 좁혀놓기도 한다. 예컨대 아시아인이 미국으로 이민 가서 그곳에서 오랫동안 고기를 섭취하면 전립선암 발병률이 백인과 비슷해진다. 같은 아시아권인데도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남성들이 중국 남성들보다 발병률이 다섯 배 정도 더 높은 것도 식습관과 생활 습관 탓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전립선암의 치료율과 생존율이 높다는 점이다. 단, 전제가 있다. 조기 발견이 전제되어야 한다. 과잉 치료 논란이 있지만, 전립선암은 확실히 빨리 발견하고, 신속히 처치하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최근 조기 진단에 널리 사용되는 검사는 혈액 속의 전립선특이항원 수치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이 검사는 안전하고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혈액을 채취해 그 속에 PSA가 1ml당 4나노그램(ng) 이상이 되면 전립선암 발병을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검사법의 효과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전립선암 환자의 20% 정도가 PSA 수치에서 정상 소견을 보이고, PSA 수치가 높은 남성들 가운데 3분의 2가 전립선암을 앓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양성 전립선비대증· 전립선염 환자들도 종종 PSA 수치가 높이 나타난다. 김제종 교수(고려대 의대·비뇨기과)는 “PSA 검사와 직장수지검사(직장에 손가락을 넣어 진단한다)를 병행하면 병의 상태를 더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래도 전립선암에 대해 더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대한비뇨기과학회가 주최하는 ‘제3회 블루 리본 캠페인’을 주목하기 바란다. 9월17일과 9월24일에 각각 부산역 광장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블루 웨이브 페스티벌’을 열고 무료 PSA 검사와 자료 전시회·야외 콘서트 등을 개최한다(행사 문의 02-3444-6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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