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관계 정상화 왜 ‘2008년’ 제안했나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6.12.1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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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한 친미화→중국 압박’ 전략 일환 올림픽 뒤 중국의 버블 붕괴 등 혼란 겨냥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근본적 전환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제 이론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미국 국무부 힐 차관보가 11월28~29일 베이징 북·미 회담에서 ‘2008년까지 북한 핵 폐기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맞바꾸는 빅딜을 하자’는 취지의 제안을 했다는 외신 보도에서도 정책 전환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이같은 미국의 정책 전환이 어떤 맥락에서 추진되어온 것이며, 또한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정책 전환의 배경과 관련해 많이 언급되는 네오콘의 퇴조와 현실주의 세력의 전면 등장을 어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까. 이들의  ‘바통 타치’는 단순히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했기 때문인가.

부시 행정부 1기와 2기의 정책 전환의 의미를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 레이건 정부 사례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레이건 정권은 1970년대 말 미국 사회에 불어닥친 보수 혁명 결과로써 성립되었다. 대중적 기반이 없던 공화당 우파가 미국 남부에 뿌리를 박은 기독교 원리주의의 ‘친이스라엘 정책 및 종말론적 최후의 전쟁론 그리고 그리스도 재림 사상’을 받아들이며, 민주당 지지 성향을 가졌던 백인 보수층을 끌어들이고 여기에 이스라엘 우익과 네오콘이 정책 기획 능력을 제공하며 이루어진 3자 연합 체제가 바로 레이건 정권이었던 것이다.

옛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고, 악의 세력과의 ‘최후의 전쟁(아마겟돈)’을 위한 대규모 군비확대 노선은 이 3자 연합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고, 그것이  쌍둥이 적자와 중동 정책의 파탄, 이란-콘트라 사건 등 부패 스캔들로 파탄에 직면했던 것도 이미 잘 알려졌다.

1985년 시작된 2기 정권은 1기 정권과 1백80° 다른 방향으로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강경론에서 온건론으로, 단독 패권에서 국제 협조 노선으로의 정책 전환은 현란할 지경이었다. 결국 ‘이익이 된다면 악마와도 손을 잡는다’는 현실주의 노선에 따라, ‘악의 제국’ 소련과 손을 잡아 냉전을 종식하고 핵무기 감축 협상에 합의하는 등, 정권이 끝날 즈음에는 처음 출발 지점과는 정반대쪽에 가 있었던 것이다.

부시 정부의 정책 전환, 레이건 정부 때와 흡사

레이건 2기가 1기의 방향과 정반대로 역주행했던 것을 염두에 두고 최근 부시 행정부의 정책 전환의 성격을 그려보면 그 이미지가 분명해진다. 부시 1기는 9·11을 기화로 워싱턴 중앙 무대에 화려하게 컴백한 네오콘이 다시 이스라엘 우익과 손을 잡고, 체니와 럼스펠드 등 공화당 우익의 후견 및 미국 남부 기독교 우익의 대중적 지원을 바탕으로, 과거 소련에 뒤집어씌웠던 악마의 혐의를 이라크·북한·이란·시리아 등에 돌리고는 ‘종말론적 최후의 전쟁’ 놀음을 해왔다는 점에서 분명 레이건 1기의 부활이라고 할 만하다.

