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면 돌파 ‘비밀 병기’ 장착했나
  • 엄태암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미국연구? (sisa@sisapress.com)
  • 승인 2007.07.0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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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 “한반도 정세 완화” 큰소리…한국·미국과의 협상에 자신감 생긴 듯

 
지난 7월3일 북한을 방문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을 면담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한반도 정세가 일부 완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면서 “각방(중국과 북한)은 당연히 북핵 2·13 합의 초기 단계 조처를 이행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북핵 2·13 합의 이행과 관련한 저간의 긍정적 사태 발전이 비교적 순조로웠다는 점에서 김위원장의 이러한 언급은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의 전면적 이행 및 6자회담의 안정적 추진을 원한다는 중국 외교부장의 인사에 대한 외교적 화답이라고 단순하게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에너지와 식량 등 북한의 당면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데다,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였던 자금 문제가 해결된 이상 2·13 합의 초기 단계 이행 조처를 더 이상 미룰 명분이 없어진 상황이겠지만, 김위원장이 북핵과 한반도 정세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 시각에서 언급하고 북한의 매체들이 이를 신속히 보도한 것은 그동안 진척이 없었던 영변 핵시설 폐쇄와 6자회담 재개 등 현안에 협조하고 북한의 최대 전략 목표인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진전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의 입장이 진정 그러하다면 2·13 합의 초기 단계의 몇 가지 조처를 포함해서 그 다음의 북한 핵시설 불능화 단계까지 진전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 섞인 전망을 하는 것도 그리 무리한 일은 아닐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입장은 최근 여러 상황을 통해 예견할 수 있던 일이기도 했다. 우선 BDA 북한 자금 문제가 일단락되던 시점인 6월21~22일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해 북한의 2·13 합의 이행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바 있다. 뒤이어 북한은 26~30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초청해 ‘결실 있는 토론’을 통해 영변 핵시설 봉인 및 폐쇄 검증 방식에 합의하고 7월 중순 IAEA의 공식 감시·검증단이 북한에 들어가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 힐 차관보와 김정일 위원장이 최근의 접촉 과정을 통해 획기적 정책 전환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2·13 합의의 견실한 이행 필요성과 이행 의지를 재확인하는 수준의 진실된 합의라도 이루었다면 그 이상 다행한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13 합의 초기 이행 조처와 병행해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고, 핵시설 불능화 조처를 단계별로 실시해나갈 경우 60일 내에 중유 5만t 상당의 긴급 에너지 지원을 제공한다는 2·13 합의를 들어 최근 1차분 중유 5만t 가운데 일부라도 영변 핵시설 폐쇄 절차가 시작되는 초기에 공급해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를 위해 남북한은 6월29~30일 개성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에서 대북 중유 공급에 대한 실무 협의를 갖고 향후 2주일 이내에 5만t의 중유 공급을 시작해 첫 배가 출항한 뒤 20일 이내에 전량을 전달한다고 합의한 바 있어 늦어도 8월 초까지는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또 북핵 2·13 합의 이행 지연으로 보류되었던 차관 쌀을 실은 배가 지난 6월30일 이후 연일 군산항을 떠나 남포항으로 향하고 있다.


우려 자아내는 “핵 연료봉 이미 이전” 증언


 
이처럼 북핵 2·13 합의 이행을 위한 초기 조처들이 하나씩 풀려가고는 있지만 한반도 안보 정세를 홀가분한 마음으로 전망하기에는 무언가 조심스럽고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이러한 상황 전개에 우리 정부와 국민이 얼마나 일관되고 슬기로운 자세로 임하고 있는가를 점검하지 않을 수 없다. 영변과 태천 등 핵시설을 폐쇄하는 초기 조처가 무사히 이행된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와 흑연 감속로 및 재처리 시설 등 모든 현존 핵시설을 불능화시키는 이른바 ‘다음 단계’가 북한의 어떤 협조 속에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지는 예상하기가 매우 어렵다. 조만간 개최될 6자회담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협의가 진행될 터이지만 2·13 합의의 애매한 규정은 북한으로 하여금 얼마든지 시간을 벌면서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을 대상으로 유리한 협상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BDA 문제로 2·13 합의 초기 조처의 첫 단계가 3개월 이상 지연되는 틈을 타서 북한이 영변 핵 연료봉 저장 시설에 있던 사용 후 핵 연료봉 총 1만6천 개를 이미 다른 곳으로 옮기고 저장 시설은 비어 있더라는 증언은 우리의 우려를 자아내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6월 말 북한 초청으로 영변을 방문했던 IAEA 대표단의 올리 하이노넨 사무부총장이 확인한 이 사례는 앞으로 등장하게 될 논란거리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북한이 1만6천 개의 사용 후 핵 연료봉을 모두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한 상황을 가정하면 북한의 절박한 경제난을 고려해 2·13 합의의 초기 조처 이행이 BDA 문제로 인해 다소 늦어지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아 주어야 한다는 그동안의 순진했던 배려는 도무지 어떻게 합리화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북한이 지난 6월27일 함흥 인근 미사일 기지에서 발사한 첨단 탄도미사일 세 발은 100km 내지 1백20km 사거리의 지대지 및 지대함 미사일이라는 점에서 유사시 어디를 겨눌 미사일인지가 자명하다.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7월2일 관훈클럽 조찬 강연에서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이 미사일이 한국군과 한국 국민 공격용으로 개발된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언급한 바 있다. 게다가 만 1년 전인 7월5일의 북한 미사일 발사를 비난한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제1695호와 지난해 10월9일의 북한 핵실험 실시에 따른 제재를 담은 안보리 대북 결의 제1718호를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라는 점에서 국제 사회와 국제 규범에 대한 북한의 인식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더욱이 심상치 않은 것은 최근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두고 다시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면 전면전을 불사하겠다고까지 나오고 있는 데다 동해와 서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 정치적 의도가 있겠지만 현재까지 그렇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정부 고위 당국자의 태평한 발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두고 나라 안팎이 온통 우려하는 목소리로 들끓던 지난해 7월에 비해 안보 위협의 실제 수위가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과 같은 북한의 행위가 지속되어 마침내 미사일 기술과 핵 능력을 성공적으로 결합시켜 한반도 안보에 상상하기 힘든 영향을 미치게 될 때 그것은 과연 누구를 탓해야 할 일인지도 궁금하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포함한 모든 문제의 핵심을 미국이라고 여기며 궁극적으로 대미 관계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그토록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미국이 사실은 북한의 국가 생존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라는 점을 간파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미 직접 협상에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과 미국은 거의 동시에 대통령 선거 과정에 접어들어 정치 지도자들은 물론 국민마저 합리적 정황 판단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최근 한반도 정세가 일부 완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김위원장의 정세 평가는 국내 정치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린 한국과 미국 두 나라를 상대로 적절히 협상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북한의 당면 난국을 타개해나가는 데 상당한 자신감이 생겼다는 말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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