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책/시, 소설 서평과 박스 기사
  • 안철흥 기자 (ahn@sisapress.com)
  • 승인 2006.12.1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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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시, 소설 서평^

#시 : <가재미> 문태준 지음/문학과지성사
필자 : 이문재(시인)
제목 : ‘역의인화’라는 새로운 인식론

문태준의 시집 <가재미>가 그리고 있는 여러 겹의 동심원은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다간 한 여성의 ‘빈집’을 중심으로 한다. 세 편의 연작시로 이뤄진 표제작 <가재미>는 가재미로 은유되는 “그녀”(시의 화자의 친척으로 보인다)에 대한 진혼곡인데, 그녀는 농경 공동체의 끝자락을 체험한 마지막 세대였다. 두어 세대 전만해도, 탄생과 죽음은 집안에서 이뤄졌으니, 그곳이 고향집이었다. 그러나 이제 고향집은 사라졌다. 부모나 친척을 임종하는 곳은 고향집 안방이 아니라 살풍경한 중환자실이다.
이전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2000), <맨발>(2004)에서도 그랬거니와, 문태준은 저 기억 속의 고향 속으로, 그 고향의 뒤란으로, 구두를 벗고 걸어 들어간다. 하지만 <가재미>에서 찾아가는 고향은 공간적으로 모호하고, 희미하다. 시의 화자가 찾아간 곳은 고향집이 아니라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이다. 암과 싸우던 끝에 그녀가 떠나자, 그녀가 살던 집은 빈집이 되었다. 이 빈집은 한 개인의 흔적이 아니다. 이 빈집은 문명사적 유적이다. 이 빈집에서 시인은 중심과 바깥을, 수평과 수직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변주하며 자기 삶, 나아가 인간(혹은 시인)이 새로 서야 할 자리를 궁구한다.
이태 전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문태준 시에 대한 관심은, 크게 한국 서정시의 절정이라는 찬사와 한국 현대시의 회귀 혹은 퇴행이라는 비판으로 갈렸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 문태준의 시는 한국 서정시의 분명한 성취다. 하지만 그 이유는 조금 다르다. 이번 시집 해설에서 비평가 이광호 교수가 선구적으로 제시한 문태준 시의 새로운 독법에서 한 걸음 비켜서 보려는 것이다. 이교수는 문태준의 “극빈과 수평의 시학”을 “겸손한 서정성”이라고 명명하면서, 그의 시는 세계를 ‘자아화’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문태준의 겸손함은 서정시의 근대적 오만함에 대한 겸손함이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문태준의 새로운 서정성은 겸손하지 않을 때가 제법 있다. 문태준은 ‘역의인화’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낮고 부드럽고 움직이는 고요”같은 그의 언어는, 의인화를 넘어서려 한다. 오만한 자아화 이전에 폭력적 의인화가 있었으니, 의인화는 자연을 도구화하는 유구한 인식론일 때가 많았다. 의인화를 극복하지 않는 한, 생태학의 제일 강령인 탈인간중심주의는 불가능해진다.
문태준의 시는 생명과 자연의 ‘결정적 장면’ 앞에서 숨을 죽인다. 그렇다고 그 시적 대상을 쉽게 자기 쪽으로 흡인하지 않는다. 대신 시인은 한 걸음 물러난다. 물러날 뿐만 아니라 <찰라 속으로 들어간다>에서처럼, 그 순간들을 위해 비석을 세운다. 그 비석은, 인간으로서 감히 우주적 질서에 개입하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겠다는 지극한 반성이자 적극적 실천이다. 문태준의 시에서 드러날 새로운 전복적 상상력의 키워드는 ‘역의인화’가 아닐까. 그렇다면 저 비석은 이정표로 우뚝 설 것이다.


#소설 : <펭귄뉴스> 김중혁 지음/문학과지성사
필자 : 최성실(문학평론가)
제목 : 문학이라는 ‘관습’ 혹은 ‘습관’을 되비추는 ‘낯선’ 문학적 상상력

