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노래가 천리를 움직이네
  • 박성명 (KBS TV 주간급 프로듀서) ()
  • 승인 2007.02.2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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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 국민 일상에 막강 영향력 발휘…‘빨간 구두’ ‘노란 셔츠’ 열풍 일으키기도
 
노래의 힘은 총·칼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다. 특히 대중가요가 그렇다. 시대 흐름을 타고 퍼져가는 속도가 빠르고 파급력 또한 엄청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전통가요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노래방이 전국에 있고 방송에서 가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트로트’ ‘유행가’ 등으로도 불리는 전통가요의 파워가 막강하다는 얘기다. 가요와 거리가 먼 듯한 스님·목사·신부·성악가들도 흥이 나면 트로트를 뽑을 정도다.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 <애모>가 애창곡이다.
1926년 나온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효시인 윤심덕의 <사의 찬미>로부터 고참 가수 송대관의 <네 박자>, 신세대 가수 장윤정의 <어머나> 등에 이르기까지 서민들을 울리고 웃기고 흥겹게 만드는 것은 단연 트로트다. 게다가 업계·스포츠계·문화계·정계 등 분야와 장소, 계급, 빈부를 가리지 않고 파고든다.
가곡 등 클래식 분야는 유명 프로그램이 아니고서는 관중 동원이 어렵다. 그러나 대중가요는 다르다. 공연장이 늘 꽉 찬다. 히트곡이 많은 인기 가수들의 대중 흡인력은 상상을 넘어선다. 잠실운동장, 월드컵경기장 같은 대형 공간에서 행사를 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TV·인터넷 발달로 줄기는 했지만 몇천 명은 기본이고 많을 때는 수만 명이 찾는다. 연말연시, 어버이날 등 특별한 때는 대중 가수들의 콘서트나 특별 공연이 인기리에 열리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서민들 삶에 스며든 트로트의 저력은 수치로 나타낼 수 없을 만큼 세다.
1960년대 서울에 댄스홀 카바레가 처음 등장하고 가정 파탄을 일으킨 집들이 많았던 때가 있다. <서울부기> <노래 가락 차차차> 등 맘보풍 노래가 인기를 끌면서다. 화신·미도파·동화(현재 신세계) 백화점 옥상 카바레에서 마담들이 남자 손님들을 유혹했다. 술과 노래, 여자와 춤에 끌려 집안 관리를 소홀히 한 유부남들이 수두룩했던 것이다. 노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패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맘보 바지가 인기를 모았고 빠른 템포의 트위스트 춤바람도 일으켰다. 1960년대 초 한명숙의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가 히트하면서 전국 주요 도시에서 노란색 셔츠가 불티나게 팔린 것도 마찬가지다.
남일해가 부른 <빨간 구두 아가씨>는 1960년대 구두 업계의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 1963년 어느 날 밤 KBS 부근 남산 오솔길을 빨간 구두를 신고 똑! 똑!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아가씨를 소재로 해 만들어진 이 노래는 구두가게 주인들을 싱글벙글하게 만들었다. 노래가 방송을 타면서 서울에 빨간 구두를 신고 다니는 아가씨들이 줄을 이었다. 명동·영등포 번화가 구두가게의 매출도 치솟았다. 노래가 하이힐을 크게 유행시킨 계기를 만든 것이다.
가요의 힘은 교육계에도 예외 없이 작용하고 있다. 트로트 등을 가르치는 실용음악과가 최근 몇 년 사이 대학에 줄줄이 생겨나고 가요 학원, 백화점 문화센터가 성업을 이룬다. 유명한 노래 강사나 인기 가수 출신이 운영하는 곳에는 주부들이 줄을 선다. 
가요는 이동통신·IT·전자·광고·악기 업계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친다. 휴대전화 수신 음악(컬러링)으로 유행가를 쓰는 사람이 늘고 MP3·음향 기기·노래방 기기·CM송 분야 매출 증대에도 가요가 한몫한다. 이들 업계와 관련된 대중가요 시장은 수천억원대에 달하고, 멀지 않아 1조원대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활기 넘치는 스포츠 현장에도 전통가요의 힘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대표적 종목이 야구와 축구. 1980~1990년대 프로팀들이 잇달아 생기면서 운동장에서의 응원전은 가요 대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골 노래는 윤수일의     <아파트>,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 김수철의 <젊은 그대>, 정수라의 <환희> <아! 대한민국> 등 경쾌한 것들이다.