또한 레이건 1기에서는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상징되는 일련의 부패 스캔들이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면, 이라크 전쟁의 실패와 그 추진 과정에서의 비도덕성이 부시 정권에서도 퇴출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실패의 과정조차 유사하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2004년 10월 미국 대선 이후 만약 로버트 게이츠 현 국방장관이 당시 부시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신설되는 국가정보국(DNI) 국장 자리를 받아들이기만 했어도, 그들의 몰락은 매우 앞당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현실주의 그룹의 대표 주자인 콘돌리자 라이스가 2004년 11월 국무장관에 취임해 외교를 틀어잡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와 가까운 현실주의자인 게이츠가 정보국을 장악했다면 부시 2기는 출발하면서 1기와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게이츠가 그 자리를 고사하고 대신 네오콘이 후원한 네그로폰테가 정보국장이 되면서, ‘외교는 현실 주의, 정보는 네오콘’이라는 과도기적 ‘잡탕’ 체제가 한동안 이어져왔다. 돌이켜보면 이런 비정상적 상태를 청산하기 위한 움직임이 중간선거가 있기 훨씬 전인 지난 3, 4월께부터 워싱턴 정가에서 은밀히 시작된 것으로 분석된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현실주의 세력이 손을 잡고, 이를 월스트리트의 금융 자본이 뒷받침하는 ‘역 3자 연합’이 이때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은 중국으로 가기 위한 버스 정류장?

우선 공화당 현실주의의 대부 제임스 베이커가  민주당과 손을 잡고 ‘이라크 스터디그룹(ISG)’이라는 초당파적 팀을 결성한 시점이 바로 지난 3월이었다. 그리고 이것과 거의 같은 시점에 골드만삭스라는 유태계 금융 자본 출신의 인사들이  백악관과 행정부의 요직을 장악하며 네오콘 계열 인사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 선봉에 선 사람이 바로 골드만삭스의 전무 출신으로 올 3월 말에 백악관 비서실장이 된 조슈아 볼턴이다. 그는 비서실장이 되자마자 골드만삭스 회장이었던 헨리 폴슨을 재무장관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과거 ‘악의축’ 연설문 집필자로 유명한 마이클 거슨을 백악관에서 쫒아내는 등 새 피 수혈과 인적 청산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중간선거 다음날 부시 대통령이 전광석화처럼 럼스펠드 장관을 경질한 배경에도 바로 조슈아 볼턴 실장이 깊이 개입했다고 한다.

미국 정계에서 골드만삭스는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내에도 뿌리 깊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말 그대로 유태계의 ‘초당파 금융 자본’이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역대 경제 각료 중 골드만삭스 출신이 없던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공화-민주-골드만삭스 ‘회전문’ 인사는 유명하다. 그런데 그동안 주로 경제 분야에 치중해 영향력을 행사해온 이 ‘배후 세력’이 이번에는 아예 전면에 나서서 부시 정권 2기의 리모델링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도 그 영향력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17일 뉴욕 타임스에 보도된 ‘젤리코 보고서’(6자회담과 평화협정 회담의 동시 병행을 규정)를 필두로 당시 라이스 장관이 이란과 북한 등 ‘악의 축’ 국가들과의 직접대화를 표방하는 등 정책 전환을 시도한 바 있는데, 그 원동력이 바로 골드만삭스 인맥의 뒷받침이었다는 것이다. 라이스의 ‘5월 쿠데타’는 정권내 네오콘의 반격으로 결국 무산되었고, 그 뒤 미사일-핵-중간선거로 이어지는 아리랑 고개를 넘고 인적 쇄신이 더욱 진행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는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이제 왜 2008년인가 하는가를 간단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과거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정책을 주도했던 현실주의자들은 ‘북한은 중국으로 가기 위한 버스 정류장’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었다. 대북 정책을 대중국 전략이라는 지정학적 전략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뜻이다. 이는 한마디로 북한을 포용해 친미화 내지 중립화를 시키는 것이 대중국 전략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이런 관점을 바탕에 깔고, ‘2008년’이 중국 문제에서 가지는 상징적 의미를 오버랩시킬 필요가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 내 버블 붕괴 가능성, 타이완 독립 움직임, 센가쿠 열도를 중심으로 한·중·일 간 무력 충돌 가능성 등 3중의 전선에서 중국이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이 2008년까지 북한과 수교하겠다는 일정을 잡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중국과의 3중 대치 전선을 앞두고 중국의 옆구리에 매우 강력하면서도 유리한 고지를 하나 만들어두겠다는 뜻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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