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숙한 답사에 절로 ‘합장’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7.10.2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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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행에 즐거움 더하는 사찰이 품은 100가지 아름다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14년 전에 펴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널리 퍼진 이 구절은, 전국 방방곡곡 여행길에 나선 사람들에게 이정표와 함께 했다. 이 말의 원문은 조선 정조 때 유한준이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에 부친 발문 중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이라고.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이다.
오래 전에 회자되었던 이 말을 새삼 띄우는 것은 단풍놀이가 한창이라는 소식이 들려서이다. 사람들은 단풍놀이하러 이번 주는 설악산, 다음 주는 내장산 하는 식으로 이 산 저 산 다 가보고 싶어한다. 단풍놀이 떠난 산행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지나야 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사찰들이다.

사찰 초입에서 뒷마당까지 상징미 넘쳐나

그런데 단풍에 홀린 사람들은 사찰들이 품고 있는 ‘심오한 상징’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치기도 한다. 금방 지나온 돌다리가 사바 세계를 뜻하는 ‘차안’과 불국 정토를 뜻하는 ‘피안’을 이어주고 구별하는 상징적 의미인지 모른 채 말이다. ‘기능적인’ 다리가 연결하는 두 공간은 서로 차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상징적인’ 다리로 이어지는 두 공간은 일상의 공간과 성역으로 나뉘게 된다. 사찰 초입에 세워져 있는 ‘일주문’도 산행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일주문은 사찰의 관문이다. 문 바깥쪽은 평범한 일상의 공간이고, 문 안쪽은 현실 세계와 구별되는 신성하고 이상적인 공간인 것이다.  
문화 유산에 대해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산행이 더욱 즐거워지는 법. 최근 <사찰 100미 100선>을 펴낸 한국민예미술연구소 허균 소장은 “사찰에 드는 순간 사찰이 가진 온갖 조형물에 에워싸이게 되는데, 그 조형물들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읽어내는 일은 그것을 만든 사람이나 사용하거나 경배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종교적 염원을 읽는 일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라고 말했다.

 
사찰에 존재하는 많은 조형물들은 불교 수행자들이 추구하는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는 방편이다. 풍경에 달린 물고기조차 흔히 알고 있는 기능을 초월해 ‘쉼 없이 정진하는 수행’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심지어 문설주에 새겨져 있는 작은 문양 하나에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상징 세계가 무한하게 펼쳐지고 있다. 불상, 탑, 석등, 불화, 목탁, 요령, 향로 등 절에 가서 쉽게 볼 수 있는 조형물들이 다 그러하다.

100가지 조형물을 20개 주제로 ‘계통화’

그런데 이들 조형물이 가진 상징적 의미란 역사성과 예술성에서 단순하지 않다. 저절로 품게 된 상징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을 제작하거나 사용했던 사람들이 과거에 그 조형물에 했던 모든 행위까지 지닌 심오함, 사찰 속 조형물의 본질은 바로 그것이다. <사찰 100미 100선>은 오랜 역사 속에 실재해온 사찰 속 조형물들의 이런 역사성을 차근차근 풀어주고 있다.
산행에 나선 일반인들은 대략 알고 있는 경우라 해도 조형물들이 어떤 쓰임새인지 또는 어떤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지 잘 간파하지 못해왔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성철 스님의 말을 흉내 내면서 그저 보이는 것을 볼 뿐이었다. 어떤 조형물은 ‘아픈 역사’라는 깊은 속내를 지니고 있기도 한데 말이다.
<사찰 100미 100선>은 허소장이 사찰 조형물들을 좀더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조사·연구 작업 끝에 정리해 묶은 것이다. 좀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작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토양을 꼼꼼히 분석하고, 관련 내용을 불경이나 불교 발상지의 사례에서 찾아 일일이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사찰 안에 숨어 있는 구석까지 훑어 설명하는 허소장의 현장 답사기는 ‘불국으로의 진입’으로 시작하는 20개의 주제와 100개의 작은 주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불교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하고자 계통화한 것이다. 책 제목이 ‘100가지 아름다운 소재’를 말하듯 일반인들이 좀더 친근하게 불교 조형물에 접근하도록 했다.
4백39장의 사진과 허소장의 친절한 안내가 곁들여진 이 책은 예술적 가치까지 설명을 더해 전혀 ‘불경’스럽지 않다.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단풍놀이를 풍요롭게 해줄 ‘문화유산 답사기’의 최신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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