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가 몰리는 그날 ‘광명’은 음악이 된다
  • 김작가(대중음악 평론가) ()
  • 승인 2006.09.0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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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2일부터, 선후배 뮤지션 모여 음악밸리 축제 열어

 
누구나 소싯적에는 음악을 사랑했다. 학창 시절 <전영혁의 음악세계>에 흐르던 UFO와 메탈리카의 거친 사운드에 청춘을 불태웠고 영화음악 프로그램을 수놓던 감미로운 선율에 홀로 감상에 젖곤 했던 기억으로 청춘의 괄호는 차곤 했다. 다만 그들에게 빠져 있던 시절, 그들의 음악을 실제로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라디오로도, 음반으로도 뭔가를 채울 수 없었다. 청춘은 그 ‘뭔가’의 정체도 알지 못한 채 지나가버렸다. 급격히 밀어닥친 삶과 현실에 그 열정의 공백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 ‘공연은 애들이나 가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오늘을 산다.

그러나 어떤 문화 산업이든 어른들이 찾으면 대박이 난다. 그만큼 목마른 세대라는 증거다. 하지만 그 목마름을 채우고자 최신 음악이 연주되는 공연장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한국 음악의 트렌드에는 과거와 맥을 잊는 연속성이 없다. 하나의 모래성을 쌓기도 전에 잽싸게 헐어버리고 새로운 모래더미가 올라간다. 이거야 원, 음악을 직업적으로 듣는 사람도 따라가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다. 하물며 페스티벌이라니, 가고 싶어도 아는 게 없고, 젊은 애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에서 옛 기억을 되살리려 애써 찾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싶어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냥 와서 즐기라는 식의 무대가 있을 뿐, 전체 맥락을 보는 흐름을 초심자는 읽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목할 만한 축제가 있다. 광명음악밸리 축제가 그것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음악 페스티벌이 주류 또는 비주류 음악계에서 잘나가는 뮤지션들을 긁어 모아 열리는 ‘떼 공연’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 축제는 그저 요새 누가 행사계에서 잘나가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올해로 두 돌을 맞이하는 광명음악밸리는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영화제에서나 볼 수 있는 부문별 프로그램이 도입된 것이다. 첫 회였던 지난해에는 ‘한국 음악 창작자의 역사’ ‘한국 인디 10년사’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무대에 선 아티스트들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그들이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평가했다. 올해도 대중음악의 가치를 ‘음악 창작’에 맞추는 기조는 이어지는 듯하다. 메인 섹션이라 할 수 있는 ‘밸리 초이스’의 라인업이 그런 사실을 말해준다.

창작력 뛰어난 중견 가수에 주목

 
9월22일 광명시민운동장에서 열리는 밸리 초이스 공연의 주인공들은 장필순, 김창기, 한영애, 그리고 강산에다. 철저하게 ‘유행가’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모두 한물간 가수들일 수 있다. 그러나 광명은 이들의 음악적 가치를 주목한다. 1988년 아마추어리즘의 기치를 쏘아 올리며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새로, 그러나 결코 거창하지 않게 썼던 동물원의 김창기다. 전무후무한 보이스, 그리고 뛰어난 뮤지션들과의 교류 및 좋은 곡을 골라내는 선구안으로 이제 미사리에서나 활동할 동년배의 여가수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하는 한영애다. 아웃사이더 혹은 기인으로서는 거의 마지막으로 주류 음악계에 안착했음에도 한 번도 타협하거나 쇠하지 않고 살아 있는 음악으로 왕성한 창작욕을 불태우는 강산에다.

애호가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2002년 6집 앨범 <Soony 6>로 한국 최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자리 잡은 장필순이다. 이 네 명이 한 무대에 서는 것이다. 자칫 7080의 느낌이 될 수도 있는 라인업이다. 하지만 ‘밸리 초이스’라는 프로그래밍에 의해 발탁됨으로써 이들의 음악은 과거의 반추가 아닌 동시대의 거울로 다시 한번 자리 잡는다. 선배와 후배의 연결 고리를 잇는 작업이 없다는 것이 한국 대중음악이 늘 트렌드에 쫓길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광명은 이런 상황에서 동시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선배들의 음악에 주목한다. 기준은 창작력이다. 국제 영화제들이 잊혀진 한국 영화의 거장들을 재조명함으로써 한국 영화사의 가치를 풍성하게 하듯, 광명은 이런 작업을 해서 한국 대중음악의 씨줄을 찾는다.

 
9월24일 ‘어쿠스틱 웨이브’ 놓치면 후회

밸리 초이스가 역사를 만들어온 뮤지션들의 무대라면, 뉴 웨이브는 역사를 만들어갈 뮤지션들의 판이다. 22일부터 24일까지 꾸준히 열리는 이 섹션은 ‘보도자료용’으로 쓰이고 있는 장르에 대한 집중을 보여준다. 총 5개의 섹션은 각각 인디 록과 헤비 사운드, 흑인 음악과 라운지 팝, 그리고 포크와 어쿠스틱 사운드로 세분된다. 기존의 음악 페스티벌에서 취향에 맞는 음악에 무대 앞으로 뛰쳐나갔다가 그렇지 않은 음악에 뒤로 빠지던 수고를 반복했던 사람이라면 맞춤형 공연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인디 록 섹션인 ‘모던 타임즈’를 위해 뉴욕에서 날아오는 스트레이트 런의 공연을 놓치지 말기를. ‘옛날 록이 좋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음악은 그런 상념을 날려버리기 충분하니까 말이다.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24일의 ‘어쿠스틱 웨이브’를 놓치면 안 된다. 전재덕과 두 번째 달, 그리고 스왈로우.

이 당대의 어쿠스틱 작가들이 펼치는 무대야말로 비단 음악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가족을 이끌고 광명을 찾는 이들에게도 충분한 포만감을 선사할 것이다. 한국의 스티비 원더라 불리는 전재덕, 켈틱 음악의 한국화를 이끌어낸 두 번째 달, 그리고 우리 시대 음유시인으로 평가 받으며 평단의 극찬을 받고 있는 이기용의 프로젝트, 스왈로우는 분명히 ‘들을 음악이 있어야 듣지’라며 MP3 불법 다운을 합리화하는 악플러들의 지갑조차 열 수 있는 음악임에 틀림없다. 그 외에도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현재의 인디 신에서 확실한 장르적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는 신예들이 꾸미는 ‘뉴 커런츠’ 섹션, 광명뮤직밸리의 지원을 받아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음악 & 미디어 콘퍼런스인 SXSW(South By Southwest)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될 서울전자음악단의 공연 등 풍부한 프로그램이 있다.

단순한 공연의 연속이 아닌,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읽히고 트렌드가 보이는 실속 있는 축제다. 9월22일부터 24일까지 도시는 음악이 된다. 가치 있는 음악들이 모이고 즐기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 이 축제에 동참하다 보면 놀면서 알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들을 음악이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만 들리는 음악이 없을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놀라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말로 된 빛나는 음악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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