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이겨야 수익이 보인다
  • 정은호 (제로인투자자문 대표) ()
  • 승인 2008.01.02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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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투자는 시간과의 싸움, 장 나쁘면 차라리 쉬어라

 
투자(investment)와 투기(speculation)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장 교과서적인 설명은 “부담하는 위험 수준에 적절한 수익을 기대하는 현재 소비의 유보 행위는 투자이고, 그 이상을 기대하는 행위는 투기”라는 것이다. 현재 필자가 사용하고 있는 투자와 투기의 구분은 “손실이 발생했을 때도 참아낼 수 있고 뭔가 얻은 것이 있다고 생각되면 투자이고, 내 인생에서 원금의 손실이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으로 과감히 베팅하는 것은 투기”라는 것이다. 
인생은 투자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한 봉우리를 지났나 싶으면 다른 고개가 나타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앞만 보면서. 투자도 마찬가지이다. 2007년처럼 높은 수익률이 찾아올 때도 있고 그런 장에서도 상투를 잡아 별로 손에 쥔 것이 없어서 조바심이 날 때도 있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당장 투자를 끝낼 상황이 아니라면 일시적인 고수익이나 손실은 생활의 다른 부분에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거나 인생관을 바꿀 만한 사건은 아니다. 믿어도 된다.

펀드 투자에서 단기 대응은 아무 의미 없어

지난해 8월16일 코스닥 시장의 폭락으로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가 발동된 날 평소 친하게 지내는 펀드매니저가 메신저에서 “거래소에서 커피브레이크(coffee break)라는데요. 자판기 커피라도 한 잔 하시죠”라고 말을 걸어온다. 서킷브레이커를 흔히 CB로 줄여 부르는데 커피브레이크와 영문 약자가 같다. 본래 서킷브레이커 제도가 현물 시장의 급락시 매매거래를 일정 시간 중지시켜 투자자들이 이성을 회복할 시간을 주자는 제도이니까 이 시간에는 커피나 마시면서 찬바람을 쐬는 것이 도입 취지에 적절하기도 하다. 결국 이날 코스닥 시장은 전날에 비해 10.15% 하락한 689포인트, 코스피는 6.93% 하락한 1691포인트로 마감되었다. “이런 날은 대응 안 하고 그냥 쉽니다.” 상당한 규모의 주식 펀드를 운용하는 그 매니저는 서킷브레이커 발동 이후 외국의 투자 전략 리포트를 분석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그날 저녁 주요 뉴스에서는 ‘1600선을 기준으로 연말까지 조정 기간이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라는 내용을 내보냈다. 물론 틀렸다. 서킷브레이커 발동 이후 코스피는 2085포인트까지 상승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코스닥지수도 820포인트까지 상승하는 저력을 보였다. 실제 2007년 한 해를 놓고 보면 12월21일 종가지수인 1878포인트를 기준으로 볼 때 이보다 지수가 높았던 기간은 7월 중순부터 약 1개월, 9월19일부터 약 3개월 정도이다. 12개월 중 4개월이 현재 지수보다 높았고 나머지 8개월간은 현재보다 낮았으니까 그리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중국의 경제 성장도 크게 예측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고 미국 경제 역시 미국 정부가 경기 침체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무차별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 시장은 2008년에도 외부 요인에 의한 충격은 있겠지만 추세 자체가 역전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2008년 1분기, 길게는 상반기까지는 펀드 투자자들에게 그리 편안한 시장 상황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CB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증시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때 명심해야 할 것은 마켓 타이밍은 어느 누구에게도 가능한 능력이 아니라는 믿음이다. 단기적으로 2000포인트가 상투라고 믿고 가입과 해지를 반복하는 투자자는 장기적으로 결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그 시간에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거나 가족과 놀이공원에나 다니면서 시장은 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일시적인 시장 충격에는 무관심이 최선이다. 우리 주식시장은 2007년에만 사상 최고치를 51회 경신했다. 단기 고점을 잡아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매주 한 번씩 갱신되는 사상 최고치를 참아내고 그 수익을 다 얻어낼 수 있었을까?

가입과 해지 반복하는 투자로는 시장 못 이겨

2007년 한 해 높은 주가 수익률에도 외국인들은 사상 최고 수준인 25조원 이상을 주식시장에서 매도한 사실에 대해 일부 우려가 있는 것 같다. 물론 대부분의 자금이 채권 시장으로 유입됨으로써 국내 시장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이들 자금의 상당 부분은 이미 국내에 들어온 지, 10년에서 15년 정도 경과한 것으로 보인다. 해외 이머징마켓에 들어와서 10년 이상 투자한 후에 두 배이든 세 배이든 목표로 했던 수익을 내고 나가는 자금에 대해서는 조금 관대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현재 해외에 투자하고 있는 국내 펀드들의 목표도 결국 동일한 것 아닌가?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외국 시장에 투자하여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고 유출되는 과정은 개방 경제 체제에서 너무나 당연한 투자 과정이고 국내 주식 수요 기반이 거의 붕괴 수준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시장을 상당 부분 지탱해준 것도 사실이다. 과민하게 반응할 일은 아닌 듯하다. 10년 이상 투자된 자금의 자연스런 비중 조절 과정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들의 투자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사례를 보자.
각 증권사들이 2008년도 주식시장 전망을 앞다투어 제시하는 가운데 UBS의 글로벌 전략 리포트가 눈길을 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급격히 낮아지고 있으며,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도 있는 반면 중국과 인도는 GDP 성장률이 10%와 8.5%로 전망된다며 유럽 지역 투자 비중을 MSCI 지수에 비해 1% 낮추고 아시아 이머징마켓 비중을 0.5% 늘리는 것이 유효하다는 내용이다. 우리의 펀드 투자를 돌아보자. 전 재산을 걸고 지역이나 테마를 좇아 혹은 주식과 채권 사이를 한꺼번에 넘나들면서 건곤일척의 투기를 하고 있지는 않는지. 투자는, 특히 펀드 투자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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