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도대체 뭐기에
  • 공숙영(퍼슨웹 대표·변호사) ()
  • 승인 2006.09.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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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요즈음 신임 헌법재판소장 임명 사태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헌법재판소는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 올라가는 서울 종로구 재동에 있다. 맞은편에 유서 깊은 재동초등학교가 있고 더 가면 창덕궁이 있는 한적한 북촌 지역이다. 내가 5년을 일한 법률사무소가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출퇴근길이나 산책길에 늘 마주치곤 했던 친숙한 장소다. 헌법재판소 안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 한 그루가 있어 동료들과 종종 백송을 보러 가기도 했다.

이제는 적어도 신문·방송으로 뉴스를 접하는 시민이라면 헌법재판소의 존재와 역할을 모르기 어렵게 되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러니까 현 정부 출범 전만 해도 헌법재판소는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았다. 어느 날 사무실 근처로 놀러온 비(非)법조인 친구와 함께 헌법재판소 건물 앞을 지나는데 친구가 물었다. “저 크고 멋진 건물은 뭐 하는 데야?” 헌법재판소라는 나의 대답에 친구의 반응은 이랬다. “헌법재판소가 도대체 뭘 하는데 저런 건물이 필요해?”

처음 헌법 공부를 시작할 당시 나 역시 헌법재판소가 뭐 하는 데인지 전혀 몰랐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헌법재판소라는 기관은 없었다. 우리 역대 헌법을 보면 1960년 헌법상 헌법재판소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5·16 군사쿠데타 발발로 인해 실제 설치되지는 못 했고, 1987년 민주항쟁 후 현행 헌법 체제가 들어서면서 비로소 헌법재판소라는 헌법재판 기구가 생겼다. 헌법재판소가 생기기 전에도 이름은 다르나 유사한 기능을 가지는 헌법위원회 같은 기관이 있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유명무실했기 때문에 유신 체제나 전두환 정권 때에는 위헌법률심사가 단 한 건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헌법재판소의 의의와 기능에 대해 공부하면서 헌법재판소가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 사건을 담당하는 일 외에 대통령과 법관 등 최고 권력자들에 대한 탄핵 심판을 한다는 점을 배웠지만, 설마 실제로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이 발생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종종 경이롭게도 현실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맞이하면서 헌법재판소는 중천으로 떠오른 태양처럼 그 위상을 확실히 했다. 헌법재판소가 도대체 뭐 하는 데냐고 질문했던 친구는 그제야 아마 그 대답을 분명히 얻었을 것이다.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한·미 FTA 체결’ 위헌 여부 심판 ‘숙제’로 남아

본질적으로 정치적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는 구성에서도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라 대통령과 국회와 대법원장이 각 3인을 지명하여 총 9인의 재판관(헌법재판소장 포함)을 두게 된다. 전효숙 신임 헌법재판소장 내정자가 ‘무리’하게 재판관직을 사직하고 이를 야당이 문제 삼게 된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구성 원칙이 작동하고 있다. 애초에 대법원장이 지명한 재판관이었던 전효숙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으로 내정했다. 그렇다면 신임 헌법재판소장으로서 전효숙은 ‘대법원장의 사람’인가, ‘대통령의 사람’인가? 이에 대통령과 대법원은 전효숙이 아예 재판관직을 사임하고 대법원이 새로 재판관을 지명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합의한 모양이다. 전효숙을 ‘대통령의 사람’으로 하는 걸로 정리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관계 당사자들이 진상을 밝히고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국회와 논의해 조속히 사태를 해결할 일이다. 여야의 정쟁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할 일을 못 해서야 되겠는가. 지금 우리는 이 나라 최고권력기관의 하나인 헌법재판소를 구성하는 문제에서 권력 간에 어떻게 충돌하고 합의하는지, 새로운 국면을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과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심사 등 엄청난 정치적 사건을 다루고서 퇴임한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은 본인의 재임 기간이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이뤄진 시기”라면서 “국회와 행정부가 각각 입법 과정과 공권력 행사시 헌법에 적합한지를 따지게 됐다”라며 자평했다. 최근 여야 국회의원 23명은 한미FTA 체결과 관련해 정부가 헌법이 보장하는 국회의 조약 체결 비준동의권 및 심의권을 침해했다면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현재 미국에서 협상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헌법재판소가 한·미FTA 체결 과정의 위헌 여부를 심판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헌법재판소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새 수장 맞아들이기가 난항 중인 가운데 헌법재판소는 여전히, 아니 더더욱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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