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그까이꺼, 흥미 없어요"
  • 김진경 프리랜서 기자 ()
  • 승인 2007.03.05 10: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급 인생 포기하고 '대박' 좇는 젊은이 늘어...중고차 매매, 인터넷 쇼핑몰에 '푹'

 
지난 2월25일 일요일 오후 서울 서부 지역에 있는 ㅅ중고차 매매센터. 20대 후반~30대 초의 젊은이들이 두세 명씩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누비라를 몰고 들어가니 기다렸다는 듯 딜러 한 사람이 다가와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으며 차부터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요즘 차 한 대 팔면 얼마나 남아요?” 중고차를 팔기 위해 찾아왔다고 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에이, 남긴요. 요즘 같은 불경기에 우리한테는 떨어지는 거 없어요.” 딜러 이정연씨(여·28)는 손사래를 쳤다. “예전 같으면 모르겠지만, 요즘 중고차 사려는 사람들은 미리 정보를 다 찾아보고 나서 오는데 우리가 남겨봤자 얼마나 남기겠어요.”
그러면서도 3년째 중고차 딜러로 일하고 있다는 이씨는 “이 일이 중독성이 강하다. 다른 일을 하려고 해도 이만큼 자유롭게 일하며 많은 돈을 벌기가 어렵기 때문에 발 빼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동대문시장 옷가게·미용실 등에서 일했고 작은 회사에 취직해 두어 달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빡빡한 출퇴근 일정에 상사 눈치 보아가며 한 달 내내 일해서 받는 월급이 기껏해야 100만원~1백20만원이어서 “일할 맛이 안 났다”라고 했다.
하지만 중고차 매매 일은 근무 시간을 지켜야 하는 규정 같은 것이 없고 상사 눈치를 볼 일도 없다. 이씨는 “출퇴근에 따른 스트레스가 없고 위에서 쪼아대는 것이 없으니 다른 일보다 편한 건 사실이다. 4년제 대학 나와서 어학연수 다녀오고 유학까지 다녀와도 대기업 입사가 어렵지 않느냐. 이쪽 바닥은 고졸이건 중졸이건 상관없고 자기만 잘하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동료 중에는 회사에 취직했다가 다시 딜러로 돌아오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물론 편하게 돈을 잘 벌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 달에 광고비만 100만원, 통신비 등으로 50만원은 들어간다. 또 차를 팔 때마다 사무실에 수수료 명목으로 입금도 해야 한다. 1천만원짜리 차 한 대를 팔면 수수료가 25만~30만원쯤 된다. 지금은 경기도 좋지 않다. 중형차 한 대를 팔면 예전에는 5백만원 이상을 남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2백만~3백만원도 쉽지 않다.
“게다가 손님들이 다 똑똑해졌다. 옥션 같은 데서 조사해보고 오니까 우리도 어쩔 수 없다. 요즘은 마진을 5만원만 남기고도 판다.”
중고 마티즈 한 대를 팔 때 ‘순박한’ 손님에게는 4백50만원을 부를 수 있지만 가격을 미리 알고 오는 손님에게는 3백만원에 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잘나갈 때’ BMW 한 대를 3천5백만원에 팔아 한 건에 4백만원을 번 적도 있다는 이씨는 요즘 고민 중이다. 수입이 많아 다른 일을 하는 또래보다 씀씀이는 커졌지만 기복이 심해 돈을 모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1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더라도 꾸준히 버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차 한 대 잘 팔면 일반 회사원 월급의 3~4배도 벌 수 있는 이 일을 쉽게 그만두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다. 언제까지 이 일만 할 수 없고 미래도 불확실하지만, 당장 눈앞의 떡을 외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ㅅ매매센터에는 이씨처럼 일하는 딜러가 3천명이 넘는다. 서울 시내에 이런 중고차 센터가 6~7군데 있으니, 딜러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줄잡아 1만~2만명은 되는 셈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취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높은 토익점수를 받아두면 취업이 잘된다는 것은 이제 ‘진리’가 아니다.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취업이 안 되어 ‘백수’ 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전문대를 나오거나 영어 실력이 좋지 않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눈을 낮추면 일할 곳이 있기는 하지만 윗사람 눈치 보면서 회사 일에 시달리고 한 달에 한 번 성에 차지 않는 월급봉투를 받아 드는 게 내키지 않는 것이다.
 