지역 특색이나 지명이 들어가는 가요는 지방 야구 경기에서 단연 인기다. △롯데(부산)의 응원가가 되어버린 <부산갈매기> <돌아와요 부산항에> △KIA(광주) <남행열차> △LG(서울)의 <서울> <서울의 찬가> △SK(인천) <연안부두> 등은 홈팀이 득점하거나 따라붙어야 하는 중요 순간마다 울려 퍼진다.
문화계에서도 대중가요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음반회사·공연업체 수입에 직결되고 영화 제작에 촉매제 구실을 한다. 1964년 7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음반을 제작한 무명의 지구레코드사는 이 노래 하나로 최정상의 음반회사로 올라섰다. 판매량은 약 100만 장. 1962년 10만 장이 나가 최고 기록을 올렸던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를 제쳤다.
 
독도 수호·우리 농산물 홍보에도 큰 힘
가요의 폭발력은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국제 심판자 노릇도 하고 시장 개방 물결에 ‘우리 것’을 찾게 하는 계몽자가 되기도 한다. <독도는 우리 땅>과 <신토불이>가 그렇다. PD 출신 박문영 작곡·작사, 개그맨 출신 정광태 노래의 <독도는 우리 땅>은  한·일 독도 분쟁 때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1982년 말 KBS-TV <유머 1번지> 프로그램의 소재로 만들어진 이 노래는 ‘일본 국회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크게 이목을 끌었다.
배추장사 등을 하다 가수가 된 배일호의 <신토불이>는 우리 농산물 판매량을 크게 늘리는 데 기여한 가요다. 1993년 4월 나온 이 노래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 따른 시장 개방 바람을 잠시나마 막는 공을 세웠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가요를 좋아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등 남한 쪽 애창곡이 많다. 이미자·나훈아·조용필·김연자가 평양에서 수차례 공연을 가진 것도 이를 잘 말해준다.
지역을 소재로 태어난 대중가요의 파워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지방 상권을 살리고 해당 시·군을 알리는 데 일조한다. 춘천의 <소양강 처녀>, 목포의 <목포의 눈물>, 제천의 <울고 넘는 박달재>, 부산의 <굳세어라 금순아>, 경남 진해의 <황포돛대>, 함안의 <처녀뱃사공> 등이 그것이다. 노래 배경지에 노래비가 서 있고 주위에 관광지나 상권이 형성되기도 한다. 남인수가요제(진주), 반야월가요제(마산), 배호가요제(서울), 난영가요제(목포) 등도 지역 문화 발전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주민 화합, 지역 홍보, 가요계 저변 확대에도 보탬이 된다는 분석이다. 
가요는 일반인이 근접하기 어려운 청와대에까지 파고든다. 1979년 10월26일 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와대 옆 궁정동 안가에서 가진 저녁 술자리에서 <그때 그 사람>이 흘러나왔다.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 심수봉이 기타를 치며 부른 것이다. <황성옛터>를 즐겨 불렀던 박 전 대통령은 그 노래를 마지막으로 듣고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방랑시인 김삿갓>, 노태우 전 대통령은 <베사메무초>,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선구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목포의 눈물>, 노무현 대통령은 <작은 연인들>을 즐겨 불러 좌중을 부드럽게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해 목포 방문 때 역 앞에 모인 목포 시민들과 <목포의 눈물>을 합창해 화제가 되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베사메무초> 음반까지 내 눈길을 끈다. 
선거 로고송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가요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 때 장윤정의 <짠짜라>, 박상철의 <무조건> 등의 가요가 표밭갈이에 활용되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따르면 그때 2천9백56명의 후보자들이 선거 로고송 사용료로 낸 돈은 5억3천여 만원으로 집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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