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콘서트와 ‘386 코드’
  • 김세원(언론인) ()
  • 승인 2007.02.2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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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마지막 날, 대학가요제 입상팀들로 결성된 ‘대가회’ 주최로 목동운동장에서 열린 7080 콘서트 <부모님 전상서>를 보러 갔다. 몇백 석 남짓한 공연장은 40, 50대 중년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추억의 대학가요제 캠퍼스 밴드들이 출동해 당시의 히트곡을 열창했다.
라이너스의 <연>, 로커스트의 <하늘빛 꿈>,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 마그마의 <해야>, 피버스의 <그대로 그렇게> 등 그룹 사운드 히트곡들에 <리빙 넥스트 도어 투 앨리스(Living next door to Alice)> 같은 팝송까지.
30여 년 전, 심야 FM 음악 프로그램을 휩쓸었던 음악들이 흘러나오자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리고 발장단이 맞춰졌다.
눈치가 보여 주위를 둘러보니 가족이나 부부, 동창회 친구들끼리 온 관객들 대부분이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가볍게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부모를 따라 아이들도 덩달아 몸을 흔들고 아들 며느리를 따라나선 노인들도 신나게 박수를 쳤다.
관객이 모두 일어나 무대의 출연자들과 함께 ‘불놀이야’를 합창하는 것으로 세 시간이 넘는 공연은 막을 내렸다.
젊은 날의 축제가 끝난 뒤 뿔뿔이 흩어졌다가 인생의 가을에 다시 만난 출연자들의 모습에는 저마다 살아온 30여 년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대학 교수, 프로덕션 대표, 대기업 임원, 통닭집 주인, 가정주부, 전업 가수 등 직업은 제각기 달라도 젊은 날 함께 했던 음악 속에서 그들 모두는 다시 하나로 뭉친 것 같았다. 관객들도 음악과 저마다의 추억에 듬뿍 젖어 잠시나마 세상사를 모두 잊고 인생의 봄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7080과 386은 공교롭게도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대학을 다녔던 같은 세대를 가리키는 용어다. 하지만 각각이 갖고 있는 함의는 양극단이라고 할 만큼 다르다.
7080 그룹이 세상을 향해 직접 외치는 대신 캠퍼스 밴드의 노래를 통해 마음을 달랬다면 386 그룹은 몸을 던져 세상과 투쟁하는 운동의 방식을 택했다.
386 그룹이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피 흘리며 운동가를 외쳐 부르는 동안 7080 그룹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도서관에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입사 시험 공부를 했다. 그 당시 386 그룹이 독재 정권뿐 아니라 7080 그룹도 비판과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문화 속에서 융합 가능한 ‘한 세대 두 행로’
2000년 이후 복고 바람과 함께 되살아난 7080은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자리를 잡았고 386 운동권은 노무현 정권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했다. 자신들이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이제는 상식으로 굳어진 사회가 되었건만 여전히 386은 자주·평등·개혁의 구호를 앞세워 기성 체제와 기득권 세력을 타파하는 데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문화의 정치적 종속을 지향하는 그들이 7080 콘서트의 부활을 문화적 퇴행이라 주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386 그룹은 적어도 문화의 영토에서는 적과 동지의 이분법보다는 다양성의 공존을 통한 상생(相生)의 원리가 더 잘 적용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하늘빛 꿈>이나 <탈춤>을 들으면서도 운동 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과 <흔들리지 않게>를 들을 때와 똑같은 감정의 폭발과 카타르시스를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386 그룹의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와 7080의 그룹 사운드 록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운동권 가수의 대표 주자라 할 안치환이 로커가 된 것이 우연은 아니다. 
7080이면 어떻고 386이면 어떤가.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인 40대가 앞으로 20년간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중심축이 되려면 먼저 동시대인들 사이에 가로놓인 벽부터 허물어야 한다. 40대가 간직하고 있는 디지털 세대의 감성과 아날로그 세대의 열정은 문화의 영역에서만 진정한 융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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