2000년대 후반을 치달으면서, 한국문학은 적어도 몇 가지 당당한 자기 몫을 해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2000년대 초반을 휘두르며 앞뒤에서 강타했던 ‘문학의 죽음’과 중반을 넘어서면서 극에 치달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단호한 언명, 아마도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2000년대 중반 한국문학은 비루하지만 찬란한 문학적인 것의 욕망을 펼치고 있고, 펼쳐나갈 것이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수치스러움과 연민, 삶의 모멸스러움을 감내한 작가들의 글쓰기는 언제나 지금이 ‘처음’이고 ‘시작’인 것이다.
올 한해 한국소설은 문학적인 것의 안과 밖, 내적·외적인 기준에 대한 점차적인 와해의 조짐을 보이면서 그 사이의 소통을 갈망하는 ‘트랜스 리터러처’의 찬연한 장을 열었다. 근대소설을 규정하던 것, 대중소설과 본격소설을 나누고 갈랐던 기준들, 다른 장르와 문학적인 것의 구별을 통해 문학이란 개념을 두텁게 하고자 했던 수많은 언명들 사이에서 일제히 빠져나온 소음들이 거꾸로 문학적인 것의 욕망을 채워가고 있는 중이다. 그 중심에 김중혁의 <펭귄 뉴스>가 있다. 상상도 농담도 아닌 순간적인 감각의 현현을 통해서 일상을 규정하는 관습적인 것들과 습관적인 것들을 낯설게 보이게 하는 작가적 순발력은 김중혁 소설의 특징적인 일면이면서, 동시대 비슷한 연배의 작가, 이기호나 박민규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소설가들의 특징은 헛된 상상이나 진중한 농담을, 책임지지 않는 냉소주의를, 기질적으로 싫어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김중혁은 소설, 문학이란 고유의 아우라에 갇혀 전위적인 상상력조차 습관적인 것으로, 관습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갇힌 현실에 대한 과격하지 않은, 그러나 단호한 작가적 자의식을 숨기지 않는다. 과격한 형식적인 실험이나 소설적 관습의 울타리를 쉽게 파괴하지 않으면서 체제 안에서 제도를 되비추는 도저한 상상력을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작가적 자의식 근저에 습관적이고 관습적인 일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감각’의 진정성이 자리하고 있다. 재현된 세상이 숨기고 있는 삶의 진실처럼 절대화된 관념과 물질적 현현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않는 것에서부터, 김중혁의 소설은 시작되고 끝이 난다. 어중간한 타협으로 끝나지 않는 소설의 말미에는 눈에 보이는 측량술로는 도저히 그릴 수 없는 지도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며, 경험적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 이미지의 기억이 파괴적인 종말을 끌어안고 있다.
다른 젊은 작가들이 문학적인 체제 밖에서 문학적인 것을 부수고 다시 살아가려고 한다면, 김중혁은 문학적인 체제 안에서 관습이 되어버린 문학적 상상과 문학적 언어들을 되비추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2007년 문학적 습관과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문학적인 것의 욕망을 되비추고자 하는 작가들의 바람과 함께 더욱 농익어갈 것임에 틀림없다. 그 전위적인 움직임의 기저에 문학의 안과 밖을 생산적으로 횡단하는 트랜스-리터러처의 욕망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올해의책/시, 소설 박스^
^본문 40행^

올해는 단연 문태준의 해다. 문학 추천자 여덟 명 중 이경호, 이광호, 이문재, 진정석, 최성실 씨 등 다섯 명이 <가재미>를 올해의 시집으로 꼽았다. 다음으로 많이 언급된 작품은 황동규 시집 <꽃의 고요>(문학과지성사). 평론가 이광호씨는 “정갈하고 담백한 시어들을 통해 생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정신의 모험과 생에 대한 깊은 사유의 순간들을 경험하게 해준다”라고 황씨의 시집을 평했다.
이 외에도 많은 시집이 언급되었다. 이경호씨는 유홍준의 <나는, 웃는다>(창비>를, 이광호씨는 신영배의 <기억이동창치>(열림원)를 앞의 두 작품과 함께 추천했다. 이문재씨는 김경주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와 하종오의 <지옥처럼 낯선>(랜덤하우스 중앙)을 꼽았다. 황현산씨는 문인수의 <쉬>(문학동네), 장경린의 <토종닭 연구소>(문학과지성사), 김승희의 <냄비는 둥둥>(창비) 등 세 권을 골랐다.
올해는 시보다 소설이, 소설 중에서는 장편보다 소설집이 활발했다. 소설 부문에서는 김영하 장편 <빛의 제국>(문학동네)과 이혜경 소설집 <틈새>(창비)가 김중혁 소설집 <펭귄뉴스>(문학과지성사)와 경합했다. 결국 이광호, 진정석, 최성실, 황종연 씨 등 네 명이 추천한 <펭귄뉴스>가 올해의 소설로 뽑혔다.
세 작품 외에 거론된 소설은 다음과 같다. 방민호씨는 박민규의 <핑퐁>(창비)과 조영아의 <여우아 여우야 뭐 하니>(한겨레출판), 전성태의 <여자 이발사>(창해) 등 장편소설 세 권을 추천했다. 최성실씨는 김도언 소설집 <악취미들>(문학동네)과 정이현의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문학과지성사), 김종광 소설집 <낙서문학사>(문학과지성사)를 꼽았다.
황종연씨는 강영숙 장편소설 <리나>(랜덤하우스코리아)와 이기호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문학동네)를 추천했다. 진정석씨는 올해의 김중혁, 이혜경, 김영하의 작품 외에도 김훈의 <강산무진>과 배수아의 <훌>을 추가로 언급했다.
안철흥 기자 ahn@sisapress.com


추천인 : 이경호(문학 평론가, <작가세계> 주간) 이광호(문학 평론가, 서울예대 교수) 이문재(시인, <문학동네> 편집위원) 황현산(문학 평론가, 고려대 교수)
방민호(문학 평론가, 서울대 교수) 진정석(문학 평론가,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최성실(문학 평론가,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황종연(문학 평론가,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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