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를 두 번 울린 ‘최고의 순간’
  • 허재원 (한국일보 체육부 기자) ()
  • 승인 2008.02.0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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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꺾고 올림픽 동반 진출 확정한 한국 남녀 핸드볼 재예선 경기 현장 리포트

#1월29일. 또다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일본 도쿄의 심장부에 위치한 요요기 국립체육관에 요란한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대~한 민국’을 외치는 2천여 명의 한국 응원단은 모두 상기된 표정이었다.
전광판에 새겨진 점수는 34 대 21. 대한민국 승리. 애초부터 정상적인 심판 판정이 이루어졌다면 한국은 아시아에서 적수를 찾을 수 없는 최강이었다. 4년 전 아테네올림픽에서 핸드볼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를 펼치며 은메달을 따냈던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1988·1992), 은메달 3개(1984·1996·2004)를 따낸 세계 최강. 반면 상대는 지난 32년 동안 올림픽 무대를 밟아본 적도 없는 일본이었다. 일본 응원단의 광적인 응원도, 일본에 비해 훈련 기간이 짧았던 것도 작은 변수에 불과했다.
진작에 누렸어야 하는 기쁨이었다. 이미 손에 쥐었어야 하는 올림픽 출전 티켓. 쉽게 갈 수 있었던 길을 어렵게 도달한 한국 여자 대표팀 선수들의 눈은 어느새 촉촉이 젖어 들었다.
이날 한국은 우선희(30·7골), 오성옥(36·4점), 이상은(32·3골)이 공격을 주도하고 오영란(36)이 잇따른 선방을 해내는 등 네 명의 ‘아줌마 부대’가 경기를 완전히 장악하며 점수 차를 벌려나갔다. 결국 후반 중반 점수 차가 두자릿수로 벌어지자 일본은 후보들을 내보내며 일찌감치 패배를 인정했다.
지난해 8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예선전에서 중동 심판들의 편파 판정으로 올림픽 직행 티켓을 빼앗겼던 한국은 베이징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며 7회 연속 올림픽 출전의 위업을 이룩해냈다.
경기를 마친 후 임영철 여자 대표팀 감독은 “한국 핸드볼의 자존심을 걸고 싸운 한판이었다. 일본 원정의 부담감 때문에 지난 열흘은 지옥에 가 있는 기분이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4년 전 아쉽게 놓친 금메달을 따 아시아 핸드볼의 자존심을 찾아오겠다”라고 말했다.

 

#1월30일. 도쿄에 ‘부창부수’의 승전보 울려

김태훈 감독은 경기를 하루 앞둔 1월29일, 주전 골키퍼 한경태를 불렀다. 한경태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강)일구가 컨디션이 너무 좋아요. 일구를 내보내세요.”
대표팀의 백업 골키퍼 강일구(32·코로사)는 훈련 기간 내내 일본의 전력을 열심히 분석했다. 게다가 그는 일본의 간판스타인 미야자키 다이스케의 천적으로 불릴 정도로 일본전에서는 강점을 보이고 있었다. 김감독은 강일구를 믿어보기로 결심했다. 강일구는 30일 경기에서 스타팅 멤버로 출전했다.
후반 29분. 백원철이 왼쪽 사이드에서 던진 회심의 점프슛이 일본 골대 오른쪽 사이드 코너를 정확히 파고 들었다. 28 대 25. 모두가 승리의 기쁨에 넘쳐 있던 그때 촉촉이 젖어 드는 눈망울을 수줍은 듯 감추는 이가 있었다.
여자 대표팀의 골키퍼 오영란(36·벽산건설). 강일구의 아내인 그녀는 하루 종일 남편의 선전을 빌고 또 빈 것. 아내의 바람대로 강일구는 철옹성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막대 풍선을 두들기며 남편의 선전을 기원하는 아내의 응원에 힘입어 강일구는 이날의 승부를 가른 후반 12분부터 15분까지 연속 4개의 노마크슛을 쳐내는 ‘신기’를 보여주었다.
한국은 골키퍼 강일구의 신들린 듯한 선방을 앞세워 28 대 25, 3점차 승리를 거두었다.

#영화와 현실의 만남 또한 생애 최고의 순간

두 편의 빅매치 현장에는 최근 흥행 호조를 보이고 있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두 주인공인 문소리(34)와 김정은(32)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 응원전에 동참했다. “홈팬이 더욱 많은 만큼 목이 터져라 응원하겠다”라던 문소리는 진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고, “파도 응원도 하고 응원단과 하나가 되겠다”라던 김정은 역시 파도의 물결에 따라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했다. 문소리는 “영화를 통해 잠시 경험한 선수들의 투혼과 정신력에 존경을 표한다. 오늘은 꼭 이길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경기 종료 버저가 울리는 순간, 벌떡 일어나 서로를 감싸안은 문소리와 김정은은 ‘생애 최고의 순간’의 기쁨을 만끽했다.
남자부 경기가 열린 둘째 날에는 더욱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영화의 실제 모델인 임오경과 오성옥이 이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우리 생애 최고의 응원전’을 펼친 것. 문소리는 오성옥을 보자 마자 꽉 끌어안았다. “언니, 어제 너무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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