김도균씨(21)는 힘들게 들어간 4년제 대학을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사업의 길로 나선 경우이다. 친구와 인터넷 의류 쇼핑몰 사업을 벌이고 있는 그는 전공인 건축공학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고 졸업 후 취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고 했다.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려면 물품 마련은 물론, 사이트 구축에서부터 광고비까지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다. 5백만~1천만원은 기본이다.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고 고객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서는 뛰어난 패션 감각도 필요하다. 기본 자금은 부모님이 대주기로 했지만 수많은 인터넷 쇼핑몰 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광고와 인맥이 중요하다. 그래서 김씨는 처음 얼마 동안은 동대문 의류 상가에서 일을 하며 인맥을 쌓고 업무를 배우기도 했다.


수입 좋은 나이트클럽 웨이터도 인기


일단 쇼핑몰을 열면 1주일에 세 번 정도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떼어오고 그것을 주문한 고객에게 우편으로 부치면 된다. 자신의 방을 사무실로 사용하기 때문에 옷값 외에는 다른 비용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
“저는 옷에 관심이 많아요. 좋아하는 일을 편하게 하면서 일반 기업에 취직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굳이 대학을 졸업해야 하죠? 전 학교 그만두고 이 일 시작한 걸 후회한 적 없어요.”
실제로 김씨처럼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젊은이들 중에는 한 달에 3백만~4백만원 정도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유롭게 일하며 그만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은 젊은 그들에게는 강한 유혹이다.
돈을 모으면 나중에 오프라인 매장도 열 생각이라는 김씨는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학교 공부와 토익 점수에 매달려 사는 친구들이 불쌍해 보인다고 했다.
“오늘 여자 분은 공짜예요. 물 좋은데, 언니들 놀다 가세요.”
지난 2월24일 토요일 저녁, 강남 ㅇ호텔 나이트클럽 앞에서는 호객 행위를 하는 웨이터(일명 ‘삐끼’)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짜면 장사는 어떻게 하는 거냐?”라고 물으니 “부킹만 하면 나머지는 남자 분들이 다 알아서 한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서울 시내 고급 나이트클럽 웨이터의 월 기본급은 30만~40만원이지만 ‘지명 손님(특정 웨이터를 지목해 서비스를 받는 손님)’이 많은 웨이터는 한 달에 5백만원 이상 수입을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젊은 여자의 경우 룸살롱 같은 곳에 나가기도 한다. 테이블에 들어가면 두 시간 남짓 시중을 들고 팁으로 10만원을 받는다. 재수 좋으면 하룻밤에 두세 테이블을 맡을 수도 있다.
물론 일의 특성상 옷과 화장, 머리치장, 교통비 등에 꽤 많은 돈이 들어간다. 하지만 밤새 편의점에서 시간당 3천~4천원씩 받아가며 일하고 손에 쥐는 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룻밤에 수십 만원씩 버는 데 맛을 들이면 다른 일 하기 어렵죠. 씀씀이가 커진 것도 감당 안 되고…. 나중엔 어차피 이 일도 못해요. 젊을 때니까 하는 거죠.” ‘직업 반 취미 반’이라는 생각으로 룸살롱에서 일한다는 한희정씨(가명·23)의 말이다.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 생각), ‘이구백’(20대 90%가 백수), ‘사오정’(45세 정년)과 같은 신조어가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취업 대란 시대에 젊은이들의 선택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교사나 공무원처럼 돈은 크게 못 벌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고차 매매, 온라인 쇼핑몰 운영, 나이트클럽 웨이터 같은 일을 하며 불안정하지만 갖추어야 할 조건도 없고 운이 좋으면 많은 돈을 벌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꿈보다는 안정적 현실을 중시하는 전자도, 미래를 고민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을 충실히 좇는 후자도 지금의 한국 사회가 낳은 새로운 표정들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