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다운 노래의 부활
  • 김지은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6.2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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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안치환, 6·10 민주항쟁 20주년 공연

 
올해 20주년을 맞은 6·10 민주항쟁. 6월10일이 공식 기념일로 지정된 첫 해여서인지 기념 행사도 다채로웠다. 지난 6월9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20주년과 공식 기념일 지정을 기념하는 전야제에서 모처럼 운동가요가 울려 퍼졌다. 안치환의 순서는 늘 그랬듯 힘이 넘쳤다. 6월10일 저녁 KBS 열린음악회에서는 <늙은 군인의 노래>까지 들렸다. 여기서는 오랜만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도 이 무대에 올랐다. 시위 현장이 아닌 곳에서 만나는 그 노래들은 향수였다. 추억의 앨범이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은 84학번이다. 1984년 대학 노래패 출신들이 김민기씨의 도움을 받아 낸 첫 음반에서 탄생한 이름이다. 그러니 멤버는 바뀌어도 노찾사는 84학번이다. 84학번 노찾사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바빴다.
세월은 흘러 아이 두셋 거느린 중년이 된 노찾사 멤버들. 이제 많은 이의 추억 속에 자리 잡은 앨범 하나로 만족할 법도 하다. 그런데 올해 무대에 서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6·10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지난 5월25일부터 3일간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공연장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1987, 그 20년 후에’라는 타이틀로 기념 공연을 마쳤다. 7월1일에도 부산 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또 한 차례 공연을 갖는다. 노찾사 출신 가수 안치환씨도 6월23일 연세대백주년기념관에서 ‘그래, 나는 386이다’를 타이틀로 6·10 민주항쟁 20주년 기념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욕먹는 386이 아닌 무명의 386에게 위로를 보내겠다는 취지이다. 운동 가요, 저항 가요, 민중 가요라 불리던 노래로 1987년의 민주화 열망에 동참했던 당시 젊은이들의 추억에 자리 잡은 그들. 2007년 6·10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노찾사가 올해 공연 ‘1987, 그 20년 후에’를 띄운 것은 20주년이라는 숫자적 의미도 있지만 노찾사의 향후 갈 길을 정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노찾사 한동헌 대표는 “노찾사가 수요자에게 다가서는 내용, 그리고 수요자가 노찾사에게 요구하는 내용에는 ‘향수’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그 밖에 내세울 건 거의 없다. 젊은 세대들도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동덕여대 5월 공연에서는 3일 동안 가득 찬 객석을 향해 새 노래도 들려주고 새롭게 출발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공연이 성황리에 마치자 이번엔 부산 민영방송사인 KNN(PSB의 새 이름)에서 창사 12주년 기념 공연을 겸해 무대에 올리자는 제의를 해왔다. 공연을 추진한 KNN 송준우 차장은 “지역 차원에서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행사를 준비했다. 노찾사 공연이 부산 지역에도 큰 호응을 얻으리라고 본다”라며 공연의 성공을 기대했다.
이번 공연에서 노찾사는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의 변혁을 이끌었던 1980년대 혹은 30~50대 세대의 꿈과 열망, 1987년의 시대 정신, 그리고 현재 한국 사회의 삶의 모습을 노래와 영상으로 형상화했다. 그것으로 ‘지금 나 자신은 어디에 있으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가늠해보고자 했다. 노찾사와 관객이 함께 고민과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인 셈이다.


“무명 386을 위한 공연”…새 창작곡도 선보여
노찾사는 지난 2004년 창립 20주년을 맞아 <노찾사 2+3집> 음반을 재발매하고, 2005년 10월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창립 21주년 기념 콘서트를 여는 등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활동 재개 이후 노찾사의 고민과 결실을 정리·종합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 6·10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었다. 이 자리에서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1987년의 시대 정신을 노래로써 새기고, 20년이 지난 지금의 삶과 현실에 대해 성찰하고 꿈과 힘을 새롭게 북돋웠다. 노래와 영상을 다큐멘터리처럼 결합한 무대는 현재에 걸맞은 신선한 감각으로 새롭게 꾸몄다. 또 <그날이 오면> <광야에서> 등 지금도 많이 불려지는 노래들도 새롭게 편곡해 시대를 뛰어넘는 원곡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새롭게 선보인 <젊은 그대> <나의 바램은>과 같은 새 창작곡들과 공식 무대에 선보인 <잃어버린 말>(김민기 곡)과 <정원>(한동헌 곡) 등 낯선 노래들이다. 그동안 허송세월한 것이 아니라 성숙하면서도 새로움을 추구해왔다고 노래로 밝히는 대목이다. 반주팀은 섬세하고 깊이 있는 느낌을 추구했다. 전자 악기의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 콘트라베이스, 관현악기로 구성해 부드럽고도 세련된 음악 어법을 구사했다. 그렇게 노찾사의 2007년 공연은 <7080 콘서트>가 아니었다. 노찾사도, 중년이 된 노찾사의 팬들도 ‘20년 후에’ 조우하는 장면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공감한 듯하다. 시대 정신이나 의식에 매달려 공연에 대해 왈가왈부하거나, 노래 운동도 성공하지 못하고서 향수에 기댄다거나, 상업적으로 아예 나서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그런 지적은 이전에도 있었기에 속앓이도 꽤 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해묵은 이념 논쟁에 묶여 있기에는 노래가 아깝다. 노래는 노래 그 자체로 편안한 어머니요, 친구요, 동지였다. 노래를 도구 삼고 노래로 편 가르고 노래로 의식화하던 시대는 지났다.

 
한편 안치환씨는 노래로써 이른바 386의 정체성을 이야기했다. 6·10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이 무대에서 그는 공연의 타이틀이자 신곡인 <그래, 나는 386이다>를 노래했다. 6월23일 무대에서 그는 자신의 이익보다는 서로를 위한 희생을 앞세웠던 1980년대의 청춘들, 민주화의 초석을 다진 386들을 위해 한판 축제의 마당을 펼쳤다. 이번 공연은 386이라는 이름으로 개개인의 명예와 명성을 얻은 이들이 아닌, 자신의 이익과 출세보다 타인의 자유를 위해서 청춘을 희생하고, 지금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진정한 386들에게 헌정한다는 취지였다. 올해 1월 무붕기획단과 안치환씨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공연에 앞서 안치환씨는 “한 아이의 부모로, 남편으로 아내로,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을 당신에게 386이라는 말이 자랑스럽게 펄럭이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만큼 그 말이 부담스럽고 실망스러운 지금 무명의 386! 이 땅의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당신에게, 저에게 ‘잘 살아왔노라’고 ‘힘내라 친구야’라고 다독거려주고 싶다. 어깨동무하며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어주고 싶었던 참 세상을 함께 노래하고 싶다”라고 인사말을 전했다. 무붕기획단 관계자는 “이번 공연을 보시는 분들이 바쁘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 잠시나마 잊혀져 있던, 그러나 뜨거운 삶을 기억하게 만드는 노래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안치환씨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무대라면 언제든 당당하게 가서 관객들과 소통한다.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뜸하게 활동하는 법이 없다. 대중 가수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노래에 온기 싣고 사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 그의 노래 정신이기 때문이다.
노찾사 한동헌 대표는 “안치환씨와 함께 공연할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 환영한다”라며 안치환 콘서트가 열리기 전에 잘되기를 바랐다. 민주화 광장을 벗어나 더 넓은 광장으로 나와 참 노래를 외치는 노찾사와 안치환씨를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빛바랜 노래가 아닌 성숙한 얼굴로 신세대와도 어울리기를